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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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9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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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뉴스 신아연 칼럼니스트]
신새벽에 쪽창을 열자 흰 철쭉이 어둠 속에서 선명하다. 마치 세상 떠난 자들의 처연한 넋처럼. 볕이 들지 않는 어둑시근한 방, 그럼에도 쪽창이 있기에 계절의 오고감과 생명의 기미를 느낄 수 있는 방, 내게 쪽창은 강인함이다. 버팀이자 견딤이다. 비록 거죽은 꾀죄죄하고 데데하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한 야생의 짐승으로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 사실을 뼛속 깊이 인식할 때에만 작은 기쁨에도 크게 감사하고 소박하게 웃을 수 있다. 또한 근위축증으로 한 발 한 발 죽음에 다가가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모리 교수처럼 매일 아침 30분 간 정신없이 울면서 절망과 슬픔에 온 존재를 던지는 몸짓도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방식 중 하나다.
‘꽃길만 걸으라’는 말은 덕담이 아니라 악담이다. 흐리거나 비오는 날 없이 줄창 햇빛만 쏟아지는 곳이 사막 아닌가. 사막은 불모의 땅이다. 꽃길만 펼쳐지는 인생은 사막과 같다. 삶이란 아픔과 슬픔, 실망과 절망, 거절과 거부를 통해 위무와 기쁨, 희망과 기대, 용납과 수용으로 나아간다. 지금 울고 있다면 반드시 웃을 일이 생길 것이다. 지금 웃고 있다면 그 즐거움이 연이 되어 울게 되는 상황이 뒤따른다. 그것은 생이 갖는 불변의 사이클이다.
지난 주말, 주변의 한 젊은이가 스스로 생을 버렸다. 조금만 더 견뎌봤더라면...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그 고통도 반드시 멈춘다는 것을 그 젊은이가 믿었더라면... 내가 의지하는 쪽창 하나, 그도 가지고 있었더라면...
“슬픔이 우리 존재 속으로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우리가 담을 수 있는 기쁨은 점점 더 커진다.” 칼릴 지브란의 말이다.
필자 신아연 작가는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21년간을 호주에서 지내다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인문예술문화공간 블루더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자생한방병원에 '에세이 동의보감'과 '영혼의 혼밥'을 연재하며 소설가, 칼럼니스트, 강연자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 심리치유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 인문 에세이 『내 안에 개있다』를 비롯,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공저 『다섯 손가락』 『마르지 않는 붓』 『자식으로 산다는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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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shinayou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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