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막내 정상영 별세…범현대家 1세대 막내려

58년 독립해 KCC 창업, 건축·산업 자재 국산화
현정은과 현대그룹 적자 놓고 '시숙부의 난'
몽진·몽익·몽열 3남의 사업 '교통 정리' 끝나

강동훈 승인 2021.01.31 13:51 | 최종 수정 2021.12.17 15:34 의견 0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이로써 '영(永)'자 항렬의 현대가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막을 내렸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는 21살 차이가 난다.

KCC는 "정 명예회장이 최근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으며 가족들이 모여 임종을 지켰다"고 전했다.

▲ 고 정상영 KCC 명예회장

1936년 강원도 통천 출생인 고인은 한국 재계에서 창업주로서는 드물게 60여년을 경영 일선에서 몸담았다.

22세 때인 1958년 8월 KCC 전신인 스레이트를 만드는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했다. 맏형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뒷바라지를 마다하고 자립하는 길을 택했다.

이어 1974년 고려화학을 세워 유기화학 분야인 도료 사업에 진출했고 1989년에는 건설사업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건설)을 설립했다. 2000년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해 금강고려화학㈜으로 새롭게 출범한 이후, 2005년에 금강고려화학㈜을 ㈜KCC로 사명을 변경해 건자재에서 실리콘, 첨단소재에 이르는 글로벌 첨단소재 화학기업으로 키워냈다.

고인은 그동안 기본에 충실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산업보국'이 기업의 본질임을 강조하며 한국경제 성장과 궤를 같이 했다.

건축, 산업자재 국산화를 위해 외국에 의존하던 도료, 유리, 실리콘을 자체 개발해 기술 국산화와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적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첨단 기술 경쟁력 확보에도 앞장서 1987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 봉지재(EMC) 양산화에 성공했으며, 반도체용 접착제 개발과 상업화에 성공하는 등 반도체 재료 국산화에 힘을 보탰다. 1996년에는 수용성 자동차도료에 대한 독자기술을 확보해 도료기술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2003년부터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실리콘 원료(모노머)를 국내 최초로 독자 생산했다. 이로써 한국은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에 이어실리콘 제조기술을 보유한 7번째 국가가 됐다.

성격이 소탈하고 검소했고 현장을 중시했다. 지난해 말까지 매일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봤을 정도로 창립 이후 60년간 업(業)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기업인 중 가장 오래 경영현장을 지켰다.

명문 서울 용산고를 졸업해 동국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인재 육성을 위해 모교인 동국대와 현대그룹 산하 재단이 운영하는 울산대에 수백억원의 사재를 쾌척하기도 했다. 용산고가 농구 명문학교여서인지 농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고인은 2003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사망 후 조카며느리인 현정은 회장과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이른바 '시숙부의 난'을 벌이기도 했다.

고인은 당시 "현대그룹의 경영권은 정씨 일가의 것"이라며 그룹의 지주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대량 매집했으나 경영권 분쟁에서 패했고, 지분 변동에 따른 보고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은주 여사와 정몽진 KCC회장,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 정몽열 KCC건설 회장 등 3남이 있다.

큰 아들인 정몽진 회장이 2000년부터 경영 일선에 나섰고 현재 KCC는 정몽진 회장이, KCC글라스는 둘째인 정몽익 회장이 맡고 있다. 독자 영역인 KCC건설은 셋째인 정몽열 회장이 경영해 '교통 정리'는 마무리된 상태다.

KCC 측은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최대한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를 예정"이라며 "조문과 조화는 정중하게 사양하고,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일정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했음을 양해 바란다"고 밝혔다. [플랫폼뉴스 강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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