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동행 1] 온기 우편함의 기적

신아연 칼럼니스트 | shinayoun@daum.net | 입력 2019-03-02 11: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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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랫폼뉴스 신아연 칼럼니스트]

 


"소중한 고민을 익명으로 보내주시면 느린 손걸음으로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어제 오후 외출길, 집 앞 버스 정류장 옆에 전날까지는 없었던 '온기 우편함'이란 것이 세워져 있었다. 고민 상담이나 위로가 필요할 때 손편지를 써서 주소와 함께 우편함에 넣어 두면 3, 4 주후에 답장을 받을 수 있다고 몸통에 쓰여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문득 떠올랐다. 아내 없이 혼자 살면서 동네 잡화상을 운영하는 노인은 가게 옆에 놓아두는 우유배달함을 통해 동네 사람들의 고민 상담 편지를 받는다. 가게문을 닫고 난 늦은 시간,  노인은 밤을 세워 사연의 주인공에게 답장을 쓴다. 자신에게 고민과 아픔을 털어놓은 이에게 최선을 다해 공감하고, 마음으로 다가가며, 적절한 답을 함께 찾기 위해 고심하고 또 고심하면서 한 자 한 자 온 정성을 다해 회신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밤새 쓴 편지를 다시 우유통에 넣어 놓으면 사연의 주인공은 정말 답장을 받을 수 있을지 미심쩍음 반, 기대 반으로 다음 날 새벽녘부터 종종 걸음으로 내달려와  편지를 살짝 집어간다.

  

적적한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고 남은 생의 의미를 이웃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지혜를 나눠주는 것으로 채워가는 사이, 나미야 잡화점에서는 '기적'이 일어난다. 강도범들이 마음을 다잡아 새출발을 하고, 원치 않은 임신으로 절망에 빠졌던 한 젊은 여성은 기꺼이 미혼모가 되기로 결심한다. 꿈과 희망을 잃고 좌절하던 어느 무명가수는 나미야 잡화점과의 인연으로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고 영원한 별이 된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핵심은 사랑이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사람은 사랑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삶, 사람, 사랑'은 같은 어원을 가진 말이 아닌가. 발음도 글자 모양도 비슷하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안에서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문제는 그 한 사람이 없다는 것에 있지만.

 

늦은 밤 귀가 길에 고개를 디밀어 실눈을 하고 온기 우편함을 들여다 보았다. 아직은 온기가 없다. 소설 속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 '온기 우편함의 기적'을 보여주시면 좋으련만.  

[플랫폼뉴스 신아연 칼럼니스트] 

 

▲ 중년싱글인문예술문화공간 블루더스트 치유작가  

http://cafe.naver.com/blued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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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칼럼니스트
  • 신아연 / 온라인팀 칼럼니스트 이메일 다른기사보기
  • 필자 신아연 작가는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21년간을 호주에서 지내다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인문예술문화공간 블루더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자생한방병원에 '에세이 동의보감'과 '영혼의 혼밥'을 연재하며 소설가, 칼럼니스트, 강연자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 심리치유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 인문 에세이 『내 안에 개있다』를 비롯,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공저 『다섯 손가락』 『마르지 않는 붓』 『자식으로 산다는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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