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2일) 경기도 이천시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낫으로 벼를 베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진 자료를 보내왔습니다.
'쌀(米)쌀(米)한 가을 나들이' 행사. 단어도 잘 갖다붙여 이름 지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벼 베기와 벼다발(볏단) 만들기, 탈곡하기, 도정(搗精· 곡식을 찧거나 쓿음)하기 등 낯설지만 특이한 경험을 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농촌 체험입니다. 애들은 메뚜기를 잡으면서 그루터기 논에서 하루를 보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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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가 낑낑대면서 벼 베는 법, 즉 낫질을 배우고 있다. 이천시 제공 |
중년 이상의 나이면 이때쯤 가을 들녘에서 한번씩 경험을 해본 것들이라 소회가 남다를 겁니다.
위 사진에서 어린이가 벼 베는 방식을 배우고 있네요. 시골에선 보통 '낫질'이라 하여, 벼를 벨땐 낫질을 잘 해야 합니다. 밑동 부분에 낫을 대고서 순간 임팩트하게 잘 끌어당기는 게 기술입니다. 감아채는 것이지요.
옆에서 보기 보단 처음 해보면 잘 안됩니다. 낫의 날(얇고 날카로운 부분)이 발이나 발목을 찍을 우려가 크지요. 낫을 잡은 손목에 힘을 준 상태에서 순간 당기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어른들은 애들이나 미숙한 사람에게는 낫을 잘 주지 않습니다. 실제 가끔 사고가 일어납니다.
특히 낫을 왼손으로 드는 왼손잡이는 아주 어설퍼서 다칠 우려는 더 합니다. 우리나라 낫의 날이 거의 오른손잡이용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죠. 낫을 자세히 보면 반달형에 한쪽으로 약간 굽혀 놓았습니다. 사용할 때 날이 잘 들게 하기 위함이죠. 왼손으로는 거의 벨 수가 없습니다. 집안에 왼손잡이가 있으면 대장간에 가서 특별히 맞춰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한 포기씩을 베지만 농사가 업인 분들은 3~4 포기(보통 3포기로 기억)를 능숙하게 한 움큼으로 잡고 싹둑 벱니다. 순간 "쓱싹" 하며 나는 소리가 참 좋습니다. 벼 냄새도 상큼하게 와 닿지요. 낫의 날이 제대로 갈려 있어야 잘 베어지고 소리도 상쾌합니다.
벼논으로 나가기 전 이른 아침나절엔 숫돌에다 벼 베는 연장인 낫을 갑니다. 가는 작업이 꽤 지루하고 힘들어 팔목에 알(통)이 배깁니다. 한 사람당 2개 정도면 오전 내내 쓰고, 점심을 먹고선 오후용으로 또 두개 정도 갈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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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낫을 갈던 자연석 숫돌. |
논일을 하다 보면 이맘때 밭에서 나오는 햇고구마가 새참으로 나옵니다. 어른들에겐 막걸리 한 주전자가 따르고요. 맛이 시쳇말로 '쥑입니다'. 황금 들판에서만 느낄 수 있는, 1년에 딱 한번 맛보는 정취입니다. 종일 일 하고서 잠자리에 들면 아픈 허리에 끙끙 앓다가 골아떨어집니다. 다음 날 일어나면 온몸이 찌부둥하고, 특히 팔목이 많이 아픕니다. 하지만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많이 나아집니다.
다음은 볏단 만들기입니다. 벼를 베고 나서 며칠 간 논에다 늘어 말린 뒤 탈곡하기 좋게 단으로 묶고 옮기는 작업이지요. 가장 하기 싫은 일입니다. 단순히 볏단을 묶고 옮기는 거니 영 재미가 없고 힘만 듭니다. 지난 해 추수하고 남겨둔 짚으로 묶습니다. 지게나 경운기로 운반하기 전에 논 가운데 쌓아두는데 이를 노적(露積)이라고도, 낟가리(볏가리)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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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두 사진에서 보듯 묶는 볏단 크기가 다르다. 아랫것이 손에 잘 쥐어져 탈곡하기가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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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는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이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달빛 내린 밤, 가난한 형제가 논으로 나와 자기 볏가리에 있는 볏단을 상대쪽 볏가리로 옮기다가 마주쳤다는 얘기입니다.
탈곡은 타작의 의미인데, 밑의 사진은 옛날식 디딤 탈곡기입니다. 왼쪽에 서서 볏단을 안고 있는 사람이 말하자면 '조수'입니다. 탈곡을 하는 분의 손에 빨리빨리 넘겨야 능률이 배가 됩니다. 벼를 훑는 손놀림이 빨라서 볏단이 금방 줄어들어 쌓아야 하는 게 큰일이었지요. 볏단을 허리 정도까지 쌓아놓아야 허리를 구부리지 않아도 돼 힘이 덜 듭니다. 어릴 때는 탈곡기 디딤을 해보는 것이 큰 바람이었을 겁니다.
탈곡하는 사람 뒤에도 볏짚단이 바로바로 던져지기 때문에 쌓이지 않게 해야 합니다. 주로 어린 아동들이 맡습니다. 보통 집안의 구석진 곳에다 겨울철 소먹이용과 땔감용으로 볏짚단을 쌓는데 볏짚을 나르면서 굴을 파고 놀기도 합니다. 먼지를 푹 둘러쓰지만 꽤 재미났던 추억놀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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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곡기 양쪽에 볏단을 쥐어주는 보조자가 있어야 능률이 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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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 도리깨로 타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
추수를 끝내고선 마당이나 도로가에 벼(나락)를 며칠 간 말려서 도정을 합니다. 방앗간에 참새떼가 많아지는 시기도 요때입니다. 노란 고무줄로 만든 새총으로 맞춰서 잡기도 했었지요. 촌에서는 놀이였습니다.
낫으로 벼 베는 사진 한장에 동(動)했습니다. 독자 분들도 접했던 추억들을 기억해 보면 좋겠네요. 요즘이야 콤바인 하나로 단번에 벼 베기와 탈곡까지 해버리니 옛날 일은 추억으로만 남았습니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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