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선 무슨 일이?

삼성 운명 바꾼 전화 한통 "프랑크푸르트로 집합"

정기홍 승인 2020.10.26 18:17 의견 0

어제(25일) 오전에 별세한 이건희 삼성 회장에 관한 언론의 기사들은 매우 다양하고 폭넓습니다. 그 중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고 했던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의 산파역을 한 독일행 비행기 안의 분위기에서부터 '신경영 선언'이 나오기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지난 1993년 6월 5일. 일본 도쿄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루프트한자 비행기 1등석에 이건희 회장이 앉았습니다. 그는 이륙 후 비서실에서 준 서류를 줄곧 보고 있었는데, 이는 삼성전자 고문이었던 후쿠다 씨와 기보 씨가 작성한 보고서였습니다.

 

후쿠다 보고서는 디자인 관련 내용이고, 기보 보고서는 사업장 관리에 관한 내용이었다고 하네요.


후쿠다 고문은 ‘상품을 디자인할 때 A안, B안, C안이 출발부터 개념이 다른데도 삼성의 윗사람들은 적당히 섞어서 제품을 만들라고 지시한다’고 보고서에서 지적을 했답니다. ‘느닷없이 사흘 안에 디자인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하고요.

 

기보 고문은 ‘공장에서 콘센트가 발에 걸리적거려도 정리할 생각을 않고 무심히 지나친다. 이런 기본적인 것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비판했답니다.
 

이 회장은 이 보고서를 본 뒤 수행한 임원들을 불렀습니다. 이들의 보고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고, 그는 기내에서 삼성의 변화와 개혁의 당위성을 7시간이나 설파했다고 합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숙소인 켐핀스키 호텔에 가서도 줄곧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일이 또 터졌습니다. 호텔 도착 다음날 아침에 삼성 사내방송(SBC)팀이 만든 30분짜리 비디오가 이 회장에게 전달됐습니다. 그 비디오 안에는 세탁기의 뚜껑 규격이 맞지 않아 문이 닫히지 않자 근로자들이 칼로 깎아내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이 회장이 화를 많이 냈다고 하고, 이어 서울로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삼성에서 낸 자료나 여러 관련 책에서도 나오지만 이 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지금부터 내 말을 녹음하세요. 질(質)경영을 그렇게도 강조했는데 이게 그 결과입니까. 사장들과 임원들 전부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키세요. 이제부터 내가 직접 나설 겁니다”


오래도록 회자되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말이 프랑크푸르트 현지에서 '신경영 선언'을 할 때 나온 것입니다. 일명 삼성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고 하지요.

 

물론 이러한 전 과정이 서울에서 기획되고, 독일까지 날아 갔고, 세탁기 고치는 비디오가 '신경영 선언'의 타깃이 된 셈이지요. 실제 이 회장은 1993년 초 가전제품 품질에 대한 질책을 쏟아낸 'LA 회의'에서부터 일본 도쿄를 거쳐 6월 '프랑크푸르트 회의'까지 정교한 로드 맵을 갖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가정의 중요 구성원인 마누라, 자식까지 들먹였으니 지금까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겠죠.

 

그는 선친에게서 가업을 물려는 받았지만 구 가신들의 파워에 5년간 말 없이 지냈고, 때가 됐다는 판단에 준비한 혁신안을 들고 연초부터 해외 나들이를 한 것이지요.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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