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COLUMN)/ 백세현 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글로벌팀장

조용수 승인 2018.01.15 11:07 | 최종 수정 2021.12.26 22:59 의견 0

컬럼(COLUMN):START UP 재조명/ 백세현 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글로벌팀장

스타트업 붐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면서 인큐베이터나 액셀러레이터들이 많이 생겨났고 단순히 현지 스타트업들만 지원하는 것이 아닌 해외 스타트업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들도 많이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해외 진출하는 한국 스타트업들도 현지 액셀러레이터나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다소 고민해봐야 할 것들이 있다.

최근 들어 한국 정부가 스타트업들 육성을 위해 공공기관들 및 다양한 정부 산하 기관들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는 소문들이 해외에도 퍼져서 한국 스타트업들을 현지에 유치하고자 많이들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효과와 내실이 있을지는 한번 자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대체로 현지 프로그램들은 '현지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법인설립 방법이라든가 등기 방법· 세금 관련된 내용에 대한 교육을 현지에서 행하는 게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 이런 정보들은 인터넷 등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한국 주재 공공기관 중에는 이미 이런 정보들만 전문적으로 다뤄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상황인데 굳이 이런 것을 들으려 현지까지 가는 게 맞는지 한번 고민이 필요한 듯하다. 실제 있었던 상황을 얘기해볼까 한다.

해외 액셀러레이터 기관 A에 한국 스타트업들을 보낸다. 그런데 현지에서 현지화 교육을 한다고 하면서 법인 설립 절차, 현지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강의한다. 그리고 린 스타트업과 린 캔버스, 디자인 싱킹, 혁신에 대한 강의 등을 듣는다. 물론 영어로 진행한다.

그렇게 4주를 보낸다. 과연 이런 걸 4주에서 8주 듣는다고 해서 내 사업이 현지 진출에 도움이 될까.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나, 무료니까 무조건 가고 보는 스타트업 모두에 문제가 있다. 일부 스타트업들은 매우 좋았다며 공공 기관에 착 달라붙고 애교 작전도 펼치지만 사실 이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현지 액셀러레이터에게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용역을 맡기는 식이라서 사실 냉정하게 유효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내가 스타트업으로서 그 프로그램에 참여할까 여부에 대해 자문해 보면 답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내 돈으로 다 지불하고 가도 아깝지 않을까'를 따져보면 된다. 아무런 성과가 없어도 스타트업들은 다녀와서 무조건 좋았다고 칭찬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또 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본인들 돈으로 과연 갈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느낄까. 이마도 아닐 거다. '무료'니까 가는 거다. 어차피 내 돈 아니니까. 기회비용을 따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게 내게 정말 소용이 있는 건지 아니면 이렇게 수동적으로 앉아서 4주에서 8주를 듣고 오는 동안 더 관련성 높은 곳에서, 사업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걸 할 수 있었을지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프로그램들에서 제공하는 네트워킹은 그다지 영양가가 높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함께 간 스타트업들 영역 자체가 너무 달라 모두를 충족시킬만한 현지 주요 인사들이 함께 모이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런 프로그램을 마친 후 행하는 영어피칭 데모데이는 대체로 행사를 위한 행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말 관련성 높은 주요 현지 인사들은 거의 참여를 안 한다. 그야말로 누군지도 잘 모르겠는 현지인들이 와서 구경하고 가는 정도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스타트업 대표는 해외 경험이 워낙 없어서 이런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일단 외국어가 잘 안 되고 현지 문화나 분위기에 이질감이 드는 분들의 경우 저녁에 한국인들끼리 모여 네트워킹하며 한국인끼리 친목을 다지고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해외인사를 초청해놓고도 자기들끼리 한국어로 얘기하고 마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쯤 되면 이 프로그램은 도대체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맞다. 예산 남으면 안 되는데 통으로 예산 소진을 할 수밖에 없고 진짜 사업하는 스타트업들 중 이렇게 오랜 기간 해외에 핵심인력을 내보낼 수는 없으니 가볍게 참가하는 프로그램인가보다." 사실 이게 바로 우리 민낯인 것이다.

실상은 현지 주요 거래선이나 인사들과 접촉을 하거나 영업을 하거나 투자 논의를 하는 자리조차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제일 손쉬운 건 그냥 교육프로그램 운영하고 현지 주요 기관 탐방 정도로 마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금 더 본질적인 부분들을 고려해보면 좋겠다. 해외에 무조건 나가서 일반적인 내용에 대해 강의를 듣거나 무의미한 데모데이에 참가하는 것보다는 내실을 더 다져보자. 영어피칭 연습 많이 하는 것은 영어발표력은 향상시킬 수 있겠지만 본인의 비즈니스모델을 향상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피상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본인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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