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산업을 10년 만에 삼켜버린 플랫폼 산업

이상훈 승인 2019.05.27 17:41 의견 0

▲ 플랫폼 산업이 커지면 기존 산업을 누르기 시작했다. 

 

 

[플랫폼뉴스 이상훈 기자] 플랫폼은 전철이나 기차를 타고 내리는 정거장을 가리킨다. 그런데 IT 산업에서는 사용자들이 타고 내리는, 즉 이용하는 환승통로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플랫폼의 정의가 실로 다양하지만 오늘날 대표적인 글로벌 IT 회사들은 이 '플랫폼' 사업자를 자처한다. 아마존(Amazon), 애플(Apple), 구글(Google), 페이스북(Facebook) 모두 이 플랫폼을 바탕으로 성장한 글로벌 기업이다. 


플랫폼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기 전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Intel), 시스코(Cisco), 델(Dell) 같은 제조 기반 기술기업들이 대표 IT 기업이었나 플랫폼 산업이 커지면서 직접 제조하는 사업자보다 중개사업자가 더 큰 수익을 거두게 됐다. 플랫폼의 등장은, 산업 전반에 걸쳐 지각변동을 야기했다. 


대표적인 예가 넷플릭스(Netflix)와 스포티파이(Spotify)다. 본래 DVD 렌탈샵이었던 넷플릭스는 온라인 구독(Subscription) 형태로 바꾸고 사용자 수를 늘렸다. 현재 넷플릭스의 유료 구독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1억4000만명 이상이다. 이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이제는 넷플릭스가 콘텐츠 유통에서 벗어나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전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 역시 구독자 수가 1억명을 넘기며 패키지 구매 방식에서 스트리밍 구독 방식으로 음악 청취 환경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플랫폼 사업자가 점점 성장하면서 기존 사업자들은 성장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내놓은 뒤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노키아는 2007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49%에서 2년 뒤 17 %로 급락했고, 급기야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됐다. 

 

▲ 설립 10년 만에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힐튼보다 기업가치가 커진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 [출처: 에어비앤비]

 


호텔스닷컴이나 아고다 같은 호텔예약 플랫폼이 등장하면서는 호텔 체인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Airbnb)의 경우, 사용자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한 채도 없지만 기업가치가 293억 달러(한화 약 32조7000억원·2019년 1월 기준)에 달한다. 100년간 호텔사업을 해 온 힐튼의 기업가치가 236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설립 10년차에 불과한 에어비앤비의 성장세는 놀라움 그 자체다. 


플랫폼의 시장 파괴는 숙박시설에 그치지 않는다. 거의 전 영역에서 플랫폼 사업자의 전통 시장 흡수는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플랫폼 사업이 급성장할 수 있었을까. 학자들은 이 현상을 '메트칼프의 법칙(Metcalfe’s law)'을 사용해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전기공학자이자 쓰리콤(3com) 사의 창립자인 로버트 메트칼프(Robert Metcalfe)가 고안해 낸 이 법칙은 '통신 네트워크의 가치가 전화기, 팩스 등 그 네트워크에 부착된 통신기기(communication devices)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설명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네트워크 이용자가 1만 명인 환경에서 5000명의 이용자가 증가했을 때 네트워크 구축비는 50%가 증가하지만 네트워크의 가치는 125%까지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초기에는 추론에 불과했지만 온라인 네트워크 기반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메트칼프 법칙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메트칼프 법칙은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와도 상당 부분 닮았다. 이용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가치가 증가하는 것은 생산규고가 증가함에 따라 생산당가가 줄어드는 것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플랫폼 사업이 기존 산업 질서를 붕괴시키자 전통 기업들도 뒤늦게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술했듯, 플랫폼 사업은 사용자 수가 많아질수록 비용은 감소하고 수익은 높아진다. 뒤늦게 동종 플랫폼 시장에 진입해 '퍼스트 무버'를 따라잡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결국 기존 기업들의 선택지는 하나로 축약된다. 독자적인 플랫폼을 고수해 망하기보다는 플랫폼 사업자들과 협력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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