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오늘(4일)은 청명, 내일은 한식…어떤 의미 담겼을까?

정기홍 승인 2021.04.04 06:42 | 최종 수정 2021.12.17 21:05 의견 0

오늘(4일)은 절기상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淸明)이다. 24절기 중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든다. 전날인 3일 종일 내리던 비가 중부 지방부터 그치기 시작해 낮에는 대부분의 지방에서 멈춘다고 한다.

비가 온 뒤여서 하늘이 차츰이 아니라 확 맑아졌다. 봄 기운도 무르익고 낮 기온이 9∼17도로 예보돼, 봄볕의 따사로움을 그대로 느끼는 하루가 될 듯하다. 지난 며칠간 괴롭히던 미세먼지의 농도도 어제 종일 내린 비의 영향으로 꽤 좋아졌다.

다음 날인 5일은 한식(寒食)이다. 뜻풀이 그대로 '찬 음식을 먹는 날'이다. 식목일이기도 하다.

해마다 청명과 한식, 식목일은 같은 날이 되기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이런 이유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매일반'이라는 속담도 있다. '손 없는 날'로 인식돼 산소를 돌보고 집수리도 한다. 이날의 뜻과 의미, 풍습을 알아보자.

▶ 청명 뜻과 의미
청명은 24절기 가운데 5번째 절기에 해당한다. 청명 다음에 드는 곡우까지가 봄의 절기다.

푸를 청(淸)과 밝을 명(明)자가 합쳐진 청명은 '하늘이 차츰 맑아지는 날'이란 뜻을 지닌다. "날씨가 청명하다"라는 표현도 청명에서 유래됐다. 이 무렵이면 오동나무의 꽃이 피고, 종달새가 울며,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한다.

​▶ 청명 풍습들
농가에서는 청명 절기에 '논밭 갈이'를 한다. 농사 준비는 춘분 때부터 하지만 이 때부터 논밭의 흙을 고르고, 가래질을 하고, 씨를 뿌리는 등 본격적인 농삿일에 나선다. 청명이나 다음 날인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그 해 농사가 잘 된다고 믿었다. 어가에서도 이날 날씨가 좋으면 어종이 많아져 어획량이 증가한다고 말한다. 일종의 '날씨점'이다.​

조선시대 내병조(內兵曺)에서는 청명날에 버드나무와 느릅나무에 구멍을 뚫고 삼으로 꼰 줄을 꿰어 양쪽에서 톱질하듯이 잡아당기면서 비벼 새 불을 일으킨 뒤 임금에게 바쳤다고 한다. 임금은 이 불을 다시 정승과 판서, 문무백관, 고을의 수령에게 나눠줬는데 이러한 풍습을 '사화(賜火)'라고 한다. 이는 불의 주력(呪力)을 이용하기 위해 불을 소중히 여기는 사상을 전승한 것이기도 하다.

청명을 전후해 찹쌀로 빚은 술을 청명주(淸明酒)라고 해 담근 7일 후 위에 뜬 것을 걷어내고 맑은 것을 마신다. 또 이 시기에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여 한 해 동안 먹을 장을 담갔다. 메일국수를 한식면(寒食麵)으로 부르며 해 먹고 쑥단자, 쑥탕, 쑥떡을 만들어 향긋한 쑥냄새에 봄의 정취를 나누기도 했다. 서해에서는 곡우까지 작지만 연하고 맛이 있는 조기잡이로 성시(盛市)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 한식의 뜻과 의미
청명과 같은 날이거나 하루 다음날 찾아오는 한식은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이다. 양력으로는 4월 5일 무렵이다. 이 날은 '절기'가 아니라 '명절'로 친다. 요즘엔 거의 잊혀졌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청명절이라 하여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여겼다.

고려 때부터 한식을 큰 명절로 여겨 국가에서는 종묘와 경령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관리에게는 3일의 휴가를 주었으며 죄수의 사형을 금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후기에 쓴 '동국세시기'의 삼월조에는 한식에 대해 "산소에 올라가 제사를 올리는 풍속은 설날, 한식, 단오, 추석 네 명절에 행한다. 술, 과일,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이것을 명절 하례 혹은 절사(節祀)라 한다. 선대부터 내려오는 풍속이 가풍에 따라서 다소간 다르지만 한식과 추석이 성행한다. 까닭에 사방 교외에는 사대부 여인들까지 줄을 지어 끊이지 않았다". 이 기록을 보면 당시 한식이 큰 명절이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한식은 차가울 한(寒)과 밥 식(食)자가 합쳐진 '찬 음식을 먹는 날'의 뜻을 지닌다.

한식은 원래 우리의 풍습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온 절기였으나 토착화됐다.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들은 한식을

금연일(禁烟日), 냉절(冷節) 또는 숙식(熟食)이라고도 불렀다.

한식의 유래에 관해서는 춘추시대의 인물 개자추(介子推)에 관련된 설화와 고대의 개화(改火) 의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개자추 설화에서는 '이 날은 풍우(風雨)가 심해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習慣)에서 왔다'고 전해진다.

춘추시대에 공자의 제자인 중이(重耳)가 유랑을 하다가 진나라의 문공(文公)이 왕이 되어 이전의 충신들을 포상했다. 이때 과거 문공이 굶주렸을 때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서 바쳤던 충신 개자추가 포상자에 들지못하자 개자추는 부끄럽게 여기고 산중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문공이 뒤에 잘못을 뉘우치고 그를 찾았으나 산중에서 나오지 않아 불을 놓으면 피해서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서로 껴안고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 죽었다. 이에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 날은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후일에 탐천지공(貪天之功), 즉 '하늘의 공을 탐내 자신의 공인 체 한다'는 고사 성어가 생겨났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宗廟)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을 지내고 관·공리들에게 공가(公暇)를 줘 성묘를 하도록 했다. 민간에서는 조상의 산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냈다.

개화(改火) 유래설은 원시시대에 오래된 불은 생명력이 없어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여겨 기존 불을 끄고 새불을 피우는 의식을 주기적으로 했다고 한다. 이 시기가 구화(舊火)를 끄고 신화(新火)를 점화하는 과도기 구간이라고 여겼다.

일각에서는 개자추 설화는 이야기가 그럴 듯하지만 이미 원시 때부터 있어 왔던 개화 의식 관습에서 파생됐다며 개화설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반도 북쪽이 남쪽에 비해 한식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 한식 풍습들
청명과 한식은 흔히 같은 날로 여겨 풍습이 특별히 구분을 하지 않는다.

한식일의 대표 풍습은 금화(禁火)와 성묘가 있다. 찬 음식을 먹는 날이라 여겨 한식이 가까워지면 일정 기간 동안 불을 멀리하고 찬 음식을 먹었다.

개자추를 애도하는 뜻에서 불을 쓰지 않았던 풍속은 물론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사화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해먹었다는 것 모두 연관이 있다.

왕실에서는 이날 종묘 제향을 지내고 찬 겨울에 허물어진 능묘를 보수했다. 민간에서도 성묘를 하고 간단하게 제사를 지냈는데 한양에서는 제사에 앞서 산신제를 지내기도 했다.

또 한식은 청명과 마찬가지로 악귀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일명 '손 없는 날'로 여겨 산소에 잔디를 새로 입히거나 비석과 상석을 세우고 이장을 하는 등 산소를 보수하곤 했다. 제주도에서는 지상에 있는 신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라 여겨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무너져 내린 산소를 돌보거나 이장을 하기 좋다고 믿었다.

일부 지방에서는 청명에 '내 나무'라고 해 아이가 혼인할 때 농(장농)을 만들어 줄 재목감을 심는 풍습이 있었다.​

한식날 놀이로는 함남 지역의 ‘돈돌날이’ 놀이가 알려져 있다. 한식 다음날 함남 북청 지방의 부녀자들이 강가나 모래산 기슭에 모여 달래를 캐고, 오후가 되면 ‘돈돌날이’를 비롯해 20여개의 민요를 번갈아 부르며 춤을 추는 놀이다. 함남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돼 있다. 북청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언젠가는 잘 살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이 민요를 불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땅이 다시 우리의 손에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해석해 항일 성격의 민요로 인식됐다.

​▶ 식목일 뜻과 의미
식목일은 근대에 생겨난 기념일이다. 심을 식(植)과 나무 목(木), 이름 그대로 '나무 심는 날'이다.

식목일은 지난 1949년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을 제정해 이 날을 식목일로 정했다. 1960년대 공휴일에서 폐지되었다가 다음 해 식목의 중요성이 대두돼 다시 공휴일로 부활했다. 하지만 2006년 다시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 식목일 유래와 역사적 사건들
식목일이 4월 5일로 정해진 데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신라 문무왕 때 8년간의 싸움 끝에 당나라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성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두 번째는 조선의 성종이 세자와 문무백관를 대동하고 동대문 밖의 선농단에 나아가 몸소 제를 지낸 뒤 직전(籍田, 고려·조선의 왕이 농경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만든 의례용 토지)을 친히 갈고 심은 날인 1493년 3월 10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또 뽕나무밭을 직접 가꾸기도 해 우리의 농업과 임업에서는 매우 중요한 날로 쳤다.

마지막은 계절적으로 청명을 전후로 나무 심기가 가장 좋은 때여서 식목일로 정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는 4월 3일이 식목일이었다.

​​▶ 식목일에 하는 일
비록 지금은 공휴일이 아니지만 이 날을 전후로 한달 간은 '국민 식수 기간'으로 삼는다. 민둥산이던 1960~70년대에는 산림녹화 정책으로 나무 심기를 독려해 산지 자원화에 힘썼다.

이 때쯤 가족이 짬을 내 묘목이나 채소 등을 심으면서 환경과 키움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뜻깊은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인해 바깥 외출은 어렵다. 집안에서 키울 수 있는 작은 화분을 마련해 심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이 무렵엔 무엇이든 심으면 잘 자라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속담도 있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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