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놀이] 이랑과 고랑, 그리고 두둑

정기홍 승인 2021.06.19 20:59 | 최종 수정 2022.03.03 13:27 의견 0

※ 플랫폼뉴스는 주말마다 '말 놀이' 코너를 마련합니다. 어려운 말이 아닌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와 문구 등을 재소환해 알뜰하게 알고자 하는 공간입니다. 어문학자같이 분석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짚어보자는 게 목적입니다.

오늘은 며칠 전 농촌에 있는 지인이 논일(모내기)을 다 끝내고 밭일을 시작했다고 해서 밭 정취가 물씬 풍기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이랑과 고랑입니다. 그리고 두둑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 쓰이는 말입니다. 논밭에 곡식을 뿌리고 심고, 길러서 수확하기 위해선 꼭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콩밭, 고추밭, 배추밭 등에서 이를 만들어놔야 작물이 잘 자랍니다.

먼저 이랑과 고랑의 비교입니다.

국립국어원이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이랑은 '논이나 밭을 갈아 골을 타서 두두룩하게 흙을 쌓아 만든 곳'(1), '갈아 놓은 밭의 두둑과 고랑을 아울러 이르는 '(2)로, 고랑은 '두둑한 땅과 땅 사이에 길고 좁게 들어간 곳을 ‘이랑’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1)로 풀이합니다.

따라서 (1)의 의미로 이랑과 고랑을 좁혀 해석하면, 이랑은 씨앗을 뿌리거나 심고 모종을 옮겨서 키우는 볼록한 곳입니다. 흙을 두둑하게 쌓아 땅을 높였기 때문에 햇볕을 잘 받아 작물이 빨리 성장합니다.

이랑의 한자는 경(頃)입니다. 예컨대 만경창파(萬頃蒼波)는 '만 이랑의 푸른 물결'이란 뜻으로, 한없이 넓은 바다를 말합니다.

반면 고랑은 '이랑을 쌓기 위해 흙을 파낸 골, 즉 두둑한 곳 사이의 길고 좁게 들어간 곳'입니다. 비가 올 때는 이랑에 쏟아진 물을 받아내고 가뭄 때는 물을 뿌려 대는 곳으로, 장마철에 곡물을 심어 놓은 이랑에서 물이 흘러내려 뿌리가 썩지 않도록 합니다. 물론 밭일을 하는 농부가 쉽게 다니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고랑의 뜻풀이는 다소의 이견이 있는 이랑과 달리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우리말샘에서 똑같이 해놓았네요.

이렇게 보면 이랑은 볼록한 두둑, 고랑은 오목한 골(골짜기)인 셈입니다. 여기까지는 (1)의 기준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랑의 (1)의 뜻과 비슷한 두둑과 비교하면 '이랑의 영역'이 넓어집니다.

위에서 이랑 설명 때 (2)의 '갈아 놓은 밭의 두둑과 고랑을 아울러 이르는 '이 됩니다. 밑의 그림을 보면 이해가 보다 쉽습니다.

▲ 아래 위의 그림을 보면 이랑의 개념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두둑은 '논이나 밭을 갈아 골을 타서 두두룩하게 흙을 쌓아 만든 곳', '주위보다 두두룩한 곳', '논이나 가장자리에 경계를 이룰 있도록 두두룩하게 만든 것'으로 풀이합니다. 이랑의 (1)설명과 비슷합니다.

이랑의 옛말인 '사래'도 보다 넓게 해석됩니다. 사래는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우른 부분입니다. 이랑의 (2)와 같은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랑의 해석 영역이 헷갈립니다. 좁은 (1)로 해석해야 할지, (1)보다 넓은 (2)로 해야 할지..

이랑과 고랑이 '랑'이란 낱말로 연결돼 이랑을 좁은 (1)로만 생각하지만, 대체로 넓은 (2)로 해석해 대별하는 것 같습니다. 이랑의 옛말인 사래에서도 넓게 보았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이랑의 영역 구분을 좁은 뜻으로 할지 넓은 뜻으로 할지를 선택했으면 합니다.

고랑과 이랑의 역사도 알아봅니다.

두둑과 고랑, 이랑을 만들어 농사를 지은 것은 조선 후기부터라고 합니다. 밭작물인 고추, 고구마, 감자, 담배 등이 한반도에 들어온 시기와 비슷하네요. 농사를 짓는 방법이 발전된 것인데 우리가 예측하는 것보다 많이 늦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미 있는 속담도 있네요.

'이랑이 고랑 되고 고랑이 이랑 된다'는 잘살던 사람이 못살게도 되고 못살던 사람이 잘살게 됨을 비유한 말입니다. 넉넉하고 잘나갈 때 옷깃을 여미라는 경구처럼 와닿습니다.

다음은 옮겨온 글입니다.

이랑과 고랑에는 공통적으로 'ㄹ'이 들어있다. 'ㄹ'은 국어의 자음 가운데 유음(流音)을 표기하는데 쓰이는 글자다. 울림소리이면서 굴림소리라서 부드럽다.

작고한 한글학자 정재도 선생은 '우리말의 신비 'ㄹ''에서 "우리말에서 'ㄹ'이 가장 많이 쓰이는 닿소리(자음)이자 우리말 소리 가운데 가장 변화가 많은 소리"라고 했다.

그는 얼, 말, 글 등 우리 겨레의 바탕이 되는 낱말에는 'ㄹ'이 있음을 주목하고, 이를 우리 겨레와 끊을 수 없는 특별한 소리라고 했다.

글쓴이는 고운 'ㄹ'음이 들어간 우리말을 일상에서 자주 썼으면 한다는 제언을 했습니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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