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점 '경상국립대' 1일 출범…흥미로운 작명 과정

정기홍 기자 | jkhong4@naver.com | 입력 2021-03-01 1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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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의 거점 국립대인 경상대학교와 같은 진주에 있는 국립대인 경남과학기술대학교가 통합돼 '경상국립대학교(GNU)'로 1일 출범했다.

 

지난 2017년 교육부의 국립대 혁신지원사업(PoINT) 유형Ⅱ에 선정된지 3년여 만이다. 또한 입학정원 감축 없이 이뤄진 동일 지역(진주)의 자율통합 첫 사례다.

 

▲ 경상국립대의 경남도내 캠퍼스 및 부속 시설.

▲ 경상국립대 진주 가좌동 본교 캠퍼스 전경.   

 

이로써 재학생수 등 대학 경쟁력은 서울대를 제외한 9개 지역 거점 국립대 중 3위에 진입하게 됐다. 물리적 확장에 더불어 재정 규모가 크게 늘어나 경남을 대표하는 대학, 국가 거점 국립대학으로 성장할 토대가 마련됐다. 신입생(4313명)은 내년부터 통합 체제로 선발한다.

 

경상국립대는 본교인 진주 가좌캠퍼스, 의과·간호대와 부속병원이 있는 진주 칠암캠퍼스, 수산대학이 있는 경남 통영캠퍼스(1995년 통영수산전문대학 흡수), 창원국가공단 인근의 경남 창원산학캠퍼스(2017년 기계융합공학과 신설)를 두고 있다. 단과대학 20개와 일반대학원 1개, 특수대학원 11개, 학부 19개, 학과 88개로 구성돼 있다. 직제도 1총장 3부총장에 4처 1국 4본부로 운영된다.

 

경남지역 거점 병원인 경상대병원은 진주시 칠암동 경상대 옛 캠퍼스에서 898개 병상을 운용하고 있다. 의과대학, 간호대학과 함께 있다. 경남도청이 있는 창원에는 경상대병원 분원도 두고 있다. 성산구 창원경상대병원은 2016년 6월 개원, 지상 13층에 701개 병상의 의료동과 장례식장을 갖추고 있다. 

 

◇ 깊은 역사만큼 통합 진통 겪어

두 대학의 통합 과정은 깊은 역사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양교는 모두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어 각기 고유한 정체성과 학풍이 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했고 목표 의식에서도 이질적인 부분도 있었다. 재학생, 교수 등 교직원, 동문 간의 이해 관계도 복잡했다. 이로 인해 통합 과정에서 정부의 통합 심의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대 경쟁력 약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통합이 낫다는 의견이 우세해지면서 통합쪽으로 의견이 급속도로 기울었다. 몇년 전부터 나타난 지방대학의 신입생 미달 사태가 통합을 앞당기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 같은 오랜 진통을 거치면서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두 대학의 통합 절차를 완료하는 ‘국립학교 설치령 개정안’이 의결됐다. 두 대학은 지난해 5월 교육부에 통합 신청을 했고, 교육부는 그해 11월 통폐합을 승인했었다.

 

◇ 역사 깊은 경남의 명문

 

두 대학의 통합은 경남지역에서는 상당한 얘깃거리를 남기고 있다.  

 

진주는 근대식 교육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경남의 교육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1970년대 경남 중부지역에 마산수출자유지역(현 마산자유무역지역), 창원기계공업공단(현 창원국가산업단지)이 들어서면서 경남의 인재가 다소 분산됐지만 명성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금도 "애들 교육만은 진주에서"란 말이 오르내릴 정도로 경남의 인재들이 진주로 몰리고 있다. 

 

이는 진주가 예부터 행정과 교육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고려 성종때 전국 12곳에 설치한 진주목(牧)으로 지정됐고, 조선 고종 때는 전국을 13개 권역으로 바꾸면서 관찰사(지금의 도청 소재지)가 상주한 경상 우도의 행정 중심지였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일본이 한반도의 물자 수탈을 편하게 하기 위해 경남도청을 부산으로 강제 이전시킨 이후에도 줄곧 경남의 교육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한 때 전국적 명문이었던 진주농고과 진주고는 경남 인재를 탄생시키는 쌍벽이었다. 농업이 중시됐던 때엔 진주농고가, 그 이후엔 진주고가 수십년간 인재를 길러내는 명문의 길을 이었다.

   

특히 고 구자경 LG그룹 회장, 고 구태회(국회의원 6선) 등 LG그룹의 창업 1세대 다수가 진주고를 졸업했다.

 

진주시(옛 진양군) 지수면에 있는 지수초등학교는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효성 조홍제 등 굴지의 기업 창업자가 동문수학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통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고교 평균화 이후인 지금도 진주 진성면에 있는 경남과학고, 진주 동명고 및 대아고, 신예 명신고 등이 진주농고와 진주고의 옛 명성을 잇고 있다.  

 

경남과기대는 무려 111년의 역사를 가졌다. 지난 1910년 4월 30일 공립 진주실업학교로 개교했다. 개교 4개월 후인 그해 8월 한일합방으로 일제강점기가 시작됐으니 눈도 제대로 못 뜬 젖먹이일 때 나라를 빼앗긴 역설적인 학교 역사를 갖고 있다.

 

개교 다음해 진주공립농업학교로 개칭한 이래 '진주농고'란 이름으로 전국적인 이름을 날렸다. 농업이 중시됐던 시대여서 경상지역의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정·관·경제계는 물론 학계와 문화계에서 숱한 거물급 인재를 길러냈다. 일제강점기엔 경상지역의 진주농고, 경인지역 수원농고, 전라지역의 이리농고를 전국 3대 명문 농고로 불렀고, 이 중에 진주농고가 가장 이름 높았다고 한다.  

 

이후 2년제 전문대를 거쳐 1993년에 4년제인 산업대학으로 승격해 국립 진주산업대로 교명을 바꿨고 2011년 산업대에서 일반대로 전환해 국립 경남과학기술대학교(GNTECH)로 바꿔 지금에 이르렀다.

 

▲ 진주시 칠암동 전 경남과학기술대 전경. 중간에 우뚝 솟은 건물이 100주년 기념관이다.

 

▲ 전 경남과학기술대 정문에 걸어놓은 경상국립대 출범 축하 플래카드.

 

반면 국립경상대의 역사는 경남과기대보다 많이 짧다. 해방 해인 1948년 10월 경남도립 초급 진주농과대학으로 개교했다.

 

흥미로운 것은 통합된 경남과기대의 전신인 진주공립농업학교가 35년의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한일합방 해에 설립됐고, 진주농과대학(경상대 전신)은 35년의 일제강점기가 끝난, 해방되던 해에 설립됐다. 나라를 빼앗기고 되찾은 해에 개교해 인연이 묘하다.  

 

한참 후인 1963년 부산시가 직할시로 되면서 경남도에서 분리돼 경남의 국립대였던 부산대도 경남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에 지역민들이 진주농과대의 국립대 승격을 줄기차게 요구했고 1968년 3월 1일 진주농과대는  도립대학에서 국립대학으로 바뀌었다.

 

진주농과대는 1972년 7월 경상대로 개칭했고, 이 명칭은 종합대학이 된 이후 지난 달까지 49년을 사용했다. 그동안 교명처럼 농업과 임업 분야에서 인재를 많이 길러냈다. 서울대 농대 다음으로 거론되는 농과대로 지금까지 전통을 잇고 있다.

 

이번 두 대학의 통합은 한동안 '진주농전'과 '진주농대'로 불리며 쌓아왔던 전국적인 명성을 한 곳으로 통합한 것으로도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다.      

 

◇ 궁금한 경상대 vs 경남대 교명


경남의 거점 국립대학은 경상국립대다. 하지만 전국의 광역시도 거점 대학의 이름은 지역의 시도의 명칭을 쓰는데 유일하게 경남도에선 '경남'이 아닌 '경상'란 이름을 쓴다. 창원(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대는 사립이다.

 

두 대학의 '대학 명칭' 역사에는 박정희 정권 시절 '피스톨 박'으로 불렸던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이 등장한다. 박씨는 당시 정권의 2인자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둘렀다.      

   

박씨는 경남대를 운영했던 학교법인 삼양학원과 깊게 연관돼 있다. 삼양학원은 마산대(옛 해인대)를 인수한 이후 1970년 2월 당시 경호실장이던 박씨를 이사장으로 앉히고, 뒤이어 5월 20일 삼양학원 이름을 경남학원으로 바꾸었다. 이어 문교부의 승인을 거쳐 1971년 12월 교명을 경남대로 변경했다. 이 모든 게 박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서 또 흥미로운 것은 마산대·경남대 전신인 해인대가 한국전쟁 때 합천 해인사 경내에서 5개월 임시로 운영됐고, 진주시 강남동으로 옮겨 4년 가까이 있다가 마산으로 옮겨갔다는 사실이다. 

  

박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12.12 사태'로 사망한 직후인 1980년 4월 권력형 부정 축재자로 지목돼 경남대 이사장직을 그의 동생인 재규씨에게 물려주었고, 재규씨는 오랫동안 경남대 총장직을 수행해왔었다.  

  

진주농과대학의 경남대로의 명칭 변경 요구는 '경남대 명칭 확정' 이전부터 있었다. 

 

국립대가 된 1968~70년 3번에 걸쳐 문교부(현 교육부)에 경남대학으로의 교명 변경을 신청했지만 인가되지 않았다. 이 과정을 지켜본 경남대 측에서 교명을 가로채갔다는 것이 세간의 설득력 있는 얘기다. 지방 국립대는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전북대 충남대 충북대 강원대 제주대 등 모두가 광역 지역명을 학교 이름에 붙여쓴다.  

 

마침내 문교부는 1972년 7월 진주농대의 교명을 경상대로의 변경 인가를 내린다. 당시엔 전국에 종합대학이 몇 곳 없었던 때여서 종합대학이 아닌 단과대학이었다. 

  
경상대 측의 '경남대 교명' 애착은 이후에도 지속 이어졌다. 1980년 종합대로 승격한 이후인 2004년과 2005년 교육부와 국회를 통해 ‘경남국립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2009년 6월에도 교육과학기술부(교육부)에 교명 변경 신청서를 제출하고, 이어 특허심판원에 경남대를 상대로 교명 무효 심판을 제기했다.

 

하지만 2010년 10월 5일 특허심판원은 ‘경남국립대학교’라는 교명이 이전에 등록된 '경남대학교'와 유사해 혼동될 우려가 있다며 교명 변경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2012년 9월 "경남국립대학교는 경남대의 교명 권리 범위에 속하고, 원심을 뒤집을 만한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며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렸다. 끝내 교명 변경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경상대는 경상국립대학으로 교명을 바꾸면서 경남과기대와 통합해 이번에 경남의 거대 거점 국립대로 출범하게 됐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 국립 경상대학교 연역

·1948년 10월 20일 진주농과대학으로 개교(학생 정원 80명)
·1953년 2월 2일 4년제 대학으로 승격
·1968년 3월 1일 도립대학에서 국립대학으로 설립 주체 변경
·1972년 7월 11일 경상대학으로 교명 변경
·1973년 농학과(현 농업식물과학과 농업·원예 전공), 농공학과(현 애그로시스템공학부 생물산업기계공학 전공, 애그로시스템공학부 지역환경기반공학 전공)이 특성화 학과로 선정
·1975년 3월 1일 대학원 설치
·1980년 3월 1일 종합대학 경상대학교로 승격, 10월 2일 의예과 신설 인가
·1984년 3월 5일 사범대학 부설 중·고등학교 개교
·1995년 경상대학교와 통영수산대학이 통합하여 통영수산대학은 통영캠퍼스 수산대학으로 개편
·1996년 농업대학(현 농업생명과학대학)이 농림·수산계 특성화 대학으로 선정
·2006년 3월 1일 의학전문대학원 설립
·2011년 3월 1일 약학대학 신설
·2017년 3월 1일 창원캠퍼스 본부대학 기계융합공학과 신설

 

◇ 국립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연역

·1910년 4월 30일 공립: 진주실업학교로 개교
·1911년 11월 1일: 진주공립농업학교로 개칭
·1946년 3월 1일: 진주공립농림학교로 개칭
·1946년 8월 31일: 진주농림중학교로 개칭
·1948년 10월 20일: 초급 진주농과대학으로 개칭
·1951년 8월 31일: 진주농림고등학교로 개칭(진주남중학교 분리 개교)
·1953년: 국립 진주농과대학으로 개칭
·1965년: 국립 진주농림고등전문학교로 개칭
·1973년: 국립 진주농림전문학교로 개칭
·1979년: 국립 진주농림전문대학으로 개칭
·1993년: 4년제 산업대학으로 승격, '국립 진주산업대학교'로 교명 변경
·2011년: 산업대학에서 일반대학으로 전환, '국립 경남과학기술대학교(GNTECH)'로 교명 변경
·2018년: 교육부 대학기본역량 진단평가 결과 역량강화대학 선정 및 조건부 일반재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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