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분석] 바이러스가 바꾼 건 변화의 방향이 아니라 속도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온라인팀 승인 2020.11.03 18:46 | 최종 수정 2022.01.04 21:50 의견 0

[트렌드 코리아 2021] 팬데믹 위기에 대응하는 당신의 전략은 무엇인가?

2020년 연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해 가는 중이다.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은 막대한 심리적·경제적 위기를 몰고 왔지만, 삶은 계속되고 소비는 이루어진다.

사실 우리가 직면하는 이 많은 변화들은 모두 이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왔던 트렌드들이다. 언택트, 집 중심의 라이프 스타일, 안전과 신뢰의 추구, 개인화된 인간관계, 온라인 쇼핑의 증가 등 지금 주목받는 대부분의 트렌드는 이미 저변이 확대되고 있었으나 이번 사태로 그 확산 속도가 더욱 빨라졌을 뿐이다.

한두 달이면 끝날 것 같던 코로나19 사태가 끝을 짐작할 수 없게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완전한 종식은 불가능하다는 견해까지 등장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의 해군장교 제임스 스톡데일(James Stockdale)은 베트남전쟁 중 포로가 되어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약 8년간 온갖 고문과 고초를 겪었다.

포로수용소에서 그와 함께 혹독한 생활을 했던 사람들 중 "이번 크리스마스가 되면 풀려나겠지", 이어 "추수감사절이 되면 풀려나겠지"라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일반적 낙관론자들은 기대가 좌절될 때마다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결국 다수가 자살하거나 죽었다고 한다.

반면 비관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강한 생존 의지를 보였던 합리적 낙관주의자들은 가혹한 포로 생활을 견뎌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희망을 가지더라도, 현재 직면한 문제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컨설턴트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이렇게 정리한다.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라. 그러나 믿음은 잃지 말라."

인류의 연대를 예수를 기점으로 BC(Before Christ)·AD(Anno Domini)로 나누듯, 이제는 코로나 사태를 전후로 BC(Before COVID)·AD(After Disease)로 나눠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한번 가속화된 변화는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트렌드는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고객 트렌드와 함께 변화해 가는 '학습 능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많은 변수를 철저하게 고려해 실패하지 않을 합리적인 계획을 세워 그것을 충실하게 실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계획하는 사이에 시장 상황이 크게 변화해 버렸다면? 치밀하게 세운 계획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에서 필요한 것은 일단 시도하고, 실패하든 성공하든 거기서 배워 다시 시도하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가설 검증 능력과 학습 역량이다.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조직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 최근 조직관리 영역에서 '실패를 수용하는 문화'를 자주 강조하는데, 이와 같은 맥락이다. 실패한 프로젝트에 담당자의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그 조직은 어떤 새로운 시도도 하지 않게 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패했느냐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배워 어떻게 개선했느냐다. 핵심은 속도다.

'트렌드 코리아 21'은 백신(vaccine)의 어원이 된 소(vacca)의 해를 맞아, 현실을 직시하되 희망을 잃지 말자는 의미에서 COWBOY HERO를 2021의 트렌드 키워드로 선정했다. 날뛰는 소를 마침내 길들이는 능숙한 카우보이처럼, 시의적절한 대응으로 팬데믹의 위기를 헤쳐나가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

그 열개 키워드의 내용과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자세히 살펴 보자.

1. COWBOY HERO Coming of 'V-nomics' 브이노믹스

2. Omni-layered Homes 레이어드 홈

3. We Are the Money-friendly Generation 자본주의 키즈

4. Best We Pivot 거침없이 피보팅

5. On This Rollercoaster Life 롤코라이프

6. Your Daily Sporty Life #오하운, 오늘 하루 운동

7. Heading to the Resell Market N차 신상

8. Everyone Matters in the 'CX Universe' CX

9. 유니버스 ‘Real Me’: Searching for My Own Label

10. 레이블링 게임 ‘Ontact’, ‘Untact’, with a Human Touch 휴먼터치

1. 브이노믹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이라는 미증유의 위기 속에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만나고 있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상상했던 그런 세상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팬데믹은 항상 미래를 앞당겼던 전력이 있다. 변화는 이미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사회적 대변혁은 그 진행 속도를 가속화 시킨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초래한 경제와 소비의 변화는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본 서의 첫 키워드인 브이노믹스(V-nomics)는 바이러스(virus)의 V에서 출발한 단어로 "바이러스가 바꿔놓은 그리고 바꾸게 될 경제"라는 의미다.

브이노믹스는 다음 네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① 경기의 반등, 즉 'V자 회복'은 가능할 것인가? ② 코로나로 가속화된 언택트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variation)할 것인가? ③ 코로나 사태로 소비자들의 가치(value)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④ 브이노믹스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우리에겐 어떤 비전(vision)이 필요한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늘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 위치하지만,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음과 같이 준비하고자 한다.

① 향후 경기회복의 양상은 전반적으로 K자형 양극화를 보이겠지만 업종별로는 V, U, W, S, 역V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② 언택트 트렌드는 대면·비대면·혼합의 황금비율을 찾아갈 것인데 조직 관리에서는 '성과 위주의 KPI', 교육에서는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혼합 학습),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온라인 학습 뒤 오프라인 학습)', 유통에서는 '고객 경험' 극대화가 핵심 요소로 떠오를 것이다. ③ 소비자들의 가치는 안정적인 브랜드와 상생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으로 옮겨가고 친환경과 본질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질적 변화를 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심각해져가는 코로나 양극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공동체 의식의 회복, 정부 역할의 균형 회복, 각 조직의 변화 대응 역량이 중요하다. 흑사병이 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를 이끈 결정적 계기가 됐듯, 이 세계적인 희생이 진정한 21세기의 르네상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분명한 비전과 용기 있는 트렌드 대응 능력이 절실하다.

2. 레이어드 홈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정형적이고 고정된 공간, 집이 변화의 진앙지가 되고 있다. 사실 '집과 동네'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트렌드였다.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전 국민이 오랜 시간 집에 머무르면서 집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 결과 마치 여러 벌의 옷을 겹쳐 입어 멋을 부리는 '레이어드 룩(layered look)' 패션이나, 이미지 프로그램 '포토샵'에서 이미지의 층(層)을 의미하는 '레이어(layer)'처럼, 집이 기존의 기본 기능 위에 새로운 층위의 기능을 덧대면서 무궁무진한 변화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집의 기능이 다층적으로 형성된다는 의미에서 '레이어드 홈'이라는 트렌드를 제안한다.

최근의 집이 보여주는 층위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기본 레이어(Basic Layer)는 기존에도 수행해 왔던 기능을 심화하는 층이다. 둘째, 응용 레이어(Additional Layer)는 그동안 집에서는 별로 하지 않던 일을 집에서 해결하는 층이다. 셋째, 확장 레이어(Expanding Layer)는 집의 기능이 집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고 집 근처, 인근 동네로 확장되며 상호작용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기본 레이어에서는 집의 기본적인 기능이 강화되면서 위생 가전·가구·인테리어 산업의 발전을 가져오고 호텔 아이템이나 로봇 등을 활용해 프리미엄화 하고 있으며, 응용 레이어에서는 집에서 학습·근무· 쇼핑·취미·관람·운동 등의 전에 없던 활동을 수행하면서 다기능화 되는 집의 모습을 보여준다.

확장 레이어는 슬리퍼를 신고 다닐 수 있는 집 근처, ‘슬세권’으로 경제활동의 영역이 넓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코로나 사태는 공간의 미래를 앞당겼다. 환금성 높은 자산으로서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하우스’의 의미가 삶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재정의되는 ‘홈’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레이어드 홈 트렌드는 2021년의 대한민국을 넘어 미래주택 공간의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생각이 변하면 미래도 변한다. 단언컨대 미래 소비산업 변화의 요람은 집이 될 것이다.

3. 자본주의 키즈

돈과 소비에 대한 편견이 없는 새로운 소비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광고·시장·금융 등 자본주의적 요소에 친숙하고 자본주의 생리를 몸으로 체득한 세대가 소비의 주체로 성장한 것이다. 어릴 적 월드컵 경기를 보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운 차세대 선수들을 ‘월드컵 키즈’라고 일컫듯이 이 새로운 소비자들을 '자본주의 키즈'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키즈가 젊은 세대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IMF 경제위기 이후 차츰 자본주의 논리에 익숙해진 기성세대 또한 경제와 소비에 대한 사고방식이 전과 같지 않다. 결국 자본주의적 어법을 제1언어로 구사하 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본주의 키즈에 해당한다.

시장의 이윤 논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자본주의 키즈들은 광고에 관대하며 이를 '이용'할 줄 안다. 이 때문에 PPL(Product PLacement, 기업 협찬의 대가로 드라마 등에 상품 광고하는 기법) 혹은 '앞광고'는 그냥 넘어가지만 협찬을 숨기는 ‘뒷광고’에는 격렬하게 분노한다. 소비자가 광고를 수용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성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이들은 소비를 통해 행복을 구하는 데 주저함이 없지만 구매 과정에 많은 공을 들이 며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이른바 ‘플렉스(flex)’라고 불리는 과시형 소비를 할 때도 렌트할 것과 구매할 것을 구분하고, 구매를 하더라도 여러 경로를 찾아 최저가로 구매하는 등 나름의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

마지막으로 투자에 매우 적극적이다. 카페에 앉아서 영화 이야기를 하던 커플이 부동산 투자 강의를 함께 듣고 ‘임장(부동산 현장 답사)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며, 대학생·군인 등도 투자 대열에 합류한다. "돈 밝히면 못쓴다"는 말은 옛말이 됐고, 이제 "돈에 밝지 않으면 정말 '못 쓰게' 된다"는 말이 생활 신조가 되고 있다.

경제와 시장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 '인적 자본'이 되어 경쟁하고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무작정 물질주의적이거나 충동적이지만은 않다. "행복은 충동적으로, 걱정은 계획적으로" 할 줄 아는 자본주의 키즈들은 새로운 경제관념으로 무장한 채 브이 노믹스와 그 이후를 이끌게 될 것이다.

4. 거침없이 피보팅

피보팅(pivoting)이란 원래 ‘축을 옮긴다’는 뜻의 스포츠 용어인데, 코로나19 이후에는 사업 전환을 일컫는 중요한 경제용어가 됐다. 바이러스 확산이나 트렌드 변화로 인해 소비시장이 급격히 바뀔 때, 기민한 비즈니스 모델의 변환은 조직의 생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전략이다.

하지만 이제 피보팅은 단지 위기 상황에서의 방향 수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운영 전반의 중요한 트렌드로 확장하고 있다. 제품·전략·마케팅 등 경영의 모든 국면에서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끊임없이 테스트 하면서, 그 방향성을 상시적으로 수정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피보팅은 새로운 아이템과 기술로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에게 필수적인 덕목이지만, 극도로 VUCA(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mbiguity)해지는 환경에 직면하고 있는 대기업에게 도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어떤 자원을 중심으로 사업 전환을 꾀하는지에 따라 피보팅 전략은 ① 기술, 운영 노하우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핵심 역량 피보팅', ② 시설 설비·공간· 건물 등을 중심으로 사업 전환을 꾀하는 '하드웨어 피보팅', ③ 그동안의 사업을 통해 이미 잘 알 고 있는 소비자 집단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타깃 피보팅', ④ 새로운 품목을 기획하고 판매 경로를 변경해 사업 전환의 기회를 모색하는 '세일즈 피보팅', 이렇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위기는 부실한 기업을 솎아내는 자본주의의 정리 메커니즘이다.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혁신을 창조하는 기업은 '혁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의 변화하는 행동 양식'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코로나19 위기와 디지털 대변혁을 넘어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앞둔 지금, '거침없이 피보팅' 하는 기업만이 살아 남는다. 끊임없이 변하는 시장을 상 대하기 위해 주저없이 피보팅 하라. 누가 이 위기의 순간에 승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5. 롤코라이프

1995년 이후에 출생한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세대인 Z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기성세대와 기업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갑자기 뜬 챌린지에 너도나도 몰려 들고, 특이한 것에 반응하며 색다름을 즐기는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고 다른 재미로 갈아탄다. 뜨겁게 달아 랐던 유행도 금세 식어버린다. 이런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 반짝하고 지나가는 짧은 유행에 우르르 몰려가 참여하고, 그 안에서 재미를 찾아 즐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놀거리로 넘어 가는 모습이 놀이기구를 요리조리 갈아타는 모습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1'서는 이처럼 롤러코스터를 타듯 자신의 삶을 즐기는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롤러코스 터 라이프’, 줄여서 ‘롤코라이프’라 명명하고, 이러한 방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롤코족’ 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놀이기구 앞에 긴 줄이 있으면 더 타고 싶듯이 젊은 소비자들은 유행하는 이벤트나 챌린지에 자발적으로 합류하고, 롤러코스터의 ‘예측할 수 없는 속도감’을 즐기듯 상 식적인 예측의 범위를 넘어서는 짧은 변주와 이색적인 협주(컬래버레이션)를 찾으며, 하나의 유행이 끝나면 뒤돌아보지 않고 하차한 후 다음 유행으로 서둘러 갈아탄다.

롤코라이프의 등장은 참여를 중시하고 일상에서의 재미를 찾아다니는 Z세대의 정체성과 흐름을 같이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은 ‘디지털 역마살’이라도 든 것처럼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콘텐츠를 이리저리 찾아다닌다. 롤코라이프는 이제 소수 젊은이들의 변덕이 아니라 진지하게 대응해야 할 시장의 일반적 변화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은 고객의 변화에 맞춰 나갈 수 있는 ‘빠른 생애사 전략’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한 100% 완벽한 마케팅보다는 미완성일지라도 끊임없이 치고 빠지는 ‘숏케팅’이 필요해졌다.

6. #오하운, 오늘하루운동

운동 붐이 일고 있다. 등산로에는 형형색색의 레깅스를 차려입은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소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골프·서핑 등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러닝은 트레일 러닝·클린 세션 등으로 변주되고, 요가는 플로팅 요가·명상 요가·선셋 요가 등으로 분화된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트렌드가 단순히 활동 자체로 끝나지 않고, 패션·인증샷·챌린지 등으로 이어져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개인의 성장까지 이룬다는 점이다.

나아가 크루나 커뮤니티를 통해 여러 사람이 함께 운동하면서 관계를 확장해 나가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운동 열풍은 단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건강 증진과 면역력 강화에 관심이 커진 결과만은 아니다. 자기 관리에 투철한 MZ(밀레니얼+Z세대)의 세대적 특성, 정체의 시대에 운동으로 성취감을 찾으려는 경향, 관련 기기 및 플랫폼 시장의 성장 등 복합적인 원인이 일으킨 현상이다.

운동의 일상화는 소비자가 시간을 소비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한다. 무엇보다 운동이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브랜드는 소비자의 여가를 지원하는 내비게이터이자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설계하는 ‘라이프 액티비티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운동의 일상화는 한국인의 삶의 기준이 성취와 경쟁에서 즐겁고 건강한 가치를 찾는 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7. N차 신상

중고시장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요즘 중고마켓은 ‘아나바다 운동’으로 대표되는 이전의 중고거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단순히 ‘남이 쓰던 상품’이 아니라, 몇 번째 받아쓰더라도 새것에 버금가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중고품은 이제 ‘신상품’과 다름없어졌다.

이러한 현상을 ‘N차 신상’이라 지칭하고자 한다. ‘여러 차례(N차)’ 거래되더라도 ‘신상(품)’과 다름없이 받아들여지는 트렌드를 표현한 것이다.

N차 신상은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안 쓰는 물건을 팔아 현금화 하거나 재능을 거래해서 용돈을 버는 식인데, 특히 명품이나 한정판 운동화에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리셀’은 MZ세대의 새로운 투자 방법으로 떠올랐다.

나아가 N차 신상의 거래 플랫폼은 소비자의 놀이터다. 마케팅놀이·댓글놀이는 물론이고 보물찾기의 매력에 빠진 소비자들이 N차 신상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고마켓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동체로도 기능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뭉치고 취미로 엮이면서 중고시장이 생활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이렇게 N차 신상의 판이 커지게 된 원인으로는 구매할 때 처분까지 생각하는 필환경 시대의 도래, 공유에 너그럽고 싫증을 빨리내는 MZ세대의 등장, 코로나19로 인한 짠테크와 집콕소비 증가, 쉽고 안전한 거래 플랫폼의 발달 등을 들 수 있다.

N차 신상 시장이 정착되려면 중고품 시장을 투명하게 관리하며 신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서비스와 제도가 보완돼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중고시장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하여 서비스 차별화를 시도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동시에, 단지 중고거래 플랫폼의 기능을 넘어 커뮤니 티로서의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에게는 중고마켓에 열광하는 소비자의 감성을 끌어안는, 보다 유연한 시도가 필요하다.

N차 신상은 이제 더 이상 낡고 오래된 2등 물건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 제품보다 N차 신상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소비자들, 이제 시장이 소비자에게 답해야 할 차례다.

8. CX 유니버스

고객이 접하는 상품과 브랜드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넘쳐나는 소비자 정보 속에서 고객 충성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편의성을 좇는 소비자를 위해 브랜드를 관리하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바로 고객 경험, 즉 CX(Customer eXperience)의 총체적 관리다. CX가 단편적인 접점 관리에 그치지 않고 마치 마블 유니버스처럼 특정 브랜드의 세계관을 함께 공유할 때,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는 이를 ‘CX 유니버스’라고 부르고자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디지털의 접점을 접하며 살아가는 오늘날, 소비자들은 모든 접점에서 마찰과 번거로움이 없는 매끈한(seamless) 고객경험을 원한다. 특히 체험 마케팅에 익숙한 MZ세대 고객들 을 대상으로 한 CX의 차별화가 최우선의 시장 경쟁 전략이 되면서, 고객경험을 기획하는 일은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CX 유니버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① 물 흐르듯 매끈한 심리스 경험을 제공하고, ② 고객의 자발적 데이터 제공 경험을 유도하며, ③ 색다르고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CX는 신뢰와 몰입을 거쳐 충성까지 가는 여정이다. 이 여정은 끝나지 않고 되먹임 되어 다음 구매 때 다시 시작된다. 이 과정은 반복될수록 확고해지는데, 이를 ‘CX 사이클’이라고 한다. 충성 고객이 사라진 시대, CX 사이클은 고객충성이라는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거위다.

마블 유니버스처럼 팬덤을 만들고 고객이 브랜드와 함께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고 싶다면, 2021년을 CX 고객경험 혁신의 원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9. 레이블링 게임

나를 꽃으로 표현한다면 무슨 꽃일까? 혹은 색깔이라면, 브랜드라면?

최근 다양한 유형의 자기진단 테스트가 인기다. MBTI·꼰대레벨·학과 테스트 등 각종 자기성향 유형화 테스트가 급격히 유행하는 것은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찐(진짜)’ 자아를 찾으려는 현대인의 갈구로 해석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는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 한 사람에 대해서도 맥락에 따라 다양한 큐레이션을 실시하는 ‘초개인화’의 시대에 “나는 누구인가?”는 스스로도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이 됐다.

사회적 접촉이 현격히 줄어들며 실존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팬데믹 시대의 현대인이 ‘내 안의 나’,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일컫는 ‘레이블링 게임(Labeling Game)’이라는 용어를 새롭게 제시한다.

이는 자신에게 스스로를 규정하는 딱지를 붙인다는 의미로서, “자기정체성을 특정 유형으로 딱지(레이블)를 붙인 뒤, 해당 유형이 갖는 라이프 스타일을 동조·추종함으로써 정체성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게임화된 노력”을 말한다.

레이블링 게임은 현실의 자아를 확인해줄 뿐 아니라 타인과의 공유와 비교를 통해 ‘자기 정체성 찾기’ 놀이로 진화하기도 한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일상에서 소비의 즐거움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소비사회를 사는 현대인에게 자아란 단지 철학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소비자들은 각종 테스트를 통해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이에 따라 자기 유형에 맞춘 소비를 하게 됐다.

과거에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정체성에 맞는 브랜드를 선택했다면, 이제는 “이런 브랜드를 구매 하는 걸 보니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역의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레이블링 게임이 우리 산업에 의미하는 바는 이제 브랜드는 브랜드 정체성과 타깃 고객의 자기특성이 정확히 들어맞는 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비자와 쌍방향으로 소통하며 자발적인 정체성의 동 일시를 이룰 수 있을 때,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쉬운 일 은 아니지만, 브랜드의 미래는 바로 이 동일시에 달려 있다.

10. 휴먼터치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조명받은 트렌드는 ‘언택트(untact)’ 기술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언택트 기술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인간과의 단절이나 대체가 아니라, 인간적 접촉을 보완해 주는 역할이어야 한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휴먼터치(Human Touch)’의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혼재한 시장에서 소비자가 구매 결정을 내리는 가장 중요한 순간인 ‘진실의 순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휴먼터치다. 진정한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휴먼터치를 구현해나가기 위해서는 ① 고객 중심의 공간과 동선 꾸미기, ② 인간적 소통의 강화, ③ 기술에 사람의 숨결 불어넣기, ④ 내부 조직 구성원들의 마음 챙김이 중요하다. 장시간 이어지는 온라인 접속 상태는 인간의 연결 강박을 강화시키며 오히려 더 큰 외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화상회의 시스템도 전에 없던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나만 따돌려 질지 모른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과 디지털 패러독스에 따른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휴먼터치가 의미하는 바는 인간적인 손길을 기술로 만들거나 기술을 최대한 인간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간의 손길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휴먼터치는 사실 대단한 첨단 기술이 필요하거나 세계적인 큰 기업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에 다가가는 진정성을 가진 조직이라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브이노믹스’ 키워드에서 언급했듯이, 코로나19 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기본’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불가항력의 역병이 창궐하고, 첨단 기술은 빛의 속도로 앞서나가며, 트렌드는 숨 가쁘게 바뀌는 어려운 시대 다.

'트렌드 코리아 2021'이 이 변화의 삼각파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그리고 마지막 키워드를 제시해야 한다면 그 답은 하나, 바로 진심이 담긴 인간의 손길이다.

■ '트렌드 코리아' 선정, 2020년 10대 트렌드 상품(숫자-한글-영문 순)

1. 1990년대

- 한국의 문화적 르네상스 시기였던 1990년대의 음악과 패션이 인기

- 젊은 세대에게는 새롭고, 기성세대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문화

* 관련 키워드/ <2019> 요즘옛날, 뉴트로

2. 국내여행

- 해외여행을 대신한 국내여행 열풍

- 자동차를 활용한 차박,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발굴 등 새로운 여행 트렌드 대두

* 관련 키워드/< 2018>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

3. 기생충

- 한국 역사상 최초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한국 영화의 자부심

-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양극화 문제에 대한 전 세계적 공감

* 관련 키워드/ <2020> 멀티페르소나

4. 무선이어폰

- 현대인들의 사회 심리적 보호막 역할

- 스마트폰 관련 주변기기 시장의 성장

- 노이즈 캔슬링이나 방수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여 진화

*관련 키워드/< 2018> 나만의 케렌시아, <2019> 그곳만이 내 세상, 나나랜드

5. 배달서비스

-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배달서비스 활성화

- 기존 배달음식 이외에도 커피, 디저트 등 배달 품목의 다양화

- 특화된 배달 어플리케이션의 등장

* 관련 키워드/ <2020> 라스트핏 이코노미, <2020> 편리미엄

6. 지역화폐

- 지역상권 침체에 대처하는 지방자치자체의 전략

- 어려운 경기 속 할인혜택으로 큰 인기

- 슬세권 소비트렌드와 지역상권 활성화의 시너지 효과

* 관련 키워드/ < 2020> 라스트핏 이코노미

7. 트로트

-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음악 장르로 도약

- 음악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예능·광고계까지 장악한 트로트 스타

- 중장년층의 적극적인 문화 활동

* 관련 키워드/<2020> 오팔세대,< 2020> 팬슈머

8. 화상 커뮤니케이션

-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화상업무 및 화상교육이 일상화

-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 대면과 비대면의 경계

* 관련 키워드/ <2018> 언택트 기술,< 2018> ‘워라밸’ 세대

9. KF마스크

-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KF마스크 품귀현상

- 생활방역의 중요성 증가

* 관련 키워드/ <2017> 각자도생의 시대

10. OTT서비스

- 콘텐츠 소비방식의 변화

- 코로나19로 인한 실내 활동 지속으로 급격한 성장세

- 다양한 OTT서비스 플랫폼 출범

* 관련 키워드/ <2020> 초개인화 기술,< 2020> 스트리밍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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