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2020, 그는 때마다 변곡점 만들었다

정기홍 기자 | jkhong4@naver.com | 입력 2020-10-25 11: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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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별세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삼성 직원은 물론 한국 사회를 향해 적지않은 말을 남겼습니다. 평소엔 과묵하지만 말을 시작하면 거침이 없어 우리 사회에 묵직한 메시지도 던졌지요. 

 

1987년 삼성 회장 취임 후, 취임 10주년인 2003년엔 ‘천재 경영론’, 2010년엔 ‘위기론’, 취임 25주년인 2012년에는 ‘창조 경영’을 강조하며 때마다 변화를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삼성전자는 단지 모조품을 생산하던 한국 대표급 업체에서, 세계 최고의 반도체(메모리 칩), 스마트폰, 가전 기업으로 변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부분은 기자가 사족을 단 것입니다.

 

"세기말적 변화가 온다.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1987년 12월 1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회장 취임식에서) 

 

"잘 해봐야 1.5류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류는 절대로 안된다. 지금 안 변하면.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라, 극단적으로 농담이 아니라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장에서)

  

 * 삼성 사장들과 주요 임직원을 불러놓고 한 말입니다. 삼성 60년사의 가장 큰 변곡점으로 꼽는 장면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갈림길”이란 말도 꺼냈습니다. 신경영 선언을 '제2창업 선언'을 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사내방송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세탁기 조립라인 직원들이 닫히지 않는 덮개 여닫이를 칼로 깎아서 조립하는 것을 보고 격노했고, 전날 독일행 비행기에서 일본인 삼성 고문이 쓴 '삼성에서 안 먹히는 것과 안 먹히는 이유' 분석 보고서를 읽었다".


"출근부 찍지 마라. 없애라. 집이든 어디에서든 생각만 있으면 된다. 6개월 밤을 새워서 일하다가 6개월 놀아도 좋다. 논다고 평가하면 안 된다. 놀아도 좋으니 뒷다리 잡지 말고, 입체적 사고를 하든가 놀아도 제대로 놀아라"(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장에서)

 

 * 어폐가 없진 않지만 올해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하는 재택·원격근무 등 유연근무를 예견한 말인가 싶네요.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신경영’을 밝히고 있다. 

 

▶ "경영자는 적어도 4, 5년 후의 일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1994년 6월 집무실에서)

 

 * 오랫동안 추구해온 '일류 삼성'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물론 애플의 스티브 잡스, MS의 빌 게이츠 등 글로벌 재계의 CEO들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 "우리나라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1995년 중국 베이징 특파원 오찬에서)

 

 * 불과 2년 후인 1997년 IMF 사태가 발생한 건 우연인가 싶습니다. 정치? 지금의 진영 편가르기에만 물두해 4류가 아니라 5류 정도의 무게는 너끈히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휴대폰 품질에 신경을 쓰십시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 반드시 한 명당 한 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1995년 애니콜 품질 향상을 강조하면서)

 

▲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공장 운동장에서 임직원들이 해머로 불량 무선전화기들을 내리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 1994년 10월 출시한 삼성 휴대폰 브랜드 '애니콜'의 불량률이 급증하고 불만이 커지자 1995년 3월 9일 애니콜을 생산하는 경북 구미공장 운동장에 애니콜 휴대폰, 무선전화기, 팩시밀리 등 15만대(5000만 달러, 약 500억)를 쌓아놓고 불태웠죠. 남녀 직원 10명이 망치로 깨부수고서 불을 붙였습니다. 2000명 임직원이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았고, 이는 위기 의식으로 이어져 오늘의 일류 삼성을 만들었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당시 모토로라가 독주하던 점유율을 뺏기 위해 생산량으로 승부했었지요. 휴대폰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보고를 받은 이건희 회장의 화는 당연했겠죠. 불과 1년 전 프랑크푸르트까지 가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는데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요. 

 

▲ 삼성전자 직원이 1995년 휴대폰, 팩시밀리 등 불량제품 15만대에 불을 붙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 "경영자는 알아야(知) 하고 행동해야(行) 하며 시킬(用) 줄 알아야 하고 가르칠(訓) 수 있어야 하며 사람과 일을 평가할(評) 줄도 아는 종합 예술가로서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1995년 5월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미래 국제포럼에서)

 

* 선현들의 원말 틀을 약간 튼 것으로 여겨지지만 조직엔 역시 혼이 있어야 열정을 쏟는다는 글이 생각납니다. 연초에 으레 내놓는 기업들의 그럴듯한 비전 내용보다 더 강하지요. 학급 반장은 공부도 잘해야 하지만 통솔력이 제일이란 말과 상통합니다.  

 

▶ "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 살렸지만 21세기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2002년 6월 ‘인재 전략 삼성 사장단 워크숍’에서) 

 

* 이 말은 최근 특정 정치 진영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등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삼성이 대한민국 경제에 차지하는 현실을 보면 고개는 끄덕여집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애플의 스티브 잡스 아닙니까. 그는 2007년 1월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았고, 21세기의 라이프를 이전과 다른, 딴 세상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참고로 당시 정부는 아이폰 국내 개통을 무려 2년 후인 2009년 승인합니다. 일반 독자에겐 어려운 단어인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 세계 무선통신 시스템) 설치가 안됐다는 게 이유였는데 2년 동안 '잘 베껴서' 삼성이 비슷한 스마트 폰을 낼 수 있게 된 겁니다. 오랫동안 특허권으로 애플과 법정 다툼을 했고, 삼성이 좀 물어줬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판매량으로 따지면 삼성이 1등 자리에 올랐습니다. ​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2007년 전경련 회장단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 당시 일본이야 미국에 이은 두번째 경제대국이었고, 13억명 사회주의 중국이 '돈 냄새'를 맡고서 세계의 공장이 되려고 꿈틀거리기 시작한 무렵입니다.

 

 

▶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2010년 3월 24일 2년전 경영 퇴진 후 다시 복귀하면서)

 

 * 이건희 회장은 2008년 4월 22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불법으로 전격 퇴진했습니다. 이를 진두지휘한 전략기획실도 해체했지요. 또 그해는 미국 월가에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해입니다. 이후 금융 위기는 파장이 2년째 이어지면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기업의 어려움이 가속화할 때 한 말입니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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