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생겨도 괜찮아"···못난이 농산물의 유쾌한 반란

쓰레기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바람 타고 부상
전문 쇼핑몰도 생기고, 정기구독 서비스도 인기

강하늘기자 승인 2021.10.23 18:23 | 최종 수정 2021.12.26 17:50 의견 0

못 생겨 외면 받던 못난이 과일과 채소들이 최근 들어 주부들의 손길을 부쩍 타고 있다.

모두가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됐지만 단지 못 생겼다는 이유로 값은 시중 유기농 제품보다 10∼40% 싸다. 용기도 플라스틱 박스를 쓰지 않고 신문지와 생분해 비닐을 사용해 포장 부피도 줄여 친환경적이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려면 어글리어스는 지난해 10월 '못난이 농산물' 정기구독 서비스를 국내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업체는 농가로부터 직접 조달한 못난이 친환경 농산물 7∼8종을 소량 포장해 매주 혹은 격주로 가정에 배송한다.

대형 유통업체나 지자체에서 못난이 농산물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이벤트성 행사를 벌이지만 최근에는 못난이 농산물만을 골라 상시 가정에 유통하는 업체가 속속 생기면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들어 구독자 수가 빠르게 늘면서 못난이 농산물을 단품으로 판매하는 쇼핑몰을 여는 등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환경에 관심을 두고 '가치 있는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와 공급자들이 늘기 때문이다.

한 가정에 배달된 못난이 채소 박스. 인스타그램 캡쳐

비슷한 콘셉트 서비스인 어글리바스켓도 지난 8월부터 '못난이 농산물' 정기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못 생겼다는 이유로 마트의 진열대에 오르지 못한 채소와 과일들을 종이 상자에 담아 배송한다.

이런 분위기에 인터넷 쇼핑몰 11번가가 지난해 선보인 브랜드 '어글리 러블리'나 '프레시 어글리'처럼 못난이 농산물을 상시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도 있다.

ID '에코주부(ecojubu)'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활동 중인 임모(34) 씨는 지난해 말부터 국내 한 업체에서 못난이 채소 박스를 정기구독하고 있다.

배달된 상자 안에는 수확 도중에 흠집이 난 고구마도 있고 모양이 반듯하지 않은 오이도 들어있다. 기준 중량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갈 곳을 찾지 못한 외모가 멀쩡한 양배추도 있다. 때로는 과잉 생산이나 급식 중단으로 판로가 막힌 채소가 포함되기도 한다.

이처럼 생산지 상황에 맞춰 랜덤으로 구성된 채소박스는 이들이 버려질 뻔했던 각자의 사연을 적은 종이와 함께 임씨 집 앞으로 배달된다.

임 씨는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시작하면서 버려질 위기에 처한 친환경 못난이 농산물을 최소한의 포장으로 판매하는 서비스에 관심을 갖고 이용하게 됐다"며 "시중 유기농 제품보다 저렴하지만 품질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진열된 농산물들은 모두 '외모' 심사를 거친다.

매끈하지 않은 사과나 표면에 혹이 난 당근 등 농산물은 상품성이 떨어져 산지에서 폐기된다. 너무 크거나 작으면 중량이 들쭉날쭉해진다는 이유로 빠진다.

최현주 어글리어스 대표는 "판로를 찾지 못해 폐기되는 못난이 농산물은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초래한다. 특히 음식물 폐기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전체의 8%를 차지할 만큼 환경오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공급자는 골칫거리였던 못난이 농산물의 판로를 찾아 추가 이익을 얻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하면서 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못생긴 과일의 외관상 흠은 자연친화적으로 재배하는 과정에서 생긴 자연스러운 흔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쇠에 녹이 낀 것처럼 사과 껍질이 거칠어지면서 금색으로 변하는 '동녹' 현상은 열매에 봉지를 씌우지 않는 '무대 재배'를 할 때 많이 발생한다. 자연 그대로를 견디고 맛있게 영근 흔적으로 먹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맛이 더 뛰어난 경우도 많지만 시장에서는 외면받기 일쑤다.

벌레가 갉아먹은 잎채소의 자국은 농약을 쓰지 않은 농산물에 더 많다. 이런 흔적에 못난이로 분류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벌레도 탐낼 만큼 맛있고 건강한' 채소다.

최 대표는 "농산물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물이 아니기에 재배 환경에 따라 다양한 생김새로 자라는 것이 당연한데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규격을 만들고 거기에 맞추려다 보니 문제가 생겼을 뿐 못난이 농산물의 맛과 영양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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