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일] '버스노선 화살표 청년', 현대차서 스카웃

정기홍 승인 2020.10.24 17:58 | 최종 수정 2021.12.25 18:37 의견 0

서울 시내버스 노선도에 처음으로 방향 화살표를 붙인 '화살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벌써 수년이 지났고, 다음 글은 지난 기사 등을 참고했습니다.

▲ 이민호씨가 시내버스 노선도에 화살표를 붙이고 있다. 이민호 씨 제공

누구나 버스를 이용할 때면 노선도 앞에서 고심을 한다. 기자도 가끔 일반버스와 마을버스를 구별하지 못하고 타는 실수를 하곤 했다. 마을버스로 잘못 탄 것도 잘못됐지만, 목적지와 정반대로 갔다거나 빨리 가려다가 되레 이 단지 저 단지를 둘러서 가는 버스에 속을 썩인 게 한두번은 아니다.

지난 2012년 서울 시내버스 노선도에 1cm 남짓한 작은 '방향 화살표'를 붙인 20대 청년이 화제가 됐었다. 알려질 당시 스무세살이던 이민호씨(20년 현재 31세)는 빨간색 화살표 스티커를 구입해 자신이 살던 마포구를 중심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붙였다고 한다. 2011년 8월부터 길게는 하루에 15시간씩 내 일인양 했다.

이 씨는 어느 언론 매체에서 “근처 광역버스 노선표에 빨간 화살표가 없더라”고 밝혔다. 서울시도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이고, 이것이 이 씨를 더 움직이게 한 것으로 여겨진다.

20대 초반 젊은이가 기특한 말도 했다. “내가 좀더 발품을 팔면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가 당시 800여 곳의 시내버스 정류장에 화살표 스티커를 붙인 사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졌다. 서울시가 뒤늦게 이를 알고서 2012년 5월 표창도 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8월, 그는 교육과학기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운영하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전자공학과에 진학해 멀티미디어학을 공부하게 된다. 전문대 졸업에 준하는 학사 학위를 받았고 직장을 찾아 나섰다. 물론 스티커 붙이는 일도 쉼없이 했다. 이 씨는 “서울시 표창을 받고 나서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고 2000여 곳에 화살표를 더 붙였다”고 말했다.

이 씨는 대기업 4, 5곳의 사회공헌 파트에 입사원서를 냈다고 한다. 해외연수나 내세울 만한 공인 어학시험 점수도 없었다. 하지만 헌혈은 기본, 사후 장기기증 서약에다 주말이면 지적장애인들에게 스케이트나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는 등 '봉사 스펙'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물론 공업고교 재학때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 했고 대학(국가평생교육진흥원) 학점도 4.5점 만점에 4.42점을 받아 성실함도 갖췄다. 하지만 한곳의 서류전형 문턱도 넘지 못했다.

낙담을 하던 이 씨에게 2013년 초 현대자동차 인재채용팀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뜻밖의 전화가 왔다. 서류전형을 면제받고 인·적성검사와 2차례의 면접을 치른 뒤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당시 현대차 인재채용팀 과장은 “이 씨의 봉사 스펙은 ‘함께 움직이는 세상’이라는 현대차의 사회공헌 철학에 부합해 스카우트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입사후 국내외에서 진행하는 사회공헌사업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4개월만에 사직서를 썼다. 사직의 변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기업에서는 모든 게 업무 연장이라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후 그는 한국폴리텍대 바이오캠퍼스에 입학했고, 졸업후 2015년에 원료의약품 회사인 에스티팜에 입사해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언론의 관심이 떨어져 근황은 알려져 있지 않다.

‘화살표 청년’으로 이름 붙여진 그는 지금은 스티커를 붙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울시에서 이미 시 전역의 버스 정류장에 방향표시를 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시민 불편에 대해선 아직도 '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서울시가 당시 표창할 때 "버스 방향표시 누락 신고에 그치지 않고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통해 실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너도나도 다니면서 접하는 주위에 불평불만 대상이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이 씨와 같은 작지만 당돌한 시도가 세상을 편하게 바꾼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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