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자관의 행복론
누구의 인생에나 견디기 힘든 일은 있다. 몸이 힘든 것은 인생의 힘든 일 가운데 첫 번째는 아니다. 밤잠을 잘 못자면서 일을 해도 일 자체를 피하거나, 일이 힘들어 울어본 적은 없다. 그러니까 노동이 힘들어서 울어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힘든 일을 할 땐 노래를 부르며 힘든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인생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그 괴로움을 눈물로 때운 적은 없다. 어떤 괴로움도 눈물에 의존해서 모면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내게 닥친 현실, 입이 벌어져 말이 안 나올 만큼 힘든 노동이라도 피하려고 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힘든 노동이라도, 할 일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행복했다. 아니 그때는 행복이 뭔지 불행이 뭔지, 아예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밤낮없는 일이 힘들거나, 가진 것이 없어서 울어 보진 않았다. 다시 말하면 가난이 나를 울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멸시받거나 무시당하면 사정 없이 눈물이 흐르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멸시 받거나 무시 당하면 울음을 참지 못했다. 힘든 일은 얼마든지 참고 견디고 버텨 나갔다.
그 때 서울 미아리 산꼭대기에서 이른 새벽 5시쯤, 거의 매일 자전거에 몸을 싣고 한강을 건너 간다. 노량진을 지나 지금 타임스퀘어 있는 자리에 도착하면 9시가 된다. 5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돌아올 때는 그냥 오지 않는다. 자전거에 짐을 잔뜩 시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 한다.
나는 별로 힘들다 생각지 않고 오가는 길이었는데, 언덕길 같은 데서는 밀어주는 사람도 많았다. 힘들게 언덕을 오르는 나를 뒤에서 밀어주며 말을 거는 어른도 있었다.
“야 힘이 장사로구나! 이 무거운 걸 싣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거야?”라며 위로인지 격려인지 한마디씩 주고 가는 어른들의 말씀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짐이 무거워 자전거를 타고 오지 않고 끌고갔다가 다른 짐을 실어서 끌고와야 하는 노동. 힘들다 생각하지 않고 왕복 10시간의 중노동을 몇 년이나 했던가? 그런 일이라도 쉬지 않고 있기만 하다면 그걸로 만족해야 했다
언덕 위에 올라가면 냉차 장수가 있었다. 보리 끓인 물에 사카린 넣은 냉차. 먼 거리를, 오랜 시간을, 무거운 짐을, 힘겹게 끌고 오느라 땀 많이 흘리고 갈증 심할 때 보리냉차 한 잔 마시는 그 맛, 그 기분!! 그 때의 그 시원한 맛이라니...그 기분은, 지금도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다.
나는 일이 편안하지가 않았다. 힘들고 고생스러웠다. 혼자서 시작했으니 편안함 같은 걸 찾을 겨를도 없었다. 내가 우리 직원들 일을 편하게 해주려 노력하는 것도 옛날 힘들게 일 한 생각이 나서 그렇다.
못된 시어머니 모시고 살던 며느리가 못된 시어머니 된다지만, 나는 시어머니 노릇은 물론 못된 시어머니라는 개념 자체, 체험 자체가 없다. 그래서 우리 사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일 하기 좋은 근무 여건을 제공해 주나를 많이 생각한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여건을, 부족하지만 제공하려고 애쓴다.
기업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원이 주인이다. 사원이 회사를 결정한다. 잘 되고 못 되고는 사원 할 탓이다. 사장은 외부적으로 기업을 대표하고 사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일하기 편하고, 일하기 좋은 환경. 당연히 능률적으로 일하는 환경이라야 한다. 사장, 또는 대표이사는 사원들이 한 일에 얹혀가면 된다
그렇게 사원들에게 편히 일 할 여건을 마련해주고, 얹혀가면서 행복하다면, 그는 괜찮은 CEO 소리를 들을만 하다. 그러니까 회사의 주인은, 어떤 논리를 가지고 따져도 그 회사 직원들이어야 한다. 그들이 주인이고, 주인답게 모셔햐 하는 존재다.
나는 직원들보다 작은 업무용 테이블을 쓴다. 내 테이블이 직원들 테이블보다 커야 할 이유가 없다. 직원들 테이블을 넓게 쓰도록 하는 것은, 편안한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직원들이 일 하기 편하게 하려는 배려다. 직원들의 편안한 근무환경은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중요한 조건의 하나로 보고 있다. 우리 직원들의 드림룸(Dream Room) 역시 그런 뜻에서 만들어졌다.
드림룸은 아무나, 아무 때나 쉬고 싶을 때 쉬라고 마련한 공간. 쉬고 싶을 때 쉬어가며 일을 해야 직장 다니는 맛이 나지 않겠나? 더 피로할 때는 안마라도 받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 직원들이 안마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도록 자격증 가진 안마사도 직원으로 채용했다.
직원들이 편한 마음으로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 경영인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라고 믿는다. 내가 젊어서 누리지 못한 것을 사원들에게 주고 싶다...이것이 내 본색일 수도 있고 본심일 수도 있다.
물론 내가 우리 직원들을 더 많이 부려먹으려고 이러는 거 아닐까, 생각할 때도 없지 않다. 사원들을 편하게 일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일 많이 시키려면 편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계산, 또는 논리가 작용한 건 아닐까? 그런거 저런거 따지기 전에, 우선 직원들이, 피곤하면 쉬는 것이 더 능율적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사실 나는 일이 편안치 않았다. 편안, 불편 이런 걸 따질만큼 여유같은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 일이라도 많이만, 하루도 쉬지 않게 매일매일 할 일만 있다면, 힘들어도, 그냥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면 즉시 액션에 옮길만한 일이 있기만 하다면...
앞에서 얘기한 노량진. 그 시절엔 노량진 일대도 다 시골길이고, 자갈길이었다. 매일 왕복했다. 열아홉 스무살 때 얘기다. 그 때 그걸 자전거에 실어 나르면서. 언덕에 올라 땀을 씻으면서, 시원한 보리차 한 목음을 마시면서 야 오토바이 한 번 타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거의 매일 했다.
요즘 바이크를 탄다. 꼭 그 때가 생각나서 타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바이크 한 대가 어쩌면, 언덕길을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헐레벌떡 기어오르면서 내가 꿈꾸던 유일한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바이크를 탈 때마다, 나는 노량진을 지나 끙끙대고 자전거를 끌던 그 스무살 고개를 하염 없이 생각한다.
그러나 무거운 자전거가 나를 울리지는 않았다. 무겁더라도 일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든 것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었다.
극복...그렇다. 극복이다. 극복할 수 있는 힘, 극복할 수 있는 지혜. 극복할 수 있는 끈기...그런 것만 갖춘 사랍이라면, 불행하다는 생각 자체를, 불행의 한 가운데서 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다. 불행 속에 살면서, 불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사람 치고, 어엿하게 불행을 극복한 사람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무거운 짐자전거, 가파른 언덕, 울툴불퉁 자갈길...그래도 불행을 생각지 않던 그 무더운 날의 아침햇빛과 저녁노을을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불행하지 않다, 불행하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불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돈은 없어도 살지만, 일이 없으면 살기 힘들다는 것도 그 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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