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눈) 레터] 남편의 월급봉투

정기홍 승인 2021.07.26 22:22 | 최종 수정 2021.12.15 14:58 의견 0

※ 플랫폼뉴스는 SNS(사회적관계망)에서 관심있게 회자되는 글을 실시간으로 전합니다. '레거시(legacy·유산)적인 기존 매체'에서는 시도하기를 머뭇하지만, 요즘은 신문 기사와 일반 글의 영역도 점점 허물어지는 경향입니다. 이 또한 정보로 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SNS를 좌판에서 한글 모드로 치면 '눈'입니다. 엄선해 싣겠습니다.

<남편의 월급>

당신에게 쥐어준 남편의 월급에는

상사에 내어 준 간과 쓸개가 들어있고,
상사에 고개 숙인 머리가 들어있고,
상사에 굽신거린 허리가 들어있습니다.

당신에게 쥐어준 남편의 월급에는

뙤약볕에 검게 탄 얼굴이 들어있고,
더러워도 아부했던 입이 들어있고,
보고도 못 본 척한 눈이 들어있고,
자신을 욕하는 소리에도 참아야 했던 귀가 들어있습니다.

당신에게 쥐어준 남편의 월급에는

더러운 냄새에 마비된 코가 들어있고,
현장에 흩뿌린 피땀이 들어있고,
피로에 축 처진 어깨가 들어있고,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던 두 팔이 들어있고,
기름때에 찌들어 시커매진 양손이 들어있고,
바쁜 걸음에 지친 두 다리가 들어있습니다.

당신에게 쥐어준 남편의 월급에는

또한 삭막한 사회에 황폐해진 당신 남편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당신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그것….그건 바로 남편입니다.

※ 월급이란 말을 잦게 쓰지 않은 지 꽤 오래됐습니다. 요즘엔 월급이란 말 대신 연봉이라고 하지요.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 세대가 아니면 듣기 힘들어진 말입니다. 지금은 자주 기억을 하고픈 추억의 단어가 됐습니다.

수십년 전만 해도 월급봉투라 해서 다달이 오는 월급날에 봉투 하나씩을 나눠줬지요. 지폐를 넣어 두둑한 노란 봉투로 기억합니다. 물론 동전도 몇잎 들어 있어 봉투를 거꾸로 들면 바닥으로 또르르르 굴러가곤 했었지요.

은행에 월급 자동이체 계좌를 만든 분들도 가끔 보너스 등 가욋돈을 회사에서 받을 때 비슷한 추억을 기억하실 겁니다. 바뀐 것은 노란 봉투가 아닌 흰봉투였고요.

월급 관련 에피소드는 지천에 깔렸습니다. 월급봉투가 가장 먼저 가는 곳이 마누라 품이 아니라 회사 근처 작부집이나 식당이었다죠? 당겨먹은 외상값을 갚아야 했으니…. 월급날이면 마누라가 애를 업고 회사 근처에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지요. 지금은 신용카드가 월급봉투 자리를 헛헛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월급날 현금을 인출해가던 중소기업의 경리담당자가 날치기 당하는 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났고, 월말이면 버스 등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안부인사를 나눌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월급날이면 남편의 어깨에 힘이 부쩍 들어간다는 것, 봉투가 없어졌을 때부터 부부의 역학 관계가 바뀌었다는 것, 이래서 남자는 돈버는 기계가 됐다는 것 등 월급봉투와 관련한 풍경들은 다양합니다.

월급봉투 대신 자동이체가 첫 등장한 것은 1980년이라고 합니다. 은행들이 온라인 전산시스템을 갖추면서 월급 자동이체로 바뀌었는데 전산망이 잘 돼 있는 은행권이 제일 먼저 시작했다네요. 또한 은행들은 예금 유치를 위한 편리성을 들어 기업에 자동이체를 적극 권장했다고 합니다.

'다시 받자'는 월급봉투 이벤트도 있었네요. 지난 2013년 현대오일뱅크에서 직원들에게 월급을 봉투에 넣어서 전달했답니다. 사기 진작용이었다고 했는데 꽤 반응도 좋았고 홍보도 많이 됐다고 하네요.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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