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유통기한’ 이후 50일까진 먹어도 괜찮다는데…

강하늘 승인 2021.06.01 01:46 | 최종 수정 2021.12.16 15:32 의견 0

상품에 표기된 ‘유통기한’을 넘긴 식품은 먹어도 괜찮은가, 괜찮으면 언제까지일까?

최근 각 국에서 지구의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탄소중립과 관련해 음식물 낭비 줄이기에 관심이 부쩍 커지면서 유통기한 문제가 또다시 관심사로 등장했다. 시판 식품의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요즘은 냉장 보관 및 유통 체계가 잘 구비돼 있어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가 낮아졌고, 멀쩡한 음식을 폐기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세계에서 생산된 음식물의 약 30%는 버려진다. 지난 2019년 한국에서만 매일 1만 4314t의 음식물이 버려졌다. 여기에서 이들 음식물이 부패하거나 소각되는 과정에서 885만t(2013년 기준)의 온실가스가 추가로 배출됐다.



환경단체와 식품·위생 전문가들은 작은 제도 하나만 바꿔도 음식물 쓰레기를 최대 50%를 줄인다고 주장한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부패한 식품이 판매·섭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한 지표다.

유통기한은 ‘판매가 가능한 시점’을, 소비기한은 ‘품질이 떨어졌지만 먹어도 건강에 지장 없을 것으로 인정되는 시점’을 뜻한다. 이 밖에 품질유지기한(식품 품질이 전혀 바뀌지 않는 기한), 종료기한(식품 섭취가 가능한 최종 기한)이 있다.

유통기한은 가장 보수적인 지표다. 품질에 전혀 지장이 없는 품질유지기한보다 짧다.

한국은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에 따라 일정한 시험을 거쳐 유통기한을 정하는데, 유통기한은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기한의 60~70%, 소비기한은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기한의 80~90%에서 정한다. 우유의 경우 유통기한은 생산 판매후 14일 전후, 소비기한은 18일 전후다. 보통 품질유지기한의 60~70%선에서 설정한다.

예를 들어 A식품이 제조된 지 10일 만에 부패하기 시작한다면 유통기한은 6~7일로 정한다. 또 유통기한을 위반해 식품을 판매하면 강제 폐기, 영업 정지, 허가 취소 등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유통기한을 넘겨 제품을 먹어도 건강에는 지장이 없다. A식품의 경우 품질 변화 없이 3~4일을 더 먹을 수 있고, 그 이후에도 어느 시점까지는 건강에 지장이 없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2009년 부패에 가장 민감한 유제품을 대상으로 시간 경과에 따라 △수소 이온 농도(PH) △일반세균수 △대장균군수 변화를 측정했더니 우유의 경우 0~5도에서 냉장보관 하면 유통기한 이후 최대 50일까지 섭취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시중 우유의 유통기한은 출시 후 9~14일이다.


이 밖에 유통기한이 지나도 치즈는 70일, 건면 50일, 냉동만두 25일, 식빵은 20일까지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유통기한 때문에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는 최대 57%까지로 추정된다. 지나치게 짧은 판매기간(유통기한) 탓에 유통 과정에서 업체가 폐기하는 식품이 상당하고, 대부분의 가정에서도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오해해 먹을 수 있는 제품을 버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환경부는 2013년 음식물쓰레기의 약 57%가 유통·조리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발표했고, 한국식품기술사협회는 2011년 식품 폐기물 중 32%가 기한 내 판매가 되지 않아 발생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13년 성인 203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약 56.4%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폐기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유럽연합(EU)·캐나다·일본·호주·영국·홍콩·중국 등에서는 유통기한을 쓰지 않는다.

영국은 2011년부터 유통기한을 없애고 대신 품질유지기한과 소비기한을 표기하도록 하고 있고, 소비기한이 지난 식품만을 판매금지한다. 미국은 유통기한을 쓰지만 소비기한도 함께 기재한다.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오해해 먹을 수 있는 식품을 폐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도 2018년 유통기한을 식품기한 지표에서 삭제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소비기한제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7월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같은해 11월 국회 보건복지 소위에서 '식품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지 추가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이유로 논의가 미뤄지고 있다.


환경단체인 소비자기후행동의 관계자는 “소비기한제는 이미 국제적으로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된 제도인 만큼 도입을 늦출 이유가 없다”며 “관련 법안이 발의되어 국회에 계류돼 있는 만큼 법안 통과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플랫폼뉴스 강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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