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동행 24] 정운찬과 하루키

신아연 칼럼니스트 | shinayoun@daum.net | 입력 2019-05-30 0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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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뉴스 신아연 칼럼니스트]

               인문예술문화치유공간 블루더스트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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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예찬』, 야구에 관심이 없는 내게는 부담스러운 책이었다. 하지만 저자로부터 직접 받았기에 집어던질 수는 없는 노릇. 숙제를 해 치우듯 읽고 나니, 이번에는 이 책을 몰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느낌이다.

전 서울대 총장, 국무총리, 현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자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인 저자가 일생을 통해 야구와 맺은 인연은 마치 천상의 배필을 만난 듯 오묘, 미묘, 현묘하다. 인생의 구비마다, 고비마다 우연처럼, 기연처럼 언제나 그의 곁에는 야구가 있었으니.

 
컬럼비아 대학 취업을 위한 면접 시간. 담당교수와 단둘이 마주 앉았다. “프린스턴에서 박사과정까지 했으니 경제학이야 많이 알테고 미국적인 것을 좀 물어보고 싶어요.” 미국 생활이라곤 채 5년도 안 된 내게 미국적인 것을 묻겠다니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가 내게 첫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야구 좀 아세요?” 마치 팽팽하게 당겨졌던 활시위가 풀리기라도 한 듯 긴장이 가셨다. 내게 야구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 있는 분야가 아니던가. 면접은 성공적이었고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동경해 왔던 교수의 꿈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것을 성취하는 데 기여한 것이, 외로움과 답답함에서 벗어나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몰두했던 야구라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도깨비장난 같고, 필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뚱맞지 않은가. 내 이름을 짓기 위해 아버지가 동네 훈장을 찾아갔을 때 내 사주를 보고는 대뜸 “운이 꽉 찬 놈”이라고 했다더니 –정운찬 『야구예찬』


야구와 운명적 조우를 한 또 한 사람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29살의 평범한 카페 주인이자 야쿠르트 팬이었던 그가 어느 날 야구장을 찾았다. 초록 구장과 푸른 하늘에 하얀 공이 또렷이 떠오르고 공이 방망이에 맞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뭔가가 하늘하늘 천천히 내려왔고 그것을 두 손으로 멋지게 받아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런 맥락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그것은 일종의 계시이자,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뀌는 느낌이었습니다. 시합이 끝나자 나는 전차를 타고 신주쿠의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원고지와 만년필을 샀습니다. 가슴이 두근두근 설렜습니다.”-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정운찬과 하루키처럼 눈부신 성공을 이룬, '운이 꽉 찬' 사람들만의 이야기일까. 그 누가 단언할 수 있으랴. 인생이란 야구 경기처럼 엎치락뒤치락,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끝날 때까지는 끝나는 게 아닌 게임이니 오늘도 다만 어제와 같은 마음으로 ‘인생구장’에 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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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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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신아연 작가는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21년간을 호주에서 지내다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인문예술문화공간 블루더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자생한방병원에 '에세이 동의보감'과 '영혼의 혼밥'을 연재하며 소설가, 칼럼니스트, 강연자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 심리치유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 인문 에세이 『내 안에 개있다』를 비롯,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공저 『다섯 손가락』 『마르지 않는 붓』 『자식으로 산다는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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