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백석(1912~1995)과 그의 영원한 연인이었던 '문학 기생' 김자야(1916~1999·본명 김영한·기명 김진향)의 짧았지만 영원한 사랑을 담은 책이 다시 나왔다. 산문집 '내 사랑 백석'(문학동네 간). 이 책은 지난 1995년, 1996년, 2019년에 이어 네 번째(3판 2쇄)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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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야 지음/ 문학동네/ 312쪽/ 1만 35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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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여덟 살 때의 기생 자야(왼쪽)와 시인 백석. |
이 책은 팔순의 자야가 사망 3년 전인 1996년 젊은 시절에 백석과의 만남과 옛사랑을 추억하며 쓴 글들이다.
기생 자야가 서울의 성북동 기생집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할 당시 "평생을 모은 천억원(당시 시가)을 준대도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는 한마디로 그에 대한 존경과 연모의 심경을 밝혀 화제를 낳았다. 남녀 간의 '욕망의 공간'이던 대원각은 지난 1997년 수행의 도량인 길상사로 다시 태어났다.
자야는 대원각을 시주한 데 이어 카이스트(KAIST)에도 122억원을 기증했다. 창작과비평사에도 2억원을 기증해 ‘백석문학상’을 만들었다. 10대의 기생 시절에도 불우이웃을 위해 1주일간 번 화대 65원 42전이란 큰돈을 종로경찰서에 내놓기도 했다. 당시 최고급 해군 단화가 2원 10전이었으니 돈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자야는 당시 '삼천리문학'에 수필이 실릴 정도의 엘리트 기생이었다. 1953년 만학도로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하기도 했다. 이후 대원각의 주인이 돼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그는 특히 춘앵무에 능했다고 한다.
시인이자 가요평론가인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가 책이 나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시인의 발문인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족적'엔 김자야의 원고 집필과 완성 과정을 상세히 실었다.
이 책은 1부(운명), 2부(당신의 '자야'), 3부(흐르는 세월 너머)로 나뉜다.
1부에서는 김영한이 '기생 김진향'으로 입적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성장기와 젊은 시인 백석과의 애틋한 첫 만남을, 2부에서는 백석으로부터 '자야'라는 아호로 불리며 절정의 사랑을 나누었던 3년간의 이야기를, 3부에서는 팔순에 가까워진 자야의 심경을 보여준다.
책 끝에는 자야의 집필과 출간을 뒷바라지하며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세상에 알린 이동순 시인의 발문과 백석의 연보를 덧붙였다.
멋을 부리고 모던 보이였던 백석이 어떻게 토속적인 시를 쓸 수 있었는지, 그의 시에 나오는 '나타샤' '고흔 당신' '허준' 같은 시어에 얽힌 실제 인물들은 누구인지, 그의 성격은 어떠했는지, 교사와 기자로 일하다가 다시 만주로 떠난 이유는 무엇인지 등 젊은 시절 백석의 삶과 그 궤적을 고스란히 담았다.
함흥권번의 기생이었던 김진향(자야)은 스무 살 때 함남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백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본래 서울에서 난 자야는 종로 인사동에 있던 조선권번을 다녔다. 자신을 아끼던 신윤국(신현모, 1894∼1975)의 후원으로 열아홉 살 때인 1935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공부를 하다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신윤국이 투옥됐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어 투옥된 신윤국을 면회하러 함흥으로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그 길로 함흥에 눌러앉았고, 같은해 가을 요릿집 함흥관 연회에서 백석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날은 내가 함흥권번에 소속이 되어 함흥에서 가장 큰 요릿집인 함흥관으로 나갔던 바로 첫날이었다. 영생고보의 어느 교사가 이임하는 송별회의 자리인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당신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내 삶의 은인이신 해관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타관 객지에 잠시 와서 머물고 있는 처지였고, 당신 역시 서울에서 그 바람 센 함흥땅으로 부임해와 있는 멋쟁이 시인 총각이었다. 어쩌다 우리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 그렇게도 어이없이 사로잡히고 말았는지." (46쪽, '마누라! 마누라!')
"말없이 연거푸 기울어지는 술잔에 용기를 얻은 당신은 술상 아래쪽에서 더덤썩 나의 손목을 잡았다. 꽉 잡힌 내 손목에는 이미 불꽃 튀는 사랑의 메시지가 뜨거운 전류처럼 화끈거리며 전달이 되었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당신의 말이 나의 귀를 놀라게 하고, 또 의심케 했다." (47쪽, '마누라! 마누라!')
2부는 백석과의 사랑 그리고 이별의 기록을 담아냈다. 백석이 지어준 '자야'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 종로 청진동 시절 사랑하는 자야를 놓아두고 세 번이나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냉엄한 신분제 시대의 사랑, 거리에서 지인이나 자야의 손님과 마주쳤을 때마다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시인과 기생 커플의 고뇌와 갈등, 백석 집안의 극렬한 반대와 자야의 방황, 자야에게 중국 지린성 창춘으로 도망가자고 제안하는 백석의 사랑이 한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이 책의 두 연인 이야기에서 백석과 백석 시에 관한 새로운 정보도 얻는다. 백석의 시 '바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등에는 애정의 흐름이 드러난다. 마지막 장에서는 자야가 백석의 시를 어루만지며 둘의 젊은 시절과 북으로 가 생사조차 알 길 없는 백석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정이 담겨 있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 덧붙이면...
길상사로 바뀐 이후 두번을 들러 뜰을 거닐었습니다. 경복궁에서 삼청터널을 지나 성북동 고갯길에 있습니다. 길상사로 바뀌기 직전의 대원각은 요정이라지만 일반인도 드나드는 고급 고깃집 정도였다고 합니다.
총 7000평이 넘는 공간에 40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자리해 인상 깊었습니다. 암자 비슷한 건물도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어 '요정 정치' 시절 신상 노출을 고려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법정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스님을 10년 간 설득한 끝에 1000억원대 요정을 시주했다고 합니다. 1997년 12월 14일 대한조계종 송광사 분원인 길상사로 개원했고요. 송광사 분원이 된 건 법정스님이 1954년 송광사에서 득도한 연(緣) 때문인 듯합니다. 당시 "내 모든 재산이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말해 그녀와 백석과의 사랑 이야기는 샘물과 같은 사연으로 오랫동안 회자됐지요.
법정스님은 1932년 10월 8일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2010년 3월 11일 입적하셨습니다.
그녀는 부모에게서는 '김영한'이란 이름을, 권번에서는 '진향'이란 기명을, 연인 백석에게서는 '자야'란 애칭을, 법정으로부터는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고 치열하게 살다가 지난 1999년11월14일 육신의 옷을 벗고 길상화로 돌아갔습니다. 말을 못할 정도로 기력이 약해진 노년 나이 때에도 자신의 아파트에서 국학 후학(대학생 등)들을 가르쳤다고 전해집니다. 그녀의 소원대로 눈 오는날 다비한 유해는 길상사의 뒤뜰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길상사에 들르면 민주화가 덜 했던 시절, 권부들의 '한탕 놀잇감' 공간으로만 보지 말고 젊은 시인과 총기 있던 기생과의 사랑 이야기, 더불어 평생 모은 거금을 남김없이 주고 간 그녀의 한길 인생도 기려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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