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된' 도시재생사업, 일부 방향 튼다

서울시 '재생+공급' 혼합안 추진
'원형 보존' 시책 10년 만에 보완
주민들 "도시재생, 주거여건 더 악화"
정부도 다음달 고밀도 개발 대책 발표

강동훈 승인 2021.01.24 10:25 | 최종 수정 2022.01.05 14:42 의견 0

서울시가 양천구 엄지마을, 성북구 정릉3구역 등 기존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진행지에 아파트를 일부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한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초기에 시작된 도시재생사업(원형 보존) 기조를 10년 만에 허무는 것이다. 이 사업은 변창흠 현 국토교통부 장관이 SH공사 사장 때 주도했고, 문재인 정부의 역점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도시재생사업 기조를 일부 푸는 것은 주민들의 요구가 거세지고 서울 아파트 값 폭등을 잠재우기 위해 공급 확대로의 정책 전환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곧 정부 차원의 도시재생사업 활성화 대책도 발표될 전망이다.

24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는 양천구 엄지마을을 시작으로 올해 10여 곳의 ‘관리형 주거환경 개선사업(옛 휴먼타운 조성사업) 구역’에서 도시재생과 주택 공급을 혼합하는 개발 방안을 추진한다. 도시재생사업지에 소규모 정비사업 등을 접목할 수 있게 도로 정비 등 여건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관리형 주거환경 개선사업은 정비사업 중단과 해제에 따른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 2000년대 후반에 도입됐다. 서울 도시재생사업의 모태 격이다.

양천구 엄지마을은 목2동 231 일대에 20년 이상 된 단독·다가구·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저층 주거지다. 도시재생 틀은 유지하면서도 가로주택 정비사업을 접목해 300가구 규모의 새 아파트를 공급하기로 했다. 가로주택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구역은 엄지마을 부지(6만 8317㎡)의 24.3%(1만 6625㎡)다.

서울시는 올해 정비계획이 수립될 성북구 정릉3구역과 8구역, 성북4구역 등 8개 사업장에도 비슷한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파트 값이 폭등하면서 공동주택 형태로 주택 정비를 하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요구가 많았다”며 “주민들이 원한다면 기반 여건이 좋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에는 성북구, 중구, 종로구, 구로구 등 강북권을 중심으로 86개(일반마을 67개, 성곽마을 19개)의 관리형 주거환경 개선사업 구역이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서울시의 도시재생은 개발보다 원형 보존, 사업보다는 복지적 관점에 초점을 맞춰왔다”며 “최근 주민들의 거센 개발 요구로 상당한 기조변화가 생긴 것”으로 평가했다.

서울시가 10년간 지켜온 도시재생 사업 방향을 바꾼 것은 부동산 값 폭등으로 이들 주민의 반발이 거세지기 때문이다.

일부 도시재생지역의 주민은 ‘도시재생구역 해제 연대’를 결성하고 공공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종로구 창신동과 숭인동, 구로구 가리봉동5구역, 용산구 서계동 등은 서울시에 도시재생사업 말고 공공재개발 사업을 해달라고 신청했지만 서울시와 구청은 중복 지원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들은 도시재생사업이 지원센터 건립, 도로 포장, 벽화 그리기 등에 집중해 사는 여건이 더 열악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창흠 현 국토부 장관이 서울시 산하 SH공사 사장일 때 900억원을 들여 추진한 ‘도시재생 1호’ 창신·숭인동 도시재생사업은 사실상 실패로 결론이 났다. 소방차도 못 들어가는 골목길, 장마철마다 겪는 물난리 등 근본적인 구조물 환경은 놔두고 벽화 등만 그려선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창신동에서 오래전 10년을 살았었다는 정모(61)씨는 "창신동이 도시재생으로 변했다기에 가 봤더니 색바랜 벽화만 남은 듯하고 환경이 깔끔하게 바뀌었다는 것은 전혀 못느꼈다"면서 "유럽과 미국의 도시와 건물은 애당초 '미래 100년 설계'로 지었지만 우리나라는 철거민 이주 등 무계획적으로 들어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런 곳에 시멘트 벽에 그림만 그린다고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천구 엄지마을 등과 비슷하게 중랑구의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사업도 주택의 자율적인 정비와 도시재생을 합쳤다. 천현숙 SH도시연구원장은 “주민들이 보존 의지가 있다면 도시 재생을, 협의가 어려운 도심지는 공공재개발을 적용하는 등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도시 쇠퇴 문제를 한정된 공적 재원과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며 “민간 투자를 유치하고 사업 결과가 공공의 이익에 최대한 부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업시행자인 ‘대전역 쪽방촌’ 사업은 공공주택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을 결합한 형태다. 임대주택(250가구), 행복주택(450가구), 분양주택(700가구)을 공급한다.

이런 분위기는 정부 정책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혼합 개발로의 전환이다. 설 전에 나올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도 획일적인 도시재생 기조를 풀어 정비사업 등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SH, LH 사장 때부터 줄곧 도시재생 사업모델로 프랑스 파리의 리브고슈, 미국 뉴욕의 허드슨야드 등의 대형 개발사업의 성공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국내 도시재생사업은 성과보다 문제점만 더 드러낸 것으로 평가를 받아가고 있다. 파리나 뉴욕은 공공 주체가 아닌 민간이 주체가 돼 파격적인 고밀도 개발이 이뤄진 곳들이다. [플랫폼뉴스 강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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