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랫폼뉴스는 SNS(사회적관계망)에서 관심있게 회자되는 글을 실시간으로 전합니다. '레거시(legacy·유산)적인 기존 매체'에서는 시도하기를 머뭇하지만, 요즘은 신문 기사와 일반 글의 영역도 점점 허물어지는 경향입니다. 이 또한 정보로 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SNS를 좌판에서 한글 모드로 치면 '눈'입니다. 엄선해 싣겠습니다.
<천도복숭아 그림>
'초토의 시'를 쓴 시인 구상(1919~2004년)과 '황소'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1916~1956년)은 오랜 친구였습니다.
어느 날 구상이 폐결핵으로 폐 절단수술을 받았고,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서 절친 이중섭을 보고싶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중섭보다 교류가 적었던 지인들은 병문안을 왔는데 유독 이중섭만 나타나지 않았다네요.
구상으로선 섭섭한 마음이 들다가도 이중섭에게 무슨 사고가 생긴 것인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섭섭한 마음이 멀쩡한 친구에 대한 걱정으로 바뀔 때쯤 이중섭이 찾아왔습니다.
심술이 난 구상은 반가운 마음을 감추고 짐짓 부아가 난듯 말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자네가 제일 먼저 달려올 줄 알았네. 내가 얼마나 자네를 기다렸는지 아나?"
"정말 미안하게 됐네. 빈손으로 올 수가 없어서.."
이어 이중섭은 꾸러미 하나를 내놓았습니다. 풀어보니 천도복숭아 그림이 있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이 천도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지 않던가. 그러니 자네도 이걸 먹고 어서 일어나게."
구상은 한동안 말을 잊었습니다.
과일 하나 사올 수 없었던 가난한 친구가 그림을 그려 오느라 늦게 왔다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구상 시인은 2004년 5월 11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도복숭아를 서재에 걸어 두고 평생을 함께했습니다.
※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 만들 수 있으면 인생의 반은 성공한 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엊그제 TV프로그램에서 가수 이장희 씨와 송창식 씨가 나와 50년을 알아온 친구라고 하더만요.
이 바쁘다는 세상에 인생의 절반이나 지탱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이 두 가수도 만난지가 10여년이 됐다고 했습니다.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감미로운 일이라고 합니다.
복숭아를 말하니 생각나는 사자성어가 있어 소개합니다.
생소하지만 '도리성혜(桃李成蹊)'란 게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史記)의 '이장군 열전'에 나오는 '桃李不言 下自成蹊'에서 온 겁니다. '복숭아와 자두는 말이 없지만 그 아래에는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뜻으로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꽃이 예쁘고 열매 맛이 좋아 사람들이 찾아와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덕이 있는 사람 곁에는 자연히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입니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다음은 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회장(시인)이 언론매체에 쓴 글인데 옮겨싣습니다.
그는 도반(道伴·함께 도를 닦는 벗)과 동지가 되려면 다음과 같은 '서로 지키는 바'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몰래 험담하지 않는다. 험담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관계는 끝장난다.
둘째, 무의미한 논쟁은 하지 않는다. 진실한 도반과 동지는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그 의견을 존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셋째, 난처한 상황에 처하도록 두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망년회 석상에서 음치인 저더러 노래를 부르라고 해 한곡 부르다가 골목을 잊어버렸다. 당황하고 있는 순간 한 도반이 튀어나와 거들어주어 위기를 모면한 생각이 난다.
넷째, 성공을 질투하지 않는다. 진실한 도반과 동지는 성공을 질투하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다섯째, 바라는 바가 없어야 한다. 관계는 어려움을 겪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힘들 때일수록 등 돌리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성의껏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며, 결코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도반과 동지 사이에 서로 가까이 하면 가라앉던 공부심도 일어나고, 없던 사업심도 생겨나며, 의혹이나 원망심도 사라지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곧 그 마음이 살아 있는 사람이고, 그냥 좋은 도반 동지가 아닐는지.
저작권자 ⓒ 플랫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