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설 연휴 직전 '기고문'으로 보내왔는데 '칼럼'으로 싣습니다. 시점은 약간 각색했습니다. '군불' 하나로 이야깃거리 만들기가 쉽지는 않은데 마지막 농촌 정책까지 연결시켜 잘 마무리했네요. 글솜씨가 좋습니다. 설 연휴 '고향 내음'에 쏙 빠져봄직한 글입니다.
제목/ 농촌은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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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인 이천시 농업진흥과 인력육성팀장. |
설 즈음에 언제나 고향에 내려간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에는 내가 도회지에 나간 큰형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큰형이 나를 기다린다.
시골집에 갈 때면 토방 아궁이에 군불을 지핀다. 먼저 솔가리를 불쏘시개 삼아 불티를 만든 후에 잔가지를 태워 불덩이를 만든다. 도끼로 뻐갠 장작개비를 얼기설기 걸쳐놓으면 이글거리는 불꽃은 개가 뼈다귀를 바르듯 장작개비를 샅샅이 핥는다. 처음부터 우격다짐으로 아궁이에 땔거리를 잔뜩 채우면 연기만 피우다가 꺼져버린다. 입에 먹거리를 왕창 넣으면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다시 내뱉는 꼴이다.
장작불은 타다닥 불똥을 튀기며 벌건 혀를 날름거린다. 가마솥 안의 물은 하얀 김을 뿜으며 펄펄 끓고, 토방 아랫목의 구들장은 은근슬쩍 달궈진다. 부지깽이를 뒤적거리며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은 참 재밌다. 불기운이 내뿜는 따스함을 받으며 불꽃심을 보노라면 동굴에 빨려드는 듯한 착각이 든다. 불보라를 일으키던 땔감이 가물거리며 사위면 마음도 사그라지며 서운하다.
굴뚝을 빠져나온 연기는 밤하늘에 너울너울 번진다. 나는 봉수군이 되어 저녁이 찾아옴을 온 누리에 알린다. 내 신호에 따라 앞마을에도 연기가 오른다. 비록 대부분의 굴뚝은 거미줄 친 듯 덩그렁하지만 아직도 한두 개의 굴뚝에선 연기가 내비친다.
올해도 군불을 지피고 나서 뒷동산에 올랐다. 하늘에서 내려온 땅거미는 산을 미끄러져 저수지에 빠져든다. 햇빛 거둔 하늘 마당에 검은 보자기가 자리를 폈다. 그 보자기에 수정 별 하나둘 박히더니 더 이상 셀 수 없이 박히자 밤하늘이 술렁인다. 함초롬한 아기별은 뭐가 그리 좋은지 소곤소곤 속삭인다. 북두칠성은 산마루에 걸려있고 오리온은 저수지 위에 떠 있다.
토방의 문을 여니 흙벽 틈새로 연기가 새나와 자욱하다. 어머니만큼이나 오래 된 흙집의 방바닥은 어머니의 손등처럼 금이 갔다. 알싸한 흙내와 구수한 나무 탄내가 콧속을 간지럽힌다. 토방에 누웠으나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데 소소한 바람이 댓잎을 비벼댄다. 사르락 사르락 소리는 한 많은 여인네의 흐느낌 같기도 하고 갓난아이의 울음소리 같기도 해서 왠지 으스스하다.
예전엔 마을마다 으레 한두 집 있는 흉가에서 귀신들이 왁자지껄 난리였다. 걸신, 계란 썩은 귀신, 장대귀신, 턱 빠진 귀신, 절름발이 귀신, 목 없는 귀신, 빗자루귀신, 깨진 바가지 귀신, 대머리귀신, 우물귀신, 도깨비 등등.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러운 이네들은 꼬맹이들에게 무서움과 호기심과 재미를 주었었다.
어머니가 된장을 훌훌 풀어 보릿국을 끓여주셨다. 보릿국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억센 보리 잎이 거북하겠지만, 어릴 적 보리밥과 보릿국으로 헛헛증을 달랜 나는 옛 친구를 만난 양 반가웠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보리를 구경하기 흔치 않다. 보리를 가난의 대명사로 여기는 탓인지 사람들은 보리를 별로 찾지 않는다.
보리는 섬유소가 많아 장 운동을 촉진하고, 비타민 K, 비타민 B군이 풍부하여 각기병과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 춘궁기의 높기만 한 보릿고개에 보리는 주린 배를 그나마 채워주었다. 토실토실 여문 보리 이삭을 짚불에 꼬실러 먹었는데 그 맛이 그립다. 보리 대롱을 한 치 가량 잘라 한쪽 끄트머리를 납작하게 눌러 보리피리를 불었는데 그 소리가 그립다.
시골에서는 감성을 익히고 도시에서는 이성을 익힌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만 자란 촌뜨기는 가엾다. 그러나 더 딱한 사람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란 서울내기일 것이다. 살다 보면 도시살이 기회는 널려있지만 시골살이 기회는 점점 사라진다. 기회가 되거든,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틈틈이 시골을 찾길 바란다. 시골이 시골다움을 더 잃어버리기 전에 말이다.
추억이란 경험을 바탕으로 생기는데, 조카는 내가 누린 추억거리의 많은 부분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미 많이 사라져 버렸다. 조카의 조카는 지금 조카가 경험하는 환경조차도 누릴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래서 보릿국 한 그릇이 더 귀하게 여겨진다.
조카는 모른다. 쇠똥구리의 공굴리기를, 토끼몰이와 꿩사냥을, 반딧불이 놀이를, 시렁에 보리밥 걸어놓고 며칠간 덜어 먹던 것을, 참게 반찬 하나면 고봉밥 한 그릇을 비우던 것을, 우렁이각시 얘기하며 우렁이를 삶아 먹던 것을, 개구리 뒷다리 구워먹는 것을.
어쩌면 조카의 조카는 저수지에서 송사리, 피라미, 붕어, 가물치는 구경도 못하고 황소개구리, 베스, 블루길만 볼지도 모른다. 들녘에서 보리, 밀, 목화는 구경도 못하고 외래식물인 돼지풀, 왕달맞이꽃, 미국자리공, 미국질경이만 보고 자랄지도 모른다.
우리는 농촌을 발가락처럼 하찮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가장 하찮은 새끼발가락. 그러나 신체 중의 가장 하찮은 부분인 새끼발가락이 다치면 몸 전체가 기우뚱거리게 된다. 절름발이가 되는 것이다.
농촌에 와서 어려운 사정을 동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의 그 신비와 경이를 직접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산에 가서 정금과 으름과 청미래를 먹어보고, 들에서 까마중과 산딸기와 꿀풀을 맛보고, 밭에서 목화꽃과 단수수를 씹어 먹고, 뒤란에서 감꽃을 골풀 줄기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보란 말이다. 아침마다 아니 뜨고는 못 배기는 해처럼, 시골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그러나 이제 지방이 사라지고 있다. 시골의 어르신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듯이 농촌도 그렇게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사람 떠난 궁전터에 망초대만 무성하여 황량하듯, 사람 없는 시골은 온기 없는 찬밥처럼 외면당하고 있다. 농촌이 무너지면 도시도 무너진다. 한 나라를 나무로 견주자면 농촌은 뿌리고 도시는 가지다. 뿌리가 썩어도 눈에 띄지 않으니 신경 쓰지 않지만, 뿌리가 썩으면 결국은 가지도 마른다.
농민들은 수입농산물과 중간상인의 억지에 허탈해하며 일할 의욕을 잃어버렸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5%도 안 된다. 공업을 통해 돈을 많이 벌어서 싼값에 식량을 사 먹으면 경제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농업은 자연기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세계적으로 기상재해가 발생한다면 식량자급률이 낮은 나라는 끔찍한 상태를 맞을 것이다. 이러한 만약의 상황이 단순한 기우(杞憂)가 아닌 현실적으로 일어날 조짐이 농후한 데 그 심각성이 있다. 기후 변화를 넘어 기후 재앙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공산품이 없으면 생활(生活)이 불편(不便)하지만, 농산물이 없으면 생존(生存)이 불가(不可)하다.
찾지 않으면 잊히고, 떠나면 사라진다. 지금 지방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지방의 붕괴는 농촌의 붕괴를 말한다. 명절이 되어도 이제 시골을 찾는 사람은 점점 줄고, 그나마 시골 살던 사람들도 점점 도시로 이동한다. 그렇게 시골은 잊히고 있다. 설인데도 마을이 이렇게도 조용하다니, '침묵의 봄날'이 온듯하여 흠칫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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