조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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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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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 초반에 나폴리에는 약 70여 개의 피자가게가 있었다. 이곳에서 피자는 날개 돋듯이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작은 책(미니북)을 손에 쥐고 다니듯 피자를 반으로 접어서 걸어 다니면서 먹던 길거리 음식이었다. writer & photo _김삼호 셰프
FOOD STORY
길거리에서 먹는 음식에서
레스토랑 최고의 메뉴가 되기까지
나폴리 화덕피자이야기
사
실상 이때까지 피자는 아직은 싸구려 음식으로 취급되었고 소비 양상 역시 그러하여 가장 비천한 사회계급의 습성으로 남아 있었다. 겨우 반세기 이 후에나 몇몇 가게들이 약간의 테이블을 준비하여 가게를 오픈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거지들이 너무 많아 피자를 훔쳐 집으로 달아나는 걸 막기 위해 벽 쪽에 좌판을 붙여 놓았다고 한다.) 나폴리에서 피자는 이런 식으로 소비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피자가게와 아주 비슷한 형태의 핏제리아(Pizzeria)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피자는 나폴리 사람들의 습관에서 뿌리 내린 길거리에서 먹는 음식이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피자는 전 세계 도시의 뒷골목을 계속해서 점령하고 있다.
식탁의 여왕에게
핏제리아가 피자 소비를 위한 전용공간으로써 자리 잡은 것은 겨우 1800년부터 이다. 멋진 화덕과, 그리고 바로 그 옆에 차려진 식탁들, 모든 재료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대리석 작업대. 피자는 조금씩 조금씩 서민 사회적 음식이라는 그 함축적 의미를 잃어갔다. 귀족의 1차적 상징이 되었고 또 중산계층으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매일 핏제리아의 테이블은 만석이 되었다.
사람들은 최초의 핏제리아를 말할 때 ‘포르탈바(Port’Alba)‘를 말한다. 나폴리 지역 심장부인 같은 이름의 문 바로 밑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었다. 이곳은 1738년에 행상인들의 쉼터로써 탄생하였다. 그리고 1830년이 되어서야 겨우 레스토랑 내에 홀이 있고 테이블과 의자가 구비된 장소로 옮겨졌다. ’가브리엘레 단눈치오(Gabriele D’Annunzio)‘가 지은 유명한 깐쪼네 ’아 부껠라(A vucchella)‘와 ’살바토레 디 자코모(Salvatore di Giacomo)‘와 같은 작가이자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이 레스토랑에 대한 짤막한 소개가 발견되는데 여기에서 피자와 피자기술자에 관해 적지 않게 서술하였다.
먹을 수 있는 작은 책인 ’핏젤라(Pizzella)‘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장 잘 팔리는 특별식이고 맛이 훌륭하며 가격이 저렴하다. 핏제리아의 출현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은 말할 것도 없이 이미 잘 알려진 에피소드인 ‘돈 라파엘레 에스포지토(Don Raffaele Esposito)’가 운영한 핏제리아 ‘다 피에트로(da Pietro)’이다. 이곳은 이러한 연유로 왕가의 식당이 되었다. 그 때부터 핏제리아는 눈에 띄게 증가되었고 핏제리아를 찾아가 먹는 것이 나폴리 사람들의 생활의 일상이 되었다. ‘돈 라파엘레’의 핏제리아는 아직도 ‘산탄나(Sant’Anna)‘ 언덕 너머에 위치한다. 현재는 ’브란디(Brandi)‘라고 불리 운다. (아내의 성을 따름) 이곳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100년의 발자취를 간직하는 기념 장소로써 해년 마다 관광객들은 진짜 마르게리타 피자를 맛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정확히는 1889년에 개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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