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12곳 "재개발 하자…벽화에 1천억 쓰면 뭐하나"

오 시장, 도시재생 재검토·축소 가능성
'도시재생 1호' 종로 창신동 1천억 들여
주거 개선 안돼 젊은 부부들 떠나

강하늘 승인 2021.04.14 13:44 | 최종 수정 2021.12.24 20:00 의견 0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을 계기로 박원순 전 시장의 대표적 부동산 정책인 도시재생사업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종로구 창신동 등 12개 구역 도시재생해제연대는 지난 11일 지역 대표자 회의를 열고 줍비된 구역 해제 찬성 주민 동의서, 지역별 실태 보고서 등을 서울시에 전달하기로 했다. 건의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대적 반대집회도 열 계획이다.

서울시는 일단 “조심스럽다”는 반응이지만 오 시장이 후보 시절 도시재생 축소를 수차례 언급한 만큼 공공재개발 등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해제연대에 참여한 곳은 종로구 창신동과 숭인동, 서울역 인근 용산구 동자동, 용산구 서계동, 성북구 장위11구역, 마포구 수색14구역, 광진구 자양4동, 강남구 일원동 대청마을, 구로구 구로1구역, 관악구 신림4구역과 경기 성남시 태평2동·4동, 수진2동 등 12곳이다.

해제연대는 "도시재생으로는 좁은 길과 가파른 경사 등 낙후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창신동의 경우 도시재생을 위해 1000억원가량을 투입했지만 주거여건 개선보다 벽화, 조형물, 지원센터 건립 등에 치중하고 봉제역사관, 백남준기념관, 산마루놀이터, 채석장 전망대 등 주민 생활과 큰 상관없는 전시성 건물만 지어졌다는 비판이 많았다.

강대선 창신동 공공재개발 위원장은 "벽화 그리기 등에 집중하면서 주거 여건이 더 열악해졌다"며 "길이 좁아 불이 나도 소방차가 들어올 수 없고 매년 물난리까지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 시장이 도시재생사업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해서 기대감이 크다"고 했다.

창신동의 한 주민은 “열악한 주거환경을 견디지 못한 젊은 부부들이 떠나면서 최근 2년 사이 어린이집 세 곳이 문을 닫았다”고 했다.

해제연대에 속한 일부 구역은 도시재생 대신 공공재개발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창신동, 서계동 등은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공공재개발 후보지 선정 사업에 지원했지만 예산 중복집행 등의 이유로 탈락했다. 창신동의 경우 행정심판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이에 행정소송까지 고려했지만 오 시장 당선으로 전략을 바꿨다.

김영옥 구로1구역 위원장은 “지난달 64%에 달하는 토지 소유자에게 도시재생 해제 동의서를 받아 구로구에 전달했다”며 “도시재생이 족쇄가 돼 공공재개발을 못 하고 있는 억울함을 오 시장에게 하소연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해제 요구에 “지역 주민의 다양한 의견을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서울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분담금, 생업 등의 문제로 부정적인 주민도 여전히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서울시는 “도시재생지역이어서 공공재개발 후보지에서 탈락했다”는 일부 주민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도시재생과 재개발이 병행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행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도시재생은 재개발, 가로주택 등 각종 정비사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공공재개발 후보지에서 도시재생지역이 제외된 건 이미 예산이 투입돼 ‘선도사업’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며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했다.

도시재생은 지난 2011년 취임한 박 전 시장이 뉴타운을 해제하면서 추진한 사업이다. 완전 철거가 아닌 개선과 보존을 기반으로 도시정비를 하는 게 특징이다.

2015년 서울시 도시재생 1호 지역으로 창신동을 지정하면서 사업이 본격 추진됐다. 서울도시재생포털에 따르면 주거지 재생사업이 진행 중이거나 완료된 곳은 총 32개 구역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도시재생과 정비사업의 병행보다 도시재생 폐기에 무게를 실었다. 오 시장은 후보 시절 “박원순식 벽화 그리기 등 도시재생부터 손보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서울시 도시재생실이 축소되거나 폐지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폐지는 조직의 문제여서 시의회 심의를 거쳐야 해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공공재개발·재건축 후보지들도 사업을 포기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오 시장이 민간 정비사업 규제를 풀면 신뢰를 잃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사업을 할 메리트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1월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동작구 흑석2구역 등 8곳, 3월 성북구 성북1구역 등 16곳이 선정됐다. 공공재건축은 지난 8일 관악구 미성건영 등 5곳이 후보지에 이름을 올렸다. 미성건영 조합 관계자는 “후보지에 포함됐지만 추가 인센티브가 없다면 민간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조합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박 전 시장 때 역사·문화를 보존해야 한다며 시장 직권으로 정비구역을 해제하면서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 전 시장은 2017년 3월 한양도성 성곽에 인접한 종로구 사직2구역, 옥인1구역, 충신1구역 등 3곳의 정비구역을 직권해제했다. 사직2구역은 사업시행 인가까지 받은 곳이었다. 결국 주민들은 서울시와 종로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019년 4월 대법원에서 ‘정비구역 직권해제 무효’ 판결을 받나냈다.

박 시장 재임 시절 오 시장이 추진했던 '뉴타운'의 출구 전략으로 해제한 정비구역은 363곳이다. 전체 683곳 중 절반 이상이다. [플랫폼뉴스 강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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