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이 폭로된 지 1주일 만인 9일 LH 본사와 투기 의혹이 있는 직원 13명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는 당초 정부 합동조사단의 전수조사가 마무리된 이후 고발이나 수사 의뢰가 있을 경우만 수사할 계획이었으나 여론의 심각성을 인지한 문재인 대통령이 “경찰 국가수사본부가 발 빠르게 수사를 병행하라”고 지시하면서 압수수색에 나섰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지난 2일 LH 임직원 및 배우자 등 10여명이 3기 신도시로 추가 확정된 광명·시흥지구 토지 2만 3000㎡(약 7000여 평)를 투기 목적으로 매입했다고 폭로한 이후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경남 진주시 소재 LH 본사와 경기지역 과천의왕사업본부, 인천지역 광명시흥사업본부 등 3곳, 피의자 13명의 주거지 등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또 피의자들은 출국금지된 상태다.
이번 압수수색에는 포렌식 요원 등 수사관 67명이 투입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지휘에 따라 증거자료 확보 등을 진행하고 있다. 국수본 관계자는 “영장 집행을 통해 증거자료를 확보할 것”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경찰의 강제수사 착수가 늦었고,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 수사에서 노하우를 가진 검찰이 배제돼 정부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법조계는 국민적 공분(公憤)이 일고 있는 중대한 사안을 사태 초기에 자체 조사를 우선시한 정부의 대응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신도시 지정 전에 LH 직원들이 수십억 원을 대출받아 집중적으로 토지를 매입한 것은 개발 정보를 사전에 접한 소수의 공직자들이 정보를 은밀하게 공유하면서 조직적으로 땅 투기를 했을 개연성이 커 신속한 수사를 진행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적당히 덮고 넘어가겠다는 '셀프 조사' 오판에 여론이 악화되자 부랴부랴 조사와 수사에 나서는 모양새다.
국무조정실과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경기도, 인천시가 참여하는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LH 임직원과 관계부처 공무원, 가족 등에 대한 3기 신도시 토지거래 내역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 방침까지 밝혔다. 정부는 ‘무관용 원칙’을 강조하면서 부당이득을 3~5배까지 환수하겠다며 엄정 대응을 선언했지만 ‘셀프 조사’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LH 관할 부처인 국토교통부를 합조단에 포함시킨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인다. 신도시 개발 정책을 입안한 국토부로 투기 의혹이 옮겨붙어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수도권 3기 신도시 대상지를 포함해 전국의 신도시 땅투기 의혹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선 강한 수사권이 있는 수사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이번 사건에 손을 댈 수 없다. 과거 같으면 의혹이 불거지자마자 부동산 투기 분야의 수사 능력과 경험이 축적된 검찰을 중심으로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찰의 고위간부 출신의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를 했다면 우선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의혹 폭로 직후 곧바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핵심 관련자들의 휴대전화와 PC, 이메일, 각종 개발자료 등 증거부터 광범위하게 확보했을 것”이라며 “수사 초기 압수수색을 가능한 한 빨리 하는 것은 수사를 해본 사람들에게는 기본에 해당하는 수사의 ABC”라고 말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번 사안에 대해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수사를 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규정했다. 윤 전 총장은 이번 사건을 “공적 정보를 도둑질해서 부동산 투기하는 것은 망국의 범죄”라며 “자체 조사로 시간을 끌고 증거 인멸하게 할 것이 아니라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수사를 해야 한다”라고 밝혔었다. 미온적인 수사를 지적한 것이다.
경찰이 압색에 나선 하루 전인 8일에는 대검 수사관이 “이번 수사는 망했다”며 정부의 신도시 토지거래 의혹 전수조사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 수사관은 직장인 익명 앱인 블라인드에 올린 글에서 “검찰이, 아니 한동훈 검사장이 수사를 했다면 오늘쯤 국토부, LH, 광명시흥 부동산업계, 묘목공급업체, 지분 쪼개기 컨설팅업체를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을 것”이라며 “논란이 나온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범죄자인 국토부와 합동수사단을 만드냐”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검찰이 배제된채 국가수사본부 중심으로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를 꾸림으로써 경찰의 독자 수사 능력을 입증할 시험대에 올랐다. ‘드루킹 수사’ 등 권력의 눈치를 보며 시간을 끈 그동안 경찰이 보여준 수사 행태를 답습한다면 국가수사본부의 존폐 논란이 커질 것이란 게 중론이다. [플랫폼뉴스 강동훈 기자]
저작권자 ⓒ 플랫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