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이 위력을 발휘할 때

IBK기업은행 노정호 승인 2018.12.03 13:50 의견 0

바다 위의 해상기지로 불리우는 항공모함은 흔히 모함 자체로만 주목하지만 홀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모함이 거느리는 함재기와 더불어 순양함, 구축함, 잠수함 등 다양한 부속 선박들이 모함을 뒷받침한다. 선단 구성원들이 각각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비로소 가공할만한 위력이 나타난다.

기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모여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들의 집단을 기업생태계라고 부른다. 일례로 갤럭시폰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협력기업들로 구성된 기업생태계의 산물이다. 갤럭시폰과 아이폰의 경쟁은 삼성전자와 애플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두 기업생태계 간의 경쟁인 것이다.

항공모함 선단의 일부가 임무에 실패하면 선단 전체가 위태롭듯 협력기업의 붕괴는 기업생태계를 위협한다. 기업생태계는 성공적인 사업 수행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공동체로서 경쟁력을 높여야 하지만 대기업이 단기적인 성과에 몰두하다보면 협력기업에 부담이 전이되기도 한다. 스스로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경우다.

1999년 토요타자동차의 대규모 리콜사태 때를 돌이켜보자. 당시 와타나베 가츠아키 사장은 모든 부품의 가격을 30% 낮추라고 지시했다. 무리한 원가절감 추진은 결국 협력기업 압박으로 이어졌고, 협력기업의 가속페달 불량으로 인해 자동차업계 사상 초유의 1000만대 차량 리콜 사태가 발생하는 원인이 됐다. 품질경영을 모토로 하는 세계 1위 토요타가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최근 국내 언론보도를 보면 현대자동차에 전속으로 거래하고 있는 협력기업의 영업이익률은 1~2%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전속거래를 하지 않는 자가브랜드기업 영업이익률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이런 영업이익으로 협력기업은 기술개발을 할 수 없고 생태계의 경쟁력도 언감생심이다. 사실이라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의 사례를 바라 볼 필요가 있다. 독일에서는 협력기업과의 관계를 장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협력기업을 선정할 때 가격은 여러 가지 평가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품질경쟁력, R&D(연구·개발)경쟁력 등을 종합평가한다. 이를 바탕으로 5~10년의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보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갑을관계라는 것도 없다. 협력기업에게는 R&D와 성장에 필요한 적정이익이 보장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6년 제정된 상생협력법을 근거로 10년 넘게 동반성장을 추진해왔지만 여전히 대기업의 협력기업 쥐어짜기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최근 정부는 민간주도의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의 이익 중 협력기업이 기여한 부분에 대해 적정이익으로 돌려줘 기업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다. 대기업 중심의 건강한 기업생태계를 조성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민간상호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대기업의 희생만을 강요한다는 시각은 과도한 해석이다.

선단 구성원이 제 역할을 할 때 항공모함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듯, 중소기업이 역량을 배양하고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때 우리의 기업생태계가 도약할 수 있다. 당장 입에 쓸 수 있는 약이지만 지속가능한 기업생태계의 경쟁력을 육성한다는 안목에서 대기업은 협력이익공유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동학림(호서대학교 벤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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