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동행 19]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신아연 승인 2019.05.09 07:39 의견 0

[플랫폼뉴스 신아연 칼럼니스트]

               인문예술문화치유공간 블루더스트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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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산책로에서 만난 떠돌이 개. 돼지털처럼 푸석하고 거친 털에 암울한 눈빛. 간간이 등산객이 던져주는 음식 부스러기로 연명하는 듯 사람 주위에서 맴돌기는 하지만, 측은한 마음에 녀석 먹을 것을 찾아보려고 등산 백을 여는 소리에도 흠칫 놀라 달음질치며 물러난다. 음식을 손에 쥐고 아무리 불러도 눈길만 고정한 채 멀찍이 선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모른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절망의 몸짓으로 다만 생존하기 위한 본능만으로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살핌과 사랑을 듬뿍 받는다면 경계심은커녕 이 사람, 저 사람 구분 못하고 헤실헤실 꼬리치며 따르는 것이 개의 천성 아닌가. 그런 천성이 저렇게 변하기까지 개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이 찌릿하고 안쓰럽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양육과 사랑을 못 받고 성장하면 사람을 경계하고 눈치를 살핀다. 세상을 두려워하고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심리적으로 공허하고 정서적으로 황폐하다. 강박적으로 자신을 살피며 한 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한다. 신경증과 의존증에 만성으로 시달린다. 삶을 대하는 기본자세부터가 전쟁터에 끌려 나온 소년병처럼 공포스럽고 미숙하다. 그러다 보니 우울증을 달고 산다. 다른 사람 아니고 바로 내 얘기다.  

 

어떻게 살 것인가. 첫 단계는 그런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남과 같지 않다. 아픈 사람이다. 겉은 멀쩡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장애자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인 후에라야 내 상황에 맞는 삶의 레이스를 펼칠 수 있다. 출발선이 다르고 성취선이 다르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성취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숙명적으로 주어진 삶의 마이너스적 측면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 그것이 곧 ‘자기답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가토 다이조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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