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공동화 이겨낸 도시들 면면을 보니···

정기홍 승인 2020.10.31 13:30 | 최종 수정 2022.01.17 18:31 의견 0

도심의 공동화 해결책 마련이 세계 도시들의 공통 과제로 등장했다. 신도시 개발 등 도시가 확장하면서 대부분의 국내외 주요 도시가 도심공동화의 폐해에 비껴가지 못하고 있다.

서울도 1970년대 대대적인 강남 개발로 인해 강북 지역의 원도심(구도심)이 오랜 침체를 겪었거나 겪고 있다. 도시가 확장될수록 원도심 사람과 시설이 신도심으로 빠져나가 도시 기반이 취약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이에 따라 도심공동화는 도시와 사회 문제로 등장했고, 이를 보완하려는 움직임도 강하게 일고 있다. 반대로 경기도 성남 판교 테크노벨리처럼 짧은 기간에 만들어진 도심들도 도심공동화 현상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 제공

도심공동화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도시가 외곽으로 확장되면서 원도심이 침체하는 것, 다른 하나는 신도시에 교통 주거 생활시설 등 인프라가 부족해 밤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다.

대안 프로젝트로 부상한 것이 도시재생사업이다. 이는 2차세계대전 이후 선진국 도시에서 급속히 나타난 도시 확장(교외화)과 도심공동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됐다. 급속한 도시화를 이룬 한국도 1980년대 이후 나타난 원도심의 쇠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시행 중이다.

도심공동화 현상을 이겨낸 국내외 도시의 주요 사례를 살펴보자.

▶ 영국 도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시재생 정책을 도입한 나라다. 산업혁명을 선도했지만 2차 세계대전 뒤 런던의 도크랜드, 맨체스터, 리버풀, 셰필드 등 공업 및 항만지역에서 급속한 쇠퇴가 나타났다.

1980년대 등장한 마거릿 대처 총리는 사양 산업인 제조업과 광산업을 폐업시키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도시재생사업이다.

대영제국 관문인 런던의 도크랜드 지역은 도시재생의 가장 대표 사례로 꼽힌다.

도크랜드는 제조업의 쇠퇴와 컨테이너 산업의 발달로 항만의 창고와 부두, 사무시설이 거의 폐허가 됐고 이것이 경제 침체의 한 원인이 됐다. 1967년 동인도 도크 폐쇄를 시작으로 1981년엔 모든 도크가 폐쇄됐다. 당시 이 지역에서만 15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해 지역 실업률이 24%에 달했다.

런던시는 템스강변의 낡은 항만시설을 상업지구로 개발하는 '도크랜드 프로젝트'에 이어 2010년부터는 ‘테크시티 프로젝트’를 가동, 신성장 산업을 유치해 주거·상업·업무·문화 등 복합기능 지역으로 재생시켰다. 이곳에1400여개 기업이 둥지를 틀었다.

도크랜드 재개발의 특징은 정부는 기반시설 공사만 하고 수익성이 있는 특정지역 개발은 외국 자본 등 민간에 맡겼다는 점이다.

▶ 미국 도시

미국 뉴욕은 지난 2001년 발생한 9·11 자살테러로 크게 훼손된 도심을 복구하기 위해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전 시장이 재임했던 지난 2000년대 초부터 도심재생사업을 가동시켰다. 지금까지 각종 재생 및 개발 정책을 뉴욕 전역에서 추진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2013년부터 시작한 '브롱스 웨스트 팜 프로젝트'다. 뉴욕의 낙후된 공업지역에 임대주택 등을 지어 활력을 불어넣었다. 3억 5000만달러를 투입해 1325 가구의 주택과 상업 시설을 갖춘 10개 빌딩을 건설해 주거와 생산, 상업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 프로젝트'도 세계적 성공 사례로 소개된다. 폐선 철도(2.4km) 공원화 사업이다. 이 철도는 1934년 완공돼 화물열차용으로 활용되다가 자동차와 항공산업의 발전으로 사양길에 접어들자 1980년 폐선을 했다. 이후 발길이 끊겨 철로는 녹이 슨 채 방치됐었다. 2006년 공사를 시작해 2014년에 완공했다. 지금은 이곳에 매년 500여만명이 방문해 여유 시간을 즐긴다. 이곳에 사람이 모이자 일자리가 늘고 동네에 다시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서울로7017'로 명명된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의 롤 모델이 됐다.

뉴욕시 도시재생사업은 정부 등 공공기관이 초기에 집중 투자해 기반을 닦아놓은 뒤 민간 투자를 이끌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 한국 도시

우리나라의 구 도심지 쇠퇴와 공동화 현상은 도시화가 절정이던 1980년대 전후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1970년대 시작한 서울의 강남 개발이다. 이어 1990년대 대전의 둔산지구 개발, 광주의 상무지구 개발도 있었다.

서울 등 수도권 도시는 신도심 개발로 인한 문제점이 덜하다. 그나마 원도심에 인구와 기반시설 등이 지속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 규모가 한정된 지방 대도시의 폐해는 심각하다. 공공기관은 물론 상업·업무·주거·문화·교육 등 기능이 빠져나간 원도심은 '유령도시'로 변하거나 노인 등 빈민층이 사는 지역으로 전락했다.

유럽 등 서구에서는 오랫동안 원도심 재개발을 해왔지만 한국은 개발 편의성 등으로 신도시 개발 정책을 선택해 서구의 도시들보다 더 심각한 원도심 쇠퇴현상을 겪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도 오래 전부터 도심공동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정책 개발에 나섰다.

국토해양부(현 국토건설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난 2006~2007년 도심을 재생하기 위해 주요 도시에 41개의 도시재정비 촉진지구를 지정했다. 이 가운데 ▲ 서울 종로·중구 세운상가 ▲ 대전 동구 대전역세권 ▲ 대구 동구 동대구역세권 ▲ 부산 영도구 영도제1지구 등 7개를 시범지구로 선정해 주거환경 개선, 기반 시설 확충, 도시기능 회복 등을 추진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도시재생을 통해 새 모습으로 변신 중인 곳은 경남 통영이다. 통영시는 2000년대 중반까지 대표적인 조선도시 중 하나였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조선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폐조선 부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등 관광산업 인프라 투자로 돌파구를 마련했고 도시가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다. 통영은 2017년 정부의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뉴딜’ 시범 사업지에 선정되기도 했다.

반대로 최첨단 기지인 판교테크노벨리의 경우 굴지의 게임업체 등 1300개 첨단 기업들이 입주, 6만 3000명의 직장인이 있지만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점심 시간에만 북적이고 퇴근 후나 주말에는 판교의 도심은 텅 빈다. 근로자 70% 이상이 외지에서 출퇴근 한다. 아직까지는 '재미가 없는' 도시로 남아 있는 셈이다.

도시재생은 부동산 시장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 자칫 투기를 불러올 수 있다. 이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등 여러 경제·사회 문제를 수반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심 인근의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 외지인과 돈이 유입돼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래 있던 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저작권자 ⓒ 플랫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