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은 지금 '아파트 공시가격 불복 서류' 작성 중

전국 단지엔 하루 멀다하고 이의신청 방송
주공 단지도 크게 올라 서민들 아우성
조은희·원희룡 5일 관련 기자회견
큰 폭 오른 세종 시장, "닞춰 달라" 요구

강동훈 승인 2021.04.02 22:55 | 최종 수정 2021.12.24 21:40 의견 0

"빈둥빈둥 놀던 남편이 살고 있는 서울 아파트 값이 최근 1~2년새 천정부지로 치솟자 저녁마다 술 먹고 들어와 마누라한테 '내가 안 팔고 갖고 있길 잘했지. 이런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이야'라고 큰소리를 치더랍니다" "그런데 남편이 며칠 전 폭탄 종부세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목소리 높여 정부를 성토해 아내가 '참 저 양반 왜 저러나'라고 했다는 말을 지인에게 들었지요""(기자가 자주 가는 음식점 주인의 말).

전국의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요즘 '공시가격 조정 의견서' 작성에 여념이 없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에 대한 이의신청이 오는 5일 종료되는 가운데 전국 각지에서 가격을 낮춰달라는 민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역대급 가격 상승에 보유세(종부세 포함)가 크게 오르자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중심으로 이의 제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도 가세하고 있어 '조세 조항'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 공동주택 가격 의견서 원본.

특히 서민이 많이 사는 서울의 주공아파트 단지 주민의 원성이 크다. 주공단지 주민들은 "무슨 날벼락이냐"며 극한 성토에 나서고 있다.

올해 공시가격이 20% 가까이 오른 강서 지역의 대규모 주공아파트 단지에 사는 한 주민은 2일 "집사람과 단 둘이 살아 퇴직을 하고 달랑 아파트 한채만 갖고 큰 수입도 없이 사는데 우린 어쩌란 말이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큰 욕심 없이 투자와 투기를 모르고 십수년 이곳에 불편을 참고 살고 있다. 우리가 아파트 값을 올려달라고 했느냐. 사는 데서 살려고 해도 정책 실패로 인한 고통을 고스란히 떠앉아 등골만 휘게 됐다"고 언성을 높였다.

서울 강북 지역의 성북구 래미안길음센터피스와 서대문구 홍제센트럴아이파크아파트 등 단지도 집단 이의 신청에 나서 주민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는 정부에 공시가격 재조정을 요청하겠다는 알림 내용이 붙어있다.

부자 동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입주민들은 공시가격 인상을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과 상일동 고덕아르테온 등 인근 5개 단지 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도 공시가격의 부당 인상 의견을 내놓고 이의 신청을 하기로 했다.

서울 서초구는 "자체 검증 결과 1만여 건에 문제가 있다며 정부에 수정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2일 밝혔다. 조사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서초구 관계자는 “공시가격 검증단을 구성해 전수조사를 했는데 1만여 건 정도의 문제가 있었다”면서 “정부에 재검토 이후 조정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초구 전체 공동주택이 12만 5294가구인 점을 감안하면 약 12가구 중 1가구의 공시가격 산정이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서초구는 지난해 공시가격이 22.56% 상승한 데 이어 올해도 13.53% 오른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와 함께 오는 5일 주택 공시가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두 지자체는 지난달 정부에 주택 공시가격 동결을 건의하고 합동 조사를 한다고 밝혔었다.

제주도는 공시가격검증센터를 통해 제주도뿐 아니라 강원도 등 전국의 공시가격 오류를 공개하기로 했다.

여당 지자체장인 이춘희 세종시장도 브리핑에서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 국토교통부 등에 공시가격 하향 의견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수 아파트 단지에서 집단으로 이의신청을 준비하는 등 시민들이 보유세 급증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올해 70.68% 올라 전국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제주공시가격검증센터장인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토부와 한국부동산원이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주택 공시가격 업무를 부실하게 수행하면서 오류가 속출하고 있다”며 “납세자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공시가격 산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검증할 수 있도록 이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열람 기간에 제출된 의견은 총 3만 7410건이었다. 2019년(2만 8735건)에 비해 30.2% 증가했다. 이 가운데 집단 민원 제출 건수는 1만 5438건에서 2만 5327건으로 64.0%나 늘었다. 올해는 역대급 공시가격 인상에 최다 민원을 한 2007년의 5만 6355건을 거뜬히 넘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의 경우 이의신청 가운데 수용한 비율은 2.4%에 불과하다.

국토부는 5일까지 이의신청을 마감하고 내용을 살펴본 뒤 29일 공시가격을 결정·공시한다. 이후에도 추가 이의신청을 받지만 29일 가격이 공시되면 거의 바꾸지 않는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019년 기준 가구 평균 소득은 1.7% 증가에 그쳤는데도 공동주택 공시가격 급등으로 세금 부담이 커지면서 돈을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줄어든 셈”이라면서 “조세 반발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시가격 현실화가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세금을 통해 주택 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플랫폼뉴스 강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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