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전 총리 '충청 대망론' 못 이루고 별세…향년 71세

한때 '포스트JP' 충청 맹주 부상···혈액암으로 투병

정기홍기자 승인 2021.10.14 11:43 | 최종 수정 2021.10.14 12:55 의견 0

충청 출신의 대표 정치인이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혈액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고인은 한때 '포스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로 불릴 만큼 충청권의 대표 주자로 통했다.

충남도지사와 3선(15·16·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거쳐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2월 총리직에 올랐다.

1950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 전 총리는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잠시 근무했다.

치안 분야로 옮겨 최연소(31세) 경찰서장과 충남·북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1995년 민자당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했고,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는 충남지역(청양·홍성)에서 유일하게 당선돼 주목을 받았다. 15·16대 국회에서 재선했다. 신한국당 당대표 비서실장과 자민련 대변인,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 중책을 두루 역임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남지사에 당선됐으나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는데 반발해 "충남도민의 소망을 지켜내지 못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며 지사직에서 전격 사퇴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충청권에서 입지를 다지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까워졌다.

그러나 '뚝심'의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 고인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건강이 나빠지거나 형사 사건에 휘말리는 아픔을 겪었다.

2012년 19대 총선을 통해 국회 입성을 노렸지만 그해 초 다발성 골수종 판정을 받았다. 이후 8개월간 골수이식과 항암치료 끝에 병마를 극복했다.

이듬해 재보선에서 80%에 가까운 몰표를 받아 재기에 성공했고,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하며 중앙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강성'인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의 카운터파트로 세월호특별법 합의 처리 과정에서 협치의 모델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되면서 40년 공직생활의 정점을 찍었다. '충청 대망론'의 주인공으로 부상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19대 국회의원 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극단 선택을 하며 남긴 로비 리스트가 발견되면서 취임 60여 일만에 총리직에서 낙마했다.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이후 자유한국당의 러브콜을 받고 21대(2020년) 총선 출마를 시사했으나 "세대교체와 함께 인재 충원의 기회를 열어주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며 불출마 선언을 하며 사실상 정치 은퇴를 밝혔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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