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기? 식당 막걸리-공깃밥 인심 야박해졌다

막걸리 3000원 깨졌고, 공깃밥 1000원도 흔들
작년 장마·태풍 탓 쌀값 38% 급등, 1500원 받아?
식당가, 옆 가게와 손님 보고 눈치 재는 중

강하늘 승인 2021.05.02 00:20 의견 0

"막걸리 값이 무려 33%나 올랐어요. 공깃밥요? 양은 3분의 2만 담아요"

 
요즘 식당에서의 서민 음식값 치솟는 현장을 대변하는 말이다. 서울장수의 막걸리 출고가가 지난달 120원이나 오르면서 중간상인 슈퍼, 편의점의 가격은 220원 이상 올랐고, 식당가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높은 1000원이나 올려 받는다.

 

 
▲ 지난달 출고가를 올린 장수막걸리. 식당에서는 무려 33%가 올랐다.  

 

수도권 막걸리 업체인 서울장수는 지난 4월 1일 15년 만에 장수막걸리의 출고가를 올렸다. 슈퍼와 편의점에서는 대체로 1300원에서 1600원으로 올려받고 있다. 서민의 골목, 시장통 등지에서 막걸리를 즐겨 찾는 손님들은 "서울장수가 이번처럼 한번에 큰 폭으로 올려 놓고 십수년만에 올렸다고 말속임을 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평소 막걸리를 즐긴다는 50대 정 모씨는 지난달 30일 서울 강서구 9호선 향교역 인근 국밥집에서 "정권 말기면 서민 물가가 들썩했던 기억인데, 요즘이 딱 그런 때로 보인다"면서 "정권의 힘이 무너지니 업체들은 대놓고 가격을 올리는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서 저녁을 먹던 한 손님은 "소상공인이 힘들다고 하는데 서민도 이들 만큼 힘들다"고 볼멘소리로 거들었다.


정씨는 말을 이었다. "또 다른 단골집인 사장이 어느 날 7000원짜리 순대국을 8000원에, 서울 장수막걸리를 30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릴 계획이란 사전 귀띔을 하더라, 둘을 한꺼번에 올리면 손님 반응이 썩 좋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는데, 1주일 후 장수막걸리 값만 4000원으로 올렸다"고 전했다.       

 

이 순대국집 사장은 "편의점에서 1000원에 사오던 장수 막걸리가 1300원으로 올랐다”며 “출고가 인상 후 20여일 간 옆집들 눈치를 보다가 지금은 대부분 4000원으로 올려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수도권의 막걸리 업계 1위인 서울장수가 출고가를 올리자 다른 업체도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이동주조1957 이동생막걸리는 1700원에서 2100원으로, 인천탁주의 소성주 생막걸리는 1300원에서 1500원으로, 부산합동양조의 생탁막걸리는 1500원에서 1800원으로 올랐다.  
   

다만 국순당 측은 “시장 상황을 주시하고 있으나 (가격 인상은) 확정된 바는 없다”고 답했다. 지평주조 관계자도 "가격 인상 계획은 없고 유통 채널을 늘려 매출 확대로 상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분위기는 아니다.

 

업계의 가격 인상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불만은 식당에서의 가격이 한번에 33%나 올라도 되느냐는 것.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태국·베트남·인도 등 3개국의 지난 2019년 3월 쌀 1t당 수출단가(FOB 기준)는 평균 368달러였다. 하지만 올 3월은 473달러로 100달러 이상 뛰었다. 2년 새 29%가 오른 셈이다. 

 

해상 운임도 많이 올랐다. 세계 15개 컨테이너 운송 항로 운임을 종합하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30일 전주 대비 120.98포인트 오른 3100.74를 기록했다. 2009년 10월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한국막걸리협회 관계자는 “쿼터제로 수입하는 쌀의 17~18%를 막걸리 업체가 쓴다”고 밝혔다.

국내산 쌀값은 지난해 12월 평균 소매가가 6만원대(20㎏)에 들어섰다. 지난해 5만 3638원보다 12%, 5년간 평균 4만 6898원보다 28%가 높다. 지난달 28일 기준 도매가는 5만 8700원으로 평년 4만 2523원보다 38%나 뛰었다.

 
쌀값 상승 원인은 지난해 54일 간의 역대 최장 장마와 마이삭, 하이선 등 태풍으로 작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밝힌 지난해 쌀 수확량은 350만 7000t으로, 평년보다 12.6% 줄었다. 보릿고개 시절인 1968년(319만 5335t) 이래 최저치다.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이 57.7㎏으로 역대 가장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한국막걸리협회 관계자는 “막걸리 만드는 데 쓸 비축미를 작년보다 40%만 받게 되면서 3배나 비싼 일반미로 주조하고 있다”며 “포장재 가격도 전년 대비 40% 정도 올랐다”고 밝혔다. 
   
쌀 가공식품들의 가격도 이미 올랐다. CJ제일제당은 지난 3월부터 흰쌀 햇반 가격을 1600원에서 1700원으로 올렸다. 동원 F&B는 센쿡을 1350원에서 1500원으로 11%, 오뚜기도 오뚜기밥을 7% 가량 인상했다.

 

그러면 음식점에서의 공깃밥 가격도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오를까?

 

회원수 70여만명의 자영업자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서는 ‘공기밥’이라는 제목의 게시물들이 지속 올라온다. 한 회원은 ‘주변 가게에서 (밥값을) 안 올려 고민만 하네여’란 댓글을 달았다.  
  
문제는 정부가 자영업자에게 줄 특별지원금이 여의치 않자, 묵시적으로 막걸리와 공깃밥 가격 상승에 손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하고 있다. 

 

국세청은 "음식업자 등 소매업자가 마트나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구입해 재판매하는 것은 양도·양수 고시 제11조 위반 사항"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제대로 된 단속 한번 한 적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탈세 방지 등의 목적으로 주류는 가정용과 유흥음식점용, 주세면세용으로 구분된다. 가정용에는 의무적으로 '음식점·주점 판매불가' 표시가 붙어있다. 막걸리에는 주세면세용을 제외하고는 이런 용도 구분 표시를 생략할 수 있지만, 소매업소간 양수·양도는 안 된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국세청의 이 같은 말을 귀담아 듣는 음식점 사장이나 손님은 없다.  
    
한편 음식점 공깃밥의 ‘공기’는 1970년대 중반 서울시에서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 공기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표준식단을 제시하고 시범 식당을 지정한 후 밥을 공기에 담아 먹도록 했다.

서울시가 제시한 스테인리스 밥공기의 크기는 내면 지름 11.5㎝, 높이 7.5㎝다. 밥공기 내면 지름은 10.5㎝, 높이 6㎝로 작아졌고, 그나마 5분의 4 정도 밥을 담도록 했다. 이 규정을 1회 위반하면 1개월 영업 정지, 2회 위반에 허가 취소의 행정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했다. 중앙 정부는 1981년 1월부터 서울시의 스테인리스 밥공기 규격을 전국으로 확대·적용했다. [플랫폼뉴스 강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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