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왜 떡국을 먹을까?

설날에 담긴 흥미로운 의미들

정기홍 승인 2021.02.11 13:13 | 최종 수정 2022.01.02 01:53 의견 0

설날이면 어느 고장에서나 떡국 한그릇을 먹는다. 요즘은 거의 사라진 설 문화이지만 20~30년 전만 해도 마을에선 아낙네들이 정성껏 쑨 떡국과 나물 등 반찬을 쟁반에 간단히 차려 이웃 친척 어른을 방문해 세배를 드렸다. 설날이면 소담스런 돌담 길에서 속살을 드러내던 정겨운 지난 풍속이다.

명절은 이 처럼 온 가족이 모여 안부를 묻고 음식을 함께 먹는 날이다. 지금의 세대가 잘 모르는 설날과 떡국, 세배의 유래 등 설과 관련한 흥미로운 것들을 알아보자.

◇ 설날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나?

설날의 어원에는 크게 세 가지 가설이 있다.

첫번 째는 새해 첫날이라 낯설다의 어근인 ‘설’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또 시작하다는 뜻인 ‘선다’를 어원으로 보기도 한다. ‘선다’와 ‘날’이 결합해 ‘선날’로 쓰이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설날’이 됐다는 말이다. 이 외에도 요즘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지만 삼가다의 옛말인 ‘섧다’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옛사람들은 새해 첫날엔 나쁜 행동을 삼가며 행동과 마음가짐을 조심했다. 설날을 ‘신일(愼日)’이라고 해 ‘근신해 경거망동을 삼가는 날’로 여겼다.

◇ '까치 까치 설날' 뜻은?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지금도 자주 듣는 유명한 '설날'이란 동요 가사다. 이 노래는 최초의 창작 동요인 ‘반달’을 만든 윤극영 선생이 1927년 작사 작곡한 노래다.

가사에서 나오는 까치는 무엇을 의미할까? 까치는 ‘작다’를 뜻하는 옛날 말 ‘아츤’에서 유래한 단어라고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아츤→아츠→아치→까치로 음의 변화가 일어났다. 따라서 까치설날은 ‘작은 설날’을 의미하고 한 해의 마지막 날이란 뜻이다.

◇ 설날에는 무엇을 했을까?
설날 아침에는 새해를 맞아 새로 장만한 옷을 입었다. 설빔 혹은 세장(歲粧)이라고 한다. 옛날 부모들은 설을 앞두고 시골 5일장에 나가 설날 입힐 애들 옷을 꼭 샀다. 애들은 근 수개월만에 읍내 목욕탕에 가서 몸에 쌓였던 때도 벗겨낸다. 목욕탕에는 명절이 와야만 갔던 때의 얘기다. 목욕탕 문화가 자리하지 못해 가기가 두려운 애들은 소죽을 끓이던 가마솥에서 데운 물을 다라이(큰 대야)에 듬뿍 담아 몸을 씻어냈다.

설날 새배는 보통 직계 가족 등 아주 가까운 친척 어른에게는 일어나자마자 일찍 들른다. 물론 이때 형제자매간에도 세배를 나눈다. 직계 어른에게 하는 세배는 문 밖에서 하고, 사촌형제 등은 방안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다. 덕담도 빼놓을 수 없다. 덕담은 윗사람이 먼저하는 것이다. 아랫사람이 세배를 드리고 나서 먼저 "올 한해 건강하세요" 등의 덕담을 건네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틀렸다.

윗 어른을 찾았을 때 아낙네들은 아침에 정성껏 끓인 떡국을 대접하지만 반대로 새배하러온 이들에게도 음식을 내놓는다. 이 음식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술을 세주(歲酒)라고 한다.

이후 차례를 지내고, 이어 동네 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한다. 애들이 새뱃돈을 받아 허리에 찬 앙증맞은 작은 복주머니에 넣던 풍경은 우리만의 설 풍속이다. 성묘길에서 만나는 외지에 나갔던 친구나 형, 동생들과 나누는 덕담도 설날만의 정겨운 광경이다. 멀리 떨어진 친척은 정월 대보름이 지나기 전에 찾아뵈면 된다.

성묘와 동네 어른께 새배를 끝내면 설날 놀이가 차려진다. 대표적인 놀이는 윷놀이, 연날리기, 널뛰기 등이 있다. 동네 넓은 터에 깔아놓은 멍석 위로 작은 접시에 담은 윷을 던지며 놀던 풍경은 참으로 흔했다. 설 음식을 안주 삼아 동동주 몇 사발 들이키는 흥겨움은 해가 늬엿늬엿 서산으로 질 때까지 이어진다.

◇ 떡국 유래와 먹는 이유
상당수 설날 전통의 명맥이 끊어졌지만 설날에 떡국 먹는 풍습은 지금도 이어진다.

설날엔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자 맑은 물에 흰 떡을 넣어 끓인 떡국을 먹었다고 한다. 흰색은 근엄함, 청결함을 나타내 좋지 않았던 지난해 일들을 깨끗이 씻어낸다는 의미다.

설날 떡국을 언제부터 먹었을까? 학계에서는 삼국시대 전부터 신년에 제사를 지낼 때 먹던 음식으로 추정하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우리 민족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상고시대 이래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록에서의 오늘날 떡국의 모습은 18세기 조선시대 중후엽부터 나온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담은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 '경도잡지'에 등장한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떡국은 '흰 가래떡을 넣고 끓인 탕'이란 의미로 '백탕', 가래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고 해서 '병탕'이라고 했다.

떡국에 쓰는 떡은 길게 뽑은 가래떡이고 이를 둥글게 잘라 만든다. 길게 뽑은 하얀 가래떡은 장수와 집안의 번창을 의미한다. 이른바 무병장수하란 뜻이 담겼다. 가래떡의 길이는 집안에 재물이 죽죽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

또 둥글게 썬 가래떡의 모양이 옛날 화폐인 엽전(동전)을 닮아 이를 먹으면서 새해에 경제적인 풍요를 기원했다. 긴 가래떡을 동그란 엽전 모양으로 썰어 엽전이 불어나듯 재산도 불어나길 바랐고, 또 엽전 모양의 떡국을 먹으면서 재물이 풍족해지길 기원했다.

이처럼 우리의 설날 국은 단명과 굶주림에 시달렸던 조상들의 간절한 새해 소망이 담긴 음식이라고 해도 되겠다.

요즘엔 떡국 국물을 우려내는 재료로 소고기가 쓰이지만 예전엔 꿩고기를 넣었다. 꿩고기는 귀한 음식으로 설날이 아니면 먹기가 힘들었다. 꿩은 예전엔 산과 들에 나가면 요즘보다 흔했을 건데 비쌌던 모양이다. 꿩고기를 구하지 못하면 닭고기를 대신 넣는다. ‘꿩 대신 닭’ 속담이 여기서 나왔다.

‘설날 떡국 한 그릇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다. 설날 먹는 떡국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해서 ‘첨세병’(添歲餠)이라고 불렀다. 열양세시기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새배를 온 애들에게 몇 살인지 물어보는 대신 ‘떡국을 몇 그릇 먹었냐’고 물었다. 이런 말 때문인지 어릴 땐 빨리 어른이 되고싶어 두 그릇씩 먹던 기억도 있다.

중국과 일본도 우리와 같이 설을 쇤다. 중국에서는 쌀로 만든 경단을 국물에 넣은 '탕위엔'을 먹는다. 일본은 신정(양력 1월 1일)에 국물에 찹쌀떡을 넣은 '오조니'를 먹는다. 어느 음식 평론가가 최근 우리의 떡국 기원이 국물에 떡을 넣은 것이라고 한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설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떡국 한 그릇에는 이 처럼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설날에는 '떡국차례'라 하여 밥 대신 떡국을 올려 차례를 지내고 이를 음복(飮福)했다. 음복은 '복을 먹는다'는 뜻으로 제사를 마치고 가족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을 말한다. 왕실이나 양반, 서민 할 것 없이 이 풍습은 같았다고 한다. 지금도 풍습은 같다.

☞ 각 지방의 떡국
떡국은 떡의 모양과 국물에 따라 지역별로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강원 만두떡국
진한 사골육수에 만두와 떡을 함께 넣어 끓여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낸다. 떡국에 만두를 넣는 지역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다.

충북 미역생떡국
미역과 들기름, 들깨를 넣어 진하게 끓인 국물에 생떡을 넣는다, 생떡은 가래떡을 찌지 않고 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익반죽)해 만든다. 이것을 길쭉하게 만든 다음 동그랗게 썰어넣어 먹었다.

충남 구기자떡국

지역 특산물인 구기자를 이용해 구기자떡을 만들고 그 떡으로 떡국을 만든다. 9가지 효능이 있어 구기자라고 불리는 만큼 칼슘, 철분 등 각종 영양이 풍부하고 진한 노란빛을 띠어 보기도 좋다.

전북 두부떡국

닭으로 육수를 내고 두부를 납작하게 썰어 넣어 만든 떡국이다. 두부의 부드러운 맛과 깔끔함이 특징이다. 두부와 닭고기가 자칫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을 보충해준다.

전남 닭장떡국

닭장떡국은 진한 닭 육수에 간장에 졸인 닭고기를 고명으로 올린다. 구수한 맛이 떡국의 감칠맛을 더한다. 진한 삼계탕에 떡과 두부를 넣는 것과 비슷하다.

경북 태양떡국
태양떡국은 떡의 모양이 타원형이 아니라 태양 같이 둥글어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 특별한 육수 없이 매생이와 굴을 넣어 시원하고 부드러운 맛을 살렸다.

경남 멸치떡국

전국의 바다와 가까운 지역에서 많다. 멸치육수에 국간장과 멸치액젓으로 간을 해 멸치 맛을 더한다. 여기다가 지역에 따라 굴을 넣어 먹기도 한다.

개성 조랭이떡국
조롱박 모양 같다고 해서 조랭이떡으로 이름 지었다. 긴 가래떡을 썰어 대나무 칼로 가운데를 눌러 만든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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