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동행 20] 자기 사랑의 문법

신아연 승인 2019.05.13 07:34 의견 0

[플랫폼뉴스 신아연 칼럼니스트]

               인문예술문화치유공간 블루더스트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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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미친 사랑』을 읽고 있다. 여자 주인공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교사가, 영어를 배울 때는 머릿속에서 절대 문법이나 번역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영어 그대로를 익혀야 한다고 강조하는 대목이 전반부에 나온다. 그걸 누가 모르나. 안 되니까 그렇지. 영어라면 머리에 쥐부터 나는, ‘호주 생활 21년에 빛나는’ 경험자로서, 나는 마치 내 일인 양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원어민이 아닌 이상 해당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문법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삶과 사랑의 언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은 그 사랑을 외국어 배우듯 할 수밖에 없다. 허약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기본적으로 세상살이에 서툴다. ‘자기 사랑’이라는 언어를 문법으로 익혀야 하는 운명의 사람들인 것이다.

 
긴장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법, 열등감과 비교, 시기 질투의 감정에서 자신을 건져내는 법, 낮은 자존감을 딛고 자신을 지키는 법, 거부당해도, 업신여김을 당해도 나라는 존재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법,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자신을 무한 신뢰하는 법 등, 운 좋은 사람에게는 모국어로 주어진 사랑과 삶의 언어를 매 순간 문법으로, 의식적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궁극의 총론에 이를 때까지.

 

성인이 되어 외국어를 익히는 것은 고통스럽다. 평생 해도 모국어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럼에도 70 퍼센트 정도만 익혀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고, 90퍼센트에 이르면 거의 불편함이 없다. 그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 노력 여하에 달렸다. 지난 9일 자 칼럼,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가 나간 후 나를 안쓰러워하는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았다. 염려 놓으시길! 문법을 더듬으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수준은 되니.

 

유영상 작가의 영상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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