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마을' 전남 해남의 해창주조장이 최근 한병에 11만원이나 하는 막걸리 ‘롤스로이스’를 내놓았다.
막걸리가 ‘막 걸러서 막 먹는 술’이라든가 ‘들에서 일하다가 배가 출출할 때 마시는 농주’라는 등 서민의 술로만 인식된 터라, 어떻게 만들었기에 고가로 가격이 책정됐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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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창주조가 출시한 11만원짜리 막걸리 '롤스로이스' 패키지. |
이 막걸리는 인공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고 계약재배한 해남의 유기농 찹쌀과 맵쌀로 빚는다. 덧술을 세 번 더한 사양주(四釀酒)로 약 2개월간의 숙성기간을 거친다. 보통 일반막걸리 발효는 5일이면 끝난다.
덧술은 밑술(효모 배양)에 덧입힌다는 뜻이다. 전통주는 술을 빚는 과정에서 몇 번을 발효하느냐에 따라 단양주, 이양주, 삼양주, 사양주, 오양주로 분류된다. 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어 한 차례만 발효시킨다면 단양주(單釀酒)다.
따라서 해창주조장에서 만든 일반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6도, 9도, 12도짜리 3종이지만 롤스로이스는 무려 18도에 달한다.
롤스로이스는 오병인(59) 대표와 아내(박리아)가 단둘이 빚고 전화주문만 받아 택배로 보낸다. 주문량이 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직원을 둘 수 없단다. 요즘은 양조를 배우겠다는 학생 2명을 아르바이트로 쓰지만 여전히 반자동 기계와 함께 대부분의 과정을 직접 손으로 한다.
술 이름을 롤스로이스로 지은 것은 “제조업계 최고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롤스로이스(Rolls-Royce)는 영국의 고급 자동차 및 항공기 엔진 제조사 이름이다. 해창주조장의 오랜 단골인 ‘식객’ 허영만 화백에게 부탁해 1920년대의 롤스로이스를 레이블에 그려 넣었다고 한다.
오 대표는 "프랑스 와인은 몇 천만원짜리도 마시면서 우리는 우리 전통주에 너무 인색하다"며 "왜 막걸리는 늘 1달러(약 1100원)짜리여야 하나는 생각에 만들었다"고 한 언론에서 밝혔다. 이어 “술도 스토리텔링이 돼야 한다"면서 "11만원짜리 막걸리를 마셨는데 이름이 롤스로이스라고 하면 스토리를 궁금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 대표는 서울에서 도시가스공사에 근무하며 관련 사업을 해오다가 지난 2008년 해창주조장을 인수했다. 삼산천 앞에 자리한 해창주조장은 1927년 일본인이 설립했고 해방이 되자 사장이 일본으로 돌아간 후 2대, 3대 주인을 거쳐 그가 4대 주인이 됐다.
은퇴 후 살 집을 구하려고 전국을 여행하다가 수목이 어우러진 일본식 가옥과 정원이 맘에 들어 샀다고 한다. 그 전부터 해창주조장 막걸리를 좋아해 서울에서 주문해 먹었다.
이어 아내와 함께 막걸리 학교를 다니며 양조 기술을 익혔다고 했다
롤스로이스는 막걸리 매니아와 전통주 전문가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반인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아직 ‘맛’에 대한 이견은 없다.
술 관련 블로그에는 “18도임에도 도수 티가 나지 않고 좋은 차를 마시는 것처럼 가볍게 목을 타고 내려간다. 술에 한 글자 더 붙어 예술이 되는 술이다”(블로거 투명한***) “우아한 단맛 한 모금에 눈이 크게 떠지는 특별한 명품”(블로거 비니**) 등의 후기가 눈에 띈다.
한국식품연구원 기획본부장 김재호 박사는 “술 자체로만 판단하면 상당히 좋은 술"이라며 "밸런스가 좋다. 추천하고픈 술”이라고 했다.
우리술 홍보대사이자 전통주 소믈리에 대회에서 장려상을 탄 개그맨 정준하씨도 “유산균 덩어리를 먹는 느낌이다. 술맛으로만 평가하면 아주 훌륭한 맛이다. 중요한 사람들과 막걸리의 고급스러움을 이야기하며 먹고 싶은 맛”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미지를 좌우하는 외형 포장이 큰 문제로 지적됐다. 일반막걸리 병인 페트병을 사용해 디자인에서 11만원의 가치를 느끼기 힘들다는 게 공통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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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창주조가 출시한 '롤스로이스' 레이블. '식객' 허영만 화백이 그린 1920년대 롤스로이스를 넣었다. |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은 “술의 가격은 맛보다 가치에 비례한다. 플라스틱에, 입국(일본 개량 누룩)에, 볼품없는 디자인에, 특별하지 않은 원료를 사용하고도 11만원의 가격을 매겼을 때 소비자가 얼마나 동의할지는 의문이 든다”고 박한 평가를 내렸다.
우리술 이야기 플랫폼인 ‘대동여주도’의 이지민 대표는 “막걸리의 고급화를 선도하는 막걸리가 나왔다는 건 크게 반길 일이지만 대한민국 최고가 막걸리라는 타이틀을 납득시킬만한 설명과 디자인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금은 막걸리 맛으로 위상을 높인다는 '이미지 마케팅' 주장과 단순한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주장이 크게 엇갈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오 대표는 롤스로이스를 활용한 ‘찹쌀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롤스로이스 20리터를 증류하면 중국의 ‘수정방’보다 맛있는 60도짜리 술 한병이 나온다. 원가를 계산해 보니 한병에 300만원"이라며 "우리나라 600개 양조장이 편하고 부담 없는 가격의 술을 만드니 해창만큼은 자존심을 건 국제적 위상의 술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플랫폼뉴스 강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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