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장관 조롱시, 김삿갓 작품인가?

'추미애가정신병' 한시 논란 속에 입소문 확산
한시 실린 '꾸밈의 한국사' 출판사 "확인 안돼 폐기"
김삿갓의 한시인지 진위 판단은 아직 일러

정기홍 승인 2020.10.02 11:03 | 최종 수정 2021.12.21 13:59 의견 0

조선 희대의 시인 김삿갓은 평생 방랑생활을 했지만 '비꼬는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자 표기론 김립(金笠)이요 본래 이름은 김병연, 떠돌이를 한 연유도 와닿는 그런 인물이다. 요새 말로는 펀치라인(Punchline)에 딱 어울리는, 언어유희가 탁월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추미애가정신병'으로 시작되는 한시가 '김삿갓의 한시' 진위 논란으로 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최근 아들의 군대 휴가 논란 와중에 거짓말한 것을 빗댄 한시다.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가 최근 이 한시가 모방 또는 위작이라는 기사를 써 또한번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추미애가정신병(秋美哀歌靜晨竝)
아무래도미친연(雅舞來到迷親然)
개발소발개쌍연(凱發小發皆雙然)
애비애미죽일연(愛悲哀美竹一然)

가을날 곱고 애잔한 노래가 황혼에 고요히 퍼지니
우아한 안개는 홀연히 드리운다
기세 좋은 것이나 소박한 것이나 모두가 자연이라
사랑은 슬프며 애잔함은 아름다우니 모두 하나로 연연하다

최근 논란이 되는 한시다. 독자 분들도 촉으로 느꼈겠지만 한시 자체와 풀이는 딴판이다. 한시에는 정신병, 미친연 등의 욕 단어가 나오지만 풀이에는 사람의 정서를 가을날 자연에 빗대어 음미하게 한다.

SNS 등에서는 '김립시집'에 실린 작품이고, 지은이를 김삿갓으로 확정해 소개된다. 귀인 김삿갓이 시대를 앞서 추 장관의 거짓말 사태를 예측하고서 이를 비꼬기 위해 지은 한시란 글이다.

이 한시는 2018년 1월에 한 출판사에서 펴낸 '꾸밈의 한국사'라는 책의 145쪽에 실려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김병연은 김삿갓으로도 불리며, 후세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모아 엮은 '김립시집'이 전한다"라며 "한문을 읽으면 조금 이상할지 모르나 해석을 하면 여간 마음에 와 닿는 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최근 "확인 결과, 김립시집이란 제목의 책을 시중에서는 찾을 수 없다"며 이 한시도 출처불명의 시라고 주장했다. 이 기사를 접한 출판사 관계자는 "작가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걸 확인하고 쓴 것이라고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출판사 측은 논란이 되자 "역사책은 인용이 아주 중요하고 출판사로서 진위 여부를 아주 정확히 확인했어야 했다"며 "의도를 가지고 실은 것은 아니고 (김삿갓 작품 여부가 확인이 안 됐으니) 모두 회수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만 갖고는 아직 이 한시가 '있고 없고'와 '진위 여부'를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다.

김삿갓은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을 엮은 한시집을 내지 않았다는 게 정설로 전해진다. 평생 방랑객으로 남았으니 그럴만 하다 싶다. 지금에 나와 있는 책들은 그의 사후에 후대들이 묶어 펴낸 것이다.

논란이 된 김립시집도 김삿갓을 연구해온 이응수씨가 1930~40년대에 김삿갓 한시를 수집해 발간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여러 버전의 김삿갓 한시집도 이 시집 등을 바탕으로 출판됐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최근 것은 이명우씨의 '방랑시인 김삿갓 시집'(출판사 집문당) 개정 증보판이다. 2017년 10월에 나왔고 올 초 2쇄에 들어갔다. 집문당 관계자는 "김삿갓의 작품으로 알려진 과거의 한시들과 2000년대 들어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발굴된 한시까지 망라한 총집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추미애가정신병'으로 시작하는 한시는 없다.

이 한시가 회자된 건 최근만이 아니란 주장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때 탄핵 찬성파였던 추 장관을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참여정부 이전에 창작됐다는 말도 있다. 시기를 추 장관의 '취중 폭언' 파문이 일던 2001년 7월로 지목한다. 당시 인터넷 카페들에서 해당 한시가 떠돈 흔적이 있지만 '김삿갓 시'라는 소개는 없었다고 한다.

희대의 시인이니 당대에서나 지금이나 모방을 하거나 위작해 김삿갓의 한시로 둔갑한 작품이 없을 리는 없다. 고미술도 그런 게 많다. 그러나 그림과 또다른 차이가 있는 게 글이다. 김삿갓이 쓴 진본이 아닐 바엔 그가 썼다며 돌아다니는 한 수는 고미술처럼 가격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읽는 사람들이 글의 매무새를 잘 느끼면서 갈무리 하는 것도 한 방편이 아닐까 싶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 김삿갓 한시 몇수를 소개해 봅니다. 기발한 문구에 웃음을 머금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도 하는 한수들입니다. 일부는 '파자(破字·한자의 자획을 풀어 나눔)놀이'도 합니다.

▶방랑시인이 된 연유

- 1826년 스무살때 강원도 영월의 동헌뜰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장원급제

* 詩題(시의 제목)는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 김병연은 백일장에서 순조때 서북인을 홀대한다며 일으킨 홍경래난 때 전사한 가산군수의 충절은 찬양하고, 항복한 김익순의 불충을 추상같이 꾸짖는 글을 탁월하게 구사.

*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친조부라는 말을 듣고서 세속과 인연을 끊고 죽장(대나무지팡이)에 삿갓을 쓰고 평생을 전국을 돌며 방랑 생활.

* 하지만 과거시험 이야기는 후세에서 지어낸 것이란 주장도 있음. 이유는 과거시험에는 본래 친가-외가의 4대 조상까지 신상을 제출하게 돼 있어 원천적으로 과거시험을 볼 수 없다는 것.

■ 한시 사례(훈과 음을 활용해 자도층의 부패와 욕심 난 사회상을 꼬집는 작품들)

▶ 파자로 상대를 힐난

- 저녁 한끼 해결하려던 개성 부잣집에서 쓴 시

* 하인이 주인에게 "人良卜一(인양복일) 하오리까" 하니 주인 왈 "月月山山(월월산산)하거든"이라. 김삿갓이 먼발치에서 듣고서 "丁口竹天(정구죽천)이라 月豕禾重(월시화중)이로다"

* 쪼갠 파자들을 붙이면 食上(식상), 朋出(불출), 豚種(돈종)/ 하인이 "식사를 차릴까" 하니 주인이 "벗(김삿갓)이 나가고 나서"라 하고, 이를 들은 김삿갓이 "돼지종자 같은 놈들 가소롭다"라며 욕하고 나왔다는 뜻

- 함경도 버전

* ​함경도 부자집 안주인이 "人良且八(인량차팔)-月月山山(월월산산)"이라 하자 ​김삿갓이 "犬者禾重(견자화중)아, 丁口竹天(정구죽천)"이라 하고서 나옴.

* 쪼갠 파자를 붙이면 食具(식구), 朋出(붕출). 猪種可笑(저종가소)

▶ 20부터 70까지 숫자 활용

- 60대때 함경도 부잣집서 냉대를 받고 쓴 시

* "二十樹下三十客(이십수하삼십객)/ 四十家中五十食(사십가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인간개유칠십사) / 不如歸家三十食(불여귀가삼십식)"

* “스무나무(느릅나무과) 아래 서러운(30) 나그네가, 망할(40) 놈의 집안에서 쉰(50) 밥을 먹네. 예순(60) 평생에 어찌 이런(70)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선(30, 설은=설익은) 밥을 먹으리라”

▶서당의 훈장을 비꼰 시(추미애가정신병 한시가 이런 부류임)
- 김삿갓이 겨울 원산을 헤매다 시골의 서당 찾아 하룻밤 묵기를 청함. 학동들이 비렁뱅이,거렁뱅이라며 쫓아냄.

* 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 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

* 서당임을 내 일찍(이미) 알고 왔더니/ 선생은 와도 내다보지 않네/ 생도는 모두 열명도 못되고/ 방안엔 모두 귀한집 자손(방에 놈들 잘난 척만 하더라)만 있네.

- 토론이 빈약하거나 진영 주장만 하는 토론방송을 빗댄 최근 버전

* 討論乃早知(토론내조지) 分析家不謁(분석가불알) 論客諸未十(논객제미십) 房中皆戰物(방중개전물)

▶ 기생 가련과 몇개월 살다 방랑길 재촉하며 지은 시

- 名之可憐色可憐(명지가련색가련)/ 可憐之心亦可憐(가련지심역가련)

日日人空老(일일인공노)/ 年年春再歸(년년춘재귀)

相歡有尊酒(상환유존주)/ 不用惜花飛(불용석화비) * 이름도 가련이오 얼굴도 가련한데/ 가련은 마음도 가련하구나.

사람은 날마다 헛되이 늙어가는데/ 봄은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구나

마음껏 즐기세 술단지에 술이 가득하니/ 꽃이 진다고 아까워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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