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천 시장 골목을 찾아…우시장, 팔부자거리 이야기

하천을 따라 3㎞, 2시간 코스
우시장, 팔부자거리 등 생겨
9개 특화시장 모인 수원 남문시장

강하늘 승인 2021.06.22 15:12 | 최종 수정 2022.01.15 22:52 의견 0

어느 근대도시나 시가지를 중심으로 '사통팔달의 길'이 있다. 그 길에는 길도 있고 강과 하천도 있다. 경기도 수원의 수원천도 여느 도시의 하천과 비슷하게 하천을 따라 생업을 위한 상거래가 이어져왔다. 이른바 시장이다. 수원천을 따라 사람과 물자가 활발하게 오간 지난 흔적을 더듬고, 지금에 이른 지난한 삶의 모습을 찾아보자. 3㎞ 정도로 2시간 남짓 걸린다.

▲ 수원천을 따라 지점마다 형성된 먹거리 공간들. 수원시 제공

◇ 화홍문~문구거리

광교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흘러 내려오는 수원천은 방화수류정 옆 용연을 끼고 돌아 남북으로 길게 흐른다. 화홍문의 7개의 무지개 모양 수문을 통해 북쪽에서 들어온 물은 남쪽의 남수문까지 흘러 수원화성을 빠져나간다. 세계유산인 수원화성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절경이다.

특히 7개의 수문을 빠져나가는 물보라를 수원 팔경 중 화홍관창이라 했다. 지금은 수량이 적어 평소에 볼 수는 없지만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물줄기가 쏟아진다. 물길을 따라 모이고 살아갔던 사람들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어 이번 코스의 시작점이 된다.

인근에는 수원시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이 있다. 지난 2004년 개관한 이곳은 전통무형문화재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애쓰는 무형문화재 4인의 활동 및 후학 양성 장소이다. 승무·살풀이춤 보유자 김복련(경기도 무형문화재 제8호), 소목장 김순기(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4-1호), 단청장 김종욱(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8호), 불화장 이연욱(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7호) 선생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건너편 수원천 왼쪽부터 시장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지금은 사라진 ‘수원 우시장 터’다.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조하면서 자재를 운반하기 위한 용도로 소가 많이 늘어났고 성역이 마무리되자 소를 농민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생겼고 하루 평균 400두가 거래될 정도로 번창해 함경북도 명천, 길주와 함께 전국 3대 우시장으로 컸다.

원래 팔달문 밖에서 열렸던 우시장이 성안의 북수동으로 들어온 때가 1938년이고, 1962년에는 영화동으로 옮겨졌다. 당시 이 일대에 소여관이라 불리던 대형외양간이 5~6곳에 달했으며,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온 소가 수원역에서 줄지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1978년 곡반정동에서 명맥을 잇다가 지금은 없어졌다.

장안동사거리에서 북수동성당, 후생병원까지 이어지는 북수동 옛길은 ‘팔부자거리’다. 팔부자거리는 수원화성 축조 이후 이주한 백생들의 삶을 위해 정조가 전국에서 불러 모은 팔부자들이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세워 모여 살던 곳이다.

호호부실 인인화락(戶戶富實 人人和樂, 집집마다 부자가 되게 하고 사람마다 즐겁게 한다)는 정조의 의지에 팔부자집 주변으로 입색전, 어물전, 염전, 유철전, 목포전, 상전, 관곽전, 미곡전, 지혜전, 혜전, 유문전, 미전 등의 상설 시전(市廛·시장거리 가게)이 들어섰다. 100년이 넘게 이어지던 부의 거리는 일제강점기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골목의 벽화로 그려져 그 시절 이야기를 전한다.

팔부자거리 옆, 팔달노인복지관 뒤편 골목은 문구거리다.1980년대 문구점들이 이 골목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전성기에는 20여 곳에 달했다. 지금도 10여 곳이 남아 있어 수십 년 전의 보물같은 추억에 잠기게 된다.

◇ 매향교~수원 통닭거리
매향교를 기점으로 남쪽에는 현재 시장들이 밀집해 있다. 매향교는 원래 화성을 축성할 때 잡은 물길 위에 놓였던 다리로, 원래 이름은 오교(午橋)였다. 수원화성 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다리이며, 나무다리였다가 돌다리로, 지금은 다시 콘크리트 다리로 돼 차량도 오간다.

매향교에서 수원천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눈에 띄는 규모의 건물은 수원사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4월 8일 당시 수원 용주사에서 수원불교포교소로 세웠다.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지키는 원찰로 삼은 용주사에서 세운 포교당인 셈이다.

건너편 서쪽은 그 유명한 수원 통닭거리다. 수원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우시장을 기반으로 한 갈비 외에 통닭이 떠오르게 한 중심지다. 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매향통닭, 왕갈비통닭의 원조 격인 남문통닭, 평일 낮에도 만석을 자랑하는 진미통닭, 장안통닭, 용성통닭 등 각각의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통닭집이 즐비하다.

통닭거리는 특히 2019년 1월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의 흥행으로 유명세를 더해 전국에 알려졌다.

통닭거리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도착하는 팔달문은 물자와 사람이 활발하게 오가는 사통팔달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원래 탑산이던 팔달산이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조선의 시작인 태조 때로 기록돼 있다. 태조가 개국 후 이고라는 사람을 관직에 불렀으나 “사통팔달로 시야가 트이며 아름다운 이곳에 사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며 사양하자 화공을 시켜 탑산을 그려오게 했고, 이를 보고 “역시 아름답고 사통팔달한 산”이라며 팔달산으로 명명했다. 수원화성의 남쪽 문인 팔달문 역시 이 이름을 따랐다.

◇ 수원남문시장~구천동 공구시장
팔달문과 수원천변에는 9개의 전통시장이 있다. 수원 남문시장으로 통칭되는 이 시장은 수원뿐만 아니라 경기도의 대표 거점시장이다. 보통의 시장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데 수원 남문시장은 정조의 어명으로 4일과 9일에 서는 5일장으로 조성돼 문밖 장으로 불렸다.

성안에는 전국의 부자들을 불러 모아 시전을 설치하고, 남문 성밖에는 5일장을 만들어 사통팔달의 중심이 되게 했다. 영동시장 등 9개 시장의 발원 역할을 했다. ‘수원 주막에서 난 소문은 삼남까지 간다’는 말이나 인색하고 얄미운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수원 깍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수원이 대표적인 상업 도시였기때문이다. 문밖의 시장인 수원장은 100년여를 이어오다가 1919년 1월 17일 영동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등록됐다.

9개 시장은 주요 취급 품목이 달라 각각의 특색이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수원천 동쪽엔 영동시장에서 밀려난 영세 노점상인들이 골목에 자리를 잡은 못골시장은 항시 생기가 넘치고, 부도 위기의 상가 운영권을 지켜낸 상인들이 똘똘 뭉쳐 순대를 특화 품목화 한 지동시장, 미나리광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서쪽에는 팔달문시장과 남문패션1번가시장(의류, 신발), 시민상가시장(남성복, 여성복), 영동시장(전통한복, 포목, 커튼), 남문로데오시장(갤러리, 표구, 화방) 등이 위치한다.

남문 일대 시장들은 1980년대에 통행이 불편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던 초대형 상권이었으나 대형마트 등에 밀려 고전하다가 현대화사업 등 다양한 지원과 자구 노력으로 다시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시장 구경을 마무리할 즈음에 만나는 거북산당은 수원의 대표적인 마을굿 중 하나인 거북산당 도당굿을 행하는 당집이다. 마을의 안녕을 빌던 굿으로, 매년 시월 초이렛날 화재가 없고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영동시장 당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마지막 아홉 번째 시장은 구천동 공구시장이다. 남문시장 중 하나지만 성 밖의 수원천을 따라 구천교와 매교사이에 있다. 한국전쟁 이후인 1960년대 말부터 시장화돼 산업화와 함께 크게 번창하며 1980년대에는 100곳이 넘는 공구 가게가 밀집했다.

지금은 70여 곳으로 줄었지만 유유히 흐르는 수원천 옆에서 50년 넘게 영업해 온 대장간에서 대장장이의 담금질을 구경할 수 있다.

한편 사통팔달 수원의 이야기를 포함해 수원지역의 근대사를 따라가는 ‘수원의 근대를 걷다’ 순회전시는 6월 26일부터 7월16일까지 도이치 오토월드 1층 로비에 전시된다. 이어 7월 17일부터 8월6일까지는 수원컨벤션센터 1층 로비에서 열린다. [플랫폼뉴스 강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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