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눈) 레터] 현대차 30대 딜러와 캐나다 노신사의 사연

정기홍 승인 2021.06.26 19:37 의견 0

※ 플랫폼뉴스는 SNS(사회적관계망)에서 관심있게 회자되는 글을 실시간으로 전합니다. '레거시(legacy·유산)적인 기존 매체'에서는 시도하기를 머뭇하지만, 요즘은 신문 기사와 일반 글의 영역도 점점 허물어지는 경향입니다. 이 또한 정보로 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SNS를 좌판에서 한글 모드로 치면 '눈'입니다. 엄선해 싣겠습니다.


<캐나다 현대차 딜러와 노신사의 사연>


 

캐나다의 한 노신사가 현대자동차를 구매하려고 매장을 방문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노신사는 구매 계약을 하면서 딜러에게 한국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딜러는 이 말을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노신사가 차를 찾기로 한 날 현대차 딜러가 준비한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노신사는 그 자리에서 아이처럼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지금부터 현대차 딜러가 준비한 특별한 선물을 알아보겠습니다.


캐나다의 노신사 도널드 엘리엇씨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현대차 미시소거(Mississauga)점을 방문해서 구매 상담을 합니다.


엘리엇씨는 자신을 맞아 주던 동양인 딜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에게 "혹시 한국인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동양인 딜러가 "한국인 맞다"고 하자 엘리엇 씨는 반가워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럼 내 이야기 좀 들어 보겠소?"


캐나다에서 쭉 살아온 엘리엇씨가 왜 한국이란 말에 반가움을 느낀 걸까요? 

 

"멀고도 가슴 아픈 나라". 그의 입에서는 가슴 아픈 사연이 흘러나왔습니다.


"큰 형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가보지도 못했고 이제는 무덤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어 가볼 수도 없습니다."


60년 전, 머나먼 낯선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떠난 형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어려운 형편에 형의 묘지 조차 찾지 못한채 이렇게나 세월이 흘러버린 것인데요.

 

▲ 신상묵 씨가 페북에 올린 부산 유엔군묘역에 있는 엘리엇 씨의 묘비(왼쪽)와 그의 동생.   

 

 ▲ 신상묵 씨가 2012년 11월 페이스북에 올린 글. 당시 신 딜러의 나이는 30세였다.

 

하지만 그는 한국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자신의 형이 피를 흘리며 자유를 지켜준 나라라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당시 큰 형이 20세였으니 어린 엘리엇 씨가 한국을 방문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어렸을 적 형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고 그의 가슴에 남아 있었는데, 그 그리움이 한국인 딜러를 보자 터져나왔던 것 입니다.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있던 한국인 딜러 신상묵 씨는 뭔가 자신이 도울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한가지를 물어봤습니다.


"형님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Roy Duglas Elliott입니다."


자동차 계약도 끝났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지만 신상묵 씨는 손님과 고객 사이가 아닌 한국인으로서 정말 그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는데요. 차랑 출고까지 남은 시간 3일, 72시간 안에 정보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거기 Roy Duglas Elliott씨의 묘비가 있습니까?"


엘리엇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큰 형님의 성함과 1953년에 전사했다는 것에 집중해 일단 서울에 묘지가 있다는 말에 인터넷부터 전화까지 돌려가며 수소문을 했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름 하나만 가지고 묘비를 찾는다는 것이 결코 쉬울 리가 없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차가 나오는 날 오전이 되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실망하고 있던 신상묵 씨는 혹시나 하고 부산 유엔기념공원 사이트에 들어가보았는데요.


그곳에는 유엔군 전몰용사 리스트가 있었습니다.


이 리스트를 확인하던 신상묵 씨는 심장이 벅차올랐습니다.


마침내 그토록 찾던 이름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Roy Duglas Elliott'


사이트에는 묘비 사진까지 올라와 있었는데요. 곧바로 사진을 현상해서 액자에 넣었습니다.


차를 찾으려온 엘리엇 씨에게 신상묵 씨는 액자를 선물하며 형의 묘지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엘리엇 씨는 액자를 꼭 껴안더니 슬픔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60년만의 큰 형님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그 감정은 누구도 감히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엘리엇 씨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뇌었습니다.


이에 신상묵 씨는 이런 말을 건네었습니다. "당신의 큰 형님 덕분에 제가 여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이 사연이 신상묵 씨의 페이스북에 올라오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고마운 마음을 공감하며 이야기가 퍼져나가게 되었고 한국 정부에서도 그의 사연을 알게되었는데요.


곧 엘리엇 씨에게 또 다른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 엘리엇 씨를 한국으로 초청해 감사함을 전한 것입니다.


"형님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낯선 나라에서 자신을 희생한 용사들..그리고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신상묵 딜러..이들이 만들어낸 기적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캐나다는 6·25때 미국, 영국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2만 7천여명을 파병 516명이 전사를 했고 30여명이 실종 1200 여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로이 더글러스 엘리엇 상병이 속했던 캐나다 프린세스 패트리샤 경보병연대 제3대대는 영국 미들섹스 대대, 호주 왕실 제3대대, 뉴질랜드 제16포병연대와 함께 1951년 4월 서울~춘천 간 주 보급로였던 가평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등 6·25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중공군이 캐나다군이 위치한 곳을 주요 공세 목표로 지정하면서 캐나다군이 많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휴전을 석 달 앞둔 1953년 4월 17일 이역만리(異域萬里) 한국 땅에서 꽃다운 20세 약관(弱冠)의 나이에 숨을 거뒀습니다.

 

▲ 1951년 4월 8일 찍은 한국 전선에서의 패트리샤 캐나다 경보병 부대 사진. 

그러나 캐나다군은 절대 그곳을 뚫려선 안된다며 끝까지 사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캐나다군이 한국에서 수행한 작전 중 가장 위대한 전투입니다.


낮선 나라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달려와 준 당신들이 있었기에 한국은 아픔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모든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 호국영령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이 사연은 SNS와 커뮤니티에 올라 감동을 주다가 2012년 11월 국내 일부 언론을 통해 소개됐습니다. 어제가 6·25전쟁이 발발했던 날이어선지 약간 찡한 느낌이 옵니다.

 

사연은 신 딜러가 관련 내용을 페이스북에 글로 올리면서 알려졌습니다. 당시 신 딜러의 나이는 30세, 엘리엇씨는 74세였고요. 지금은 각각 39세와 83세가 됐습니다.

 

지난 2012년 기사의 댓글을 읽어보니 엘리엇 상병은 전투 중에 입은 화상으로 고통을 겪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집안 사정을 안다는 분은 그가 맏형이었는데 남동생 세 분, 여동생 한 분이 있다는 댓글도 있고요.
 

우리가 성금을 거둬서라도 동생을 한국에 초대하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 비용 부담해서라도 초청해 달라고 했고요.

 

이런 성원 덕분에 이듬해인 2013년 6월, 동생 엘리엇 씨는 국가보훈처의 도움으로 형이 전사한지 꼭 60년만에 부산 유엔군묘지에서 잠들어 있는 형을 다시 만났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주 느끼지만 북미나 유럽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자기애)이 대단하지만, 타국을 위해 한 일들도 큰 자랑거리로 삼더군요. 한국에서 피는 흘렸지만 인류가 지향하는 ‘자유’를 지켰다는 뿌듯함 때문인가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저들의 앞선 의식문화가 아닌가 생각도 드네요. 

 

누구에게나 바쁜 일상입니다. 며칠 남지 않은 호국보훈의 달, 70년 전 '적을 죽여야만 내가 사는' 처절한 전장에서 전사하신 분들을 기리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한달만이라도 그분들의 영혼이 외롭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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