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특집] "1번 찍힌 용지가 나와" "내 투표지 주머니에 넣더라"···확진자 투표 항의 빗발

기표 투표지, 밀봉 않고 보조원 받아서 운반
쇼핑백, 골판지 상자, 플라스틱 바구니로 운반한 곳도
온라인선 ‘투표혼란상 인증샷’ 쏟아져
선관위 “확진자 투표 인원 많아 혼란 있었다”

강하늘기자 승인 2022.03.05 23:27 | 최종 수정 2022.03.06 21:16 의견 0

“‘이재명’으로 미리 찍어놓은 이 투표용지는 도대체 뭐냐”(40대 여성 유권자)

”저도 잘 모르겠어요.” (30대 남성 투표 보조원)

5일 오후 5시30분쯤 서울 은평구 신사1동주민센터 코로나 확진자·격리자 투표소에서 고성이 오갔다. 이 여성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용지를 넣을 봉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기표된 용지 1장이 이미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유권자 3명이 이 후보에게 투표된 용지가 든 봉투를 받았다.

확진자의 경우 야외 임시기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한 뒤, 빈 봉투에 담아 보조원에게 전달하면 보조원이 혼자 이를 들고 실내로 들어가 투표함에 넣는다.

은평구 선관위 관계자는 “확진자들이 낸 기표용지를 다시 (비확진자) 투표소에 올라가 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에 투입하는 절차가 있는데 정신이 없어서 기표가 된 용지가 들어있던 봉투와 투표용지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1동 투표소 확진자 임시기표소에서 40대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용지(맨밑장)를 담을 봉투(가운데) 속에서 '1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기표된 투표용지(맨윗장)를 발견했다. 봉투를 들고온 보조원은 "나는 모른다"고 했다. 독자제공

이날 진행된 제 20대 대통령 선거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가 전국 곳곳의 현장에서 이 같은 대혼란을 빚었다. 봉투에 유권자 이름을 적어서 걷어간 투표소도 있었다. 인천 등에서는 투표가 중단되기도 했다. 기표하지 않은 투표용지가 야외 자전거 위에 방치돼 바람에 날아다니는 모습도 찍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제20대 대선 투표관리 특별대책’에 따르면 확진·격리 유권자들은 투표 현장에서 선거사무보조원에게 신분을 확인받은 뒤 투표용지 1장과 임시기표소 봉투 1장을 받는다.

이후 전용 임시 기표소에 들어가 기표한 뒤, 용지를 미리 받은 빈 봉투에 넣어 보조원에게 전달한다. 보조원은 참관인 입회 하에 봉투에서 투표지가 공개되지 않도록 꺼내 투표함에 넣어야한다. 투표를 마친 기표 용지를 넣는 투표함이 일반 기표소에만 설치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은 이런 매뉴얼과는 전혀 달랐다.

은평구 신사1동을 비롯한 여러 기표소에서 보조원이 참관인 없이 혼자 돌아다니며 투표용지를 건넸고, 기표된 표를 들고 다녔다. 다른 지역에서는 여러 명의 봉투를 한꺼번에 수거하거나, 종이봉투에 담아 야외에 방치했다.

봉투도 현장에선 ‘쇼핑백’, ‘구멍뚫은 골판지 상자’ ‘플라스틱 바구니‘ 등으로 멋대로 운용됐다.

전주 덕진구 농촌진흥청 등 일부 투표소에선 봉투에 유권자 이름을 적어서 표를 담았다. 곳곳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함을 가지고 오면 직접 넣겠다” “봉투를 봉할 수 있는 풀이나 스테이플러를 가져다 달라”고 소리쳤다. 보조원들은 “우리는 선관위가 하라는 대로 절차에 따라 한다”며 거부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2동 사전투표소를 찾은 60대 남성 격리자는 “기표 용지가 곧바로 투표함에 들어가지 않고 별도로 보관됐다가 옮겨지는 과정에서 바뀔 수도 있지 않은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원 춘천시 온의동 사전투표소를 찾은 한 확진자 유권자는 “내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투표사무원이 자신의 주머니에 넣으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내 투표용지가 비밀이 보장된 채 투표함으로 제대로 투입됐는지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가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이런 사태를 고발하는 ‘인증샷’이 넘쳐나고 있다.

한 네티즌은 투표함이 있는 공간은 CCTV조차 없었다며 “내 표가 어떻게 될지 알고 맡기느냐”고 주장했다.

선거법은 ‘선거인은 기표한 후 그 자리에서 기표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접어 투표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유권자들 증언대로라면 투표소 여러 곳에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전북 전주 덕진구 한 투표장에서 선관위 관계자가 “사람이 몰려 혼란이 있으니 구별하기 위해 투표용지 뒤에 이름을 쓰라”고 한 일도 있었다.

이를 본 김모 씨는 “사람들이 항의하자 관계자는 그제야 ‘혼란스러워 선거법 위반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며 “당시 현장에 남아있던 사람들에 한해 무효표 처리한 뒤 재투표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선관위 내부 전산 시스템에도 각지에서 올라온 불미 사태 보고가 줄을 이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 관계자는 “유권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바구니나 상자에 담아 정식 투표함까지 옮기도록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중요한 것은 그 이동 과정을 참관인이 지켜보도록 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참관인 없이 보조원 1명이 표를 운반하는 모습이 발견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확진자 투표 인원이 많아 일부에서 혼란스러움이 있었던 것 같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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