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술 만드는 '전통 소줏고리' 현대식으로 개량

식품연구원과 세라믹기술원,'전통 소줏고리' 현대화

정기홍 승인 2020.11.11 17:59 | 최종 수정 2022.03.16 17:31 의견 0

한국식품연구원 전통식품연구단 김태완 박사 연구팀은 한국세라믹기술원과 기술 산업화 융합연구를 통해 '전통 소줏고리'를 현대화 한 한국형 증류기를 개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전통 소줏고리'는 우리 증류주사(史)의 첫 증류기로, 정형화된 세계 유일의 비금속재(흙 재질) 술 증류장치다.

전통 소줏고리를 현대화 한 한국형 증류기. 한국식품연구원

연구팀은 식품 과학과 세라믹소재 과학을 융합해 기존 소줏고리의 열소비를 효율화 하고 냉각 열교환을 극대화 했다. 이로써 술의 특정 향미를 강화하고 열화취(熱火臭·불냄새)를 획기적으로 줄인 고품질 증류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식품연구원 전통식품연구단은 '전통 소줏고리'의 증류 기작(機作·기계적인 작동)을 재해석해 열의 소비와 냉각 열교환 효율화 방안을 확립했다. 이를 기반으로 세계 유일의 흙 소재 증류기인 소줏고리의 특성을 강화하고 열효율을 극대화한 한국형 증류기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한국형 현대화 소줏고리 증류기는 기존 '전통 소줏고리' 대비 열효율을 13.6% 높였고 증류 시간은 절반 정도로 단축시켰다.

전통 소줏고리를 현대화 한 한국형 증류기와 김태완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몇가지에 주안점을 두었다.

먼저 전통 소줏고리의 구조를 개량했다. 전통 소줏고리는 가열부–기화부–냉각부–유출부가 한 개의 몸체로 돼 있어 열 소비와 교환이 효율적이지 못했다. 이를 증류 기능별로 구조를 분리해 열의 간섭을 최소화 하는 구조로 바꿨다.

두번째는 가열 체계를 개선했다. 증류를 위한 가열 체계를 소줏고리에 내부화 해 옹기 소재 특성인 열차단 효과를 높임으로써, 외부로의 열 손실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이로써 기존의 전통 소줏고리의 증류에 필요한 열에너지를 적게는 10~20% 절감하게 됐고 기존의 화점(火點) 발생으로 인한 탄내(불쾌취) 성분(Furfural) 생성을 억제할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냉각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열교환 장치를 효율화 했다. 열교환 장치는 기화된 술덧(누룩을 섞어 버무린 지에밥) 증기를 냉각해 고순도 증류주 원액을 생산하는 핵심 부위다.

기존의 '전통 소줏고리'의 상층부 열교환 영역의 옹기 재질과 '정체냉각 체계'는 열교환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아 증류 시간이 길어지고 증류 원주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를 개량해 금속 재질인 '유체냉각 체계'로 개량하고 냉각 열교환 면적을 늘려 증류시간 단축 및 증류수율을 극대화 했다.

'전통 소줏고리'의 현대화 프로젝트는 세계 명품 증류주 시장을 겨냥해 한국식품연구원의 주도로 지난 2018년 '전통 증류주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이 사업은 전통 양조기술의 현대적 해석과 산업화를 목적으로 한국식품연구원, 한국세라믹기술원, 국립산림과학원, 서울대, 세종대, ㈜화요, 영국 Campden BRI 등의 연구원 50명이 참여해 연구 중이다.

명품 증류주 개발과 이에 수반되는 균주, 증류, 숙성 관련 소재·부품·장비 기술 개발은 주류산업과 연관 산업에 큰 경제적 파급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열효율이 개선된 증류기 및 이를 포함하는 증류 시스템'이란 제목으로 특허출원(10-2019-0053100)됐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전통문화융합연구개발사업(2018~2022년) 전통 증류주 현대화(2018M3C1B505207713) 과제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한편 세계 증류주 시장은 약 500조원 규모로 추산되며 연 2~3% 성장률을 지속하고 있다.

주요 증류주 생산국들은 지역 기반 전통 증류주를 산업화 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주류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영국은 스카치 위스키(Whisky), 프랑스 꼬냑(Cognac), 미국 버번(Bourbon), 중국 백주(白酒, Baijiu), 일본은 오츠루이쇼츄(乙類燒酎, Shochu) 등 자국의 전통 증류주를 명품화 해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알코올 증류기는 10세기 전후 이슬람 연금술사들의 실험 도구로 개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알렘빅(Alembic)을 원형으로 한 유사 증류기와 제조 기술이 세계 각 지역으로 전파되고, 지역마다 특색있는 증류기로 발전됐다. 알렘빅은 수은 정제를 목적으로 3세기 연금술사에 의해 고안된 장치로, 조롱박 모양의 끓임부분, 기화부분, 유출관으로 구성된 소규모 구리 증류기다.

한반도에는 고려 후기(13세기) 증류주와 제조 장치인 소줏고리도 등장했다.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증류주가 제조돼 전성기를 맞았으나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전통 증류주는 쇠퇴하게 됐다.

최근 들어 전통문화의 재발견, 과학적 재해석에 힘입어 전통 증류주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소줏고리는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발전이 없이 초기 원형 그대로 재현돼 일부 소규모 가양주 형태의 생산 업체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규모가 큰 업체는 증류기를 수입하거나 이를 본 떠 제작한 증류기를 활용하고 있다는 실정이다.

전통주 제조 역사의 단절이 없었다면 우리의 '전통 소줏고리'가 발전을 거듭해 우리의 소주를 제조하는 대표 장치로 계승됐을 것이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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