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눈) 레터] '바보 의사' 장기려

정기홍 승인 2021.09.11 11:10 | 최종 수정 2021.12.11 14:26 의견 0

※ 플랫폼뉴스는 SNS(사회적관계망)에서 관심있게 회자되는 글을 실시간으로 전합니다. '레거시(legacy·유산)적인 기존 매체'에서는 시도하기를 머뭇하지만 요즘은 신문 기사와 일반 글의 영역도 점점 허물어지는 경향입니다. 이 또한 정보로 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SNS를 좌판에서 한글 모드로 치면 '눈'입니다. 엄선해 싣겠습니다.


평생을 병원 건물의 옥탑방에서 기거하며 밤낮 없이 환자를 보살핀 의사가 있습니다.

덕분에 그가 근무한 병원에서는 어떤 시간이라도 아픈 사람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그를 바보라고 불렀습니다.

병원비가 없는 사람을 위해 자기 월급을 가불해서 대신 병원비를 내주는 마음 따뜻한 바보였습니다.

남북 분단으로 이산가족이 되어 해어진 아내를 그리워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이 의사는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선생님입니다.

어느 날 경찰서에서 선생님께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께 발급된 월급수표를 어떤 노숙인이 사용하려다 신고로 잡혀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경찰서로 달려갔습니다.

"아니, 이 사람에게 적선을 하려는데 마침 가진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냥 드린 겁니다. 아이고, 저 때문에 이분이 괜히 경찰서까지 와서 고초를 겪으시니 이거 미안해서 정말 어쩌지요."

어느 날은 한 환자가 병원비가 없다고 한탄을 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또 자신의 월급을 미리 받아 환자의 병원비를 대신 내주려고 했으나 병원에서 거절했습니다.

이러다가는 선생님이 돈이 없어서 식사조차 제대로 못 할 판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던 선생님이 환자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밤중에 병원 뒷문을 열어 놓을테니 눈치를 봐서 살짝 도망가세요."

수많은 인술을 펼치고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초석을 만들어 주신 분이 바보라 불리며 존경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1995년 세상을 떠난 장기려 선생님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세상에 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한 그 어떤 것도 세상에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 기자는 처음 알게 됐는데, 꽤 유명했던 분이네요.

장기려 박사는 부산복음병원(현 고신대 복음병원)의 설립자 겸 초대 원장, 제2대 부산대 의과대학장 겸 병원장을 역임했군요. 지난 1968년에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창설했는데 임의가입의료보험 체제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의료보험조합이고, 이후 의료보험조합 설립운동인 청십자운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1977년에 도입된 국민의료보험 출현에 영향을 많이 준 것으로 평가됩니다.

북의 아내를 향한 순애보 애틋합니다. 장 박사는 끝내 북의 아내를 만나지 못하고 숨을 거뒀습니다. 여러 곳의 청혼도 거절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북에 살아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네요. 북에 다녀오라는 전두환 대통령의권유도 뿌리쳤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같이 월남했던 둘째 아들 가용(1935~2008년·의사) 씨가 지난 2000년 8월 17일 평양에 가서 50년 만에 어머니를 뵙고 아버지의 소식을 전했답니다.

평생을 청빈과 봉사하는 삶을 살아 '바보 의사', 한국의 슈바이처 애칭을 갖고 있습니다. 병원비가 없던 환자에게 밤에 병원 뒷문을 열어 놓을테니 도망가라고 한 대목이 많이 와닿습니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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