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눈) 레터] 영창 간 아들과 그의 아버지

정기홍 승인 2021.06.19 13:59 의견 0

※ 플랫폼뉴스는 SNS(사회적관계망)에서 관심있게 회자되는 글을 실시간으로 전합니다. '레거시(legacy·유산)적인 기존 매체'에서는 시도하기를 머뭇하지만, 요즘은 신문 기사와 일반 글의 영역도 점점 허물어지는 경향입니다. 이 또한 정보로 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SNS를 좌판에서 한글 모드로 치면 '눈'입니다. 엄선해 싣겠습니다.  

 

▲ 지난 2013년 11월 국내 출간된 송석춘 씨의 책.

 

영창 간 어린 아들을 우주선 기술자로 만든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공군 대위로 전역하고 현대자동차에 입사하여 차장으로 고속 승진했답니다.


당시 대졸 초임이 2만 원일 때 자신은 15만 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좋은 직장을 퇴사를 하고 아들 둘에 딸 셋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답니다. (뒤에서 플로리다로 나옴)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인 큰아들이 영창을 가게 되었답니다. 자식을 잘 키우겠다고 이민을 왔다가 아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고, 미국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답니다. 그 때마다 아들은 반격을 가했고, 이 때문에 교장에게 여러 차례 불려가 체벌을 받았답니다.


불만이 쌓인 아들은 어느 휴무일 이틀 동안 다른 미국인 친구와 함께 학교 건물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답니다.


이 사건은 지역 신문의 1면에 톱으로 나왔고 온 가족은 좁은 응접실 구석 모퉁이에 앉아 통곡했답니다.


"한국인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는 비난은 기본이었고, 등하교 때 "그 집을 피해 가라"는 한인들도 있었고, "같은 교육구 학교에 내 아이를 보낼 수 없다"며 전학을 시키는 부모도 있었답니다.


나이 젊은 어떤 한인은 면전에서 "당신 자식 빵에 갔다며?" 하고 이기죽거렸답니다. 그동안 겨우겨우 나가던 교회조차도 사람들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아 발길을 끊었답니다.


교장 선생님은 "세상에 이렇게 학교 기물을 때려 부순 사건은 처음입니다. 카운티 내의 어떤 학교에도 전학이 불가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했답니다.


그는 "아들 죄가 바로 내죄"라 생각하고 속죄를 위해 매주 주말에 온 가족을 동원하여 학교 청소를 하겠다고 했고, 교장은 '별난 아버지'라는 표정으로 허락했답니다.


이 별난 행동은 나중에 다시 한번 플로리다 주류 사회를, 아니 전 미국을 흔들었답니다.


감방에 간 중2 아들의 속죄를 위해 부부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네 아이들과 함께 주말마다 학교에 나와 청소하는 장면을 운동장을 청소하는 광경을 AP통신 기자가 "가족의 명예와 아들을 위해 부모는 모른 체 하지 않았다"는 제하의 기사를 썼답니다.


기사에는 "내 아들이 죄를 지었으면, 내가 죄를 지은 것이다. 내 아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변상은 물론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그의 말이 들어 있었답니다.


미 전역의 신문들이 AP통신 기사를 받아쓰면서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며칠 만에 수백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답니다.


변호사비로 쓰라며 5불, 10불짜리 수표와 현찰을 보내오기도 했답니다. 미국의 신문들에서는 아버지의 "아들 죄가 바로 내죄"라는 고백을 들어 "미국인 부모들도 본받아야 한다"거나 "미국 교육계도 유교적 가족관계에서 이뤄지는 독특한 교육 철학을 배워야 한다"는 논지의 기사와 논평을 내보냈답니다.


며칠 후에 반가운 소식이 가족에게 날아들었답니다. 법정에서 아들을 방면한다는 소식이었답니다.


교육청에서는 다니던 학교로는 되돌아갈 수 없고 멀리 떨어진 다른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서한도 보내왔답니다.
그 후 말썽꾼 아들은 변하여 센트럴플로리다대학(UCF) 학사와 플로리다인터네셔널 텍(FIT) 석사를 받은 후 미항공우주국(NASA) 산하 방산업체에서 근무하며 고위 우주선 탑제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주선을 쏘아올릴 때 수십 명이 달라붙어 점검을 하는데 그 가운데 최고참으로 일하고 있답니다.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오는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들에게 직접 브리핑을 하는 유일한 한국계 직원이라고 합니다.

 
'기름때 묻은 원숭이의 미국 이민 이야기'이라는 책을 쓴 송석춘씨 이야기입니다.


큰아들 송시영씨가 사고를 쳤을 때만 해도 '아이고 저놈이 자라서 뭐가 될꼬' 하고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지금은 가장 가까운 곳에 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낚시를 시도 때도 없이 함께 가 준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잘 되어 미국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해 뿌뜻하고, 선트러스트 은행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큰딸도 명절 때마다 제법 큰 용돈을 보내준다고 합니다.


한 아버지의 대속(대 속죄)으로 사고뭉치의 아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자녀들이 우뚝 일어선 아름다운 가정사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누구가를 위해 대속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대속할 수 있습니다.
내 몸처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윗글을 쓴 분은 3자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한다고 글의 중후반까지 '~답니다'로 이었네요. 좋고 나쁨으로 한 말씀은 아닙니다.

 

과문(寡聞)한 주제에 첨언을 드리자면, 시(詩)도 마찬가지이고 일반 글에도 운율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닦힌 아스팔트길은 편리함과 속도감은 있겠지만 여행길이 무미건조해질 수도 있겠지요. 찰랑찰랑 물결 치듯, 산등성이의 굽이 넘어가듯 강약을 스미게해 써내려가는 글이 실증남을 희석시킨다고도 합니다. 

 

각설하고요. 자식을 키우는 일을 흔히 '자식농사'라고 말합니다. 아시다시피 위의 일과 같은 반전의 사례는 많습니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미운 짓만 한다는 '미운 다섯살'에서부터 중학교 2학년(15세) 때 쯤의 '중2사춘기' 반항, 고교 때의 대학 입시와 대학 때의 사회초년생 방황 등 시와 때도 없이 부모를 괴롭힙니다. 우리 사회는 이를 등식(等式)같이 겪고, 또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커가는 과정을 거친 뒤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면서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리를 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도 확연히 자리합니다.

 

위의 사례도 이런 유형으로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큰 사고뭉치 아이가 '어떤 일을 해냈고, 어떻게 잘 됐다더라'는 반전의 성공담도 많습니다. 저 집의 아들도 평소 생각과 행동이 적극적이었고, 이민사회의 '골'(어두운 면)인 인종차별에서 폭발했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울분을 삭이지 못한 것도 같습니다. 저런 내면에 잠재된 기(氣)가 선순환적으로 잘 풀리면 반대로 '성공 스토리'를 잇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들이 저렇게 변한 데는 부모의 공(功)이 컸다고 보여집니다. 공이란 단어를 굳이 끌어온 이유는 못 배우고, 없이 산 우리의 촌로(村老)들이 자주 쓰는 말이라 잠시 빌려왔습니다. 당신은 좋은 것 하나 못 가져도 '하해(河海)와 같은 부모님의 은혜!'입니다.

 

검색을 해 봤더니 아버지 송석춘 씨(현재 84세)는 서울의 동양공고를 나와 성균관대를 중퇴했고, 공군 간부후보생에 합격, 중대장 복무도 했었네요. 이어 현대차에 2년을 근무한 뒤 미국으로 자동차 정비공으로 취업이민을 가서 성공한 분이군요.

▲ 지난 2014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때 송석춘 씨의 사진. 오마이뉴스 제공  

 

플로리다주에 있는 동포신문인 '코리아위클리'에 17년 간 연재한 내용을 정리해 지난 2013년 11월 국내 출판사에서 책을 냈습니다. 그래서 '기름때 묻은 원숭이'라고 책머리에 썼군요.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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