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랫폼뉴스는 SNS(사회적관계망)에서 관심있게 회자되는 글을 실시간으로 전합니다. '레거시(legacy·유산)적인 기존 매체'에서는 시도하기를 머뭇하지만 요즘은 신문 기사와 일반 글의 영역도 점점 허물어지는 경향입니다. 이 또한 정보로 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SNS를 좌판에서 한글 모드로 치면 '눈'입니다. 엄선해 싣겠습니다.
<돈보다 고귀한 사랑>
가수 조용필 씨의 명곡인 '비련'에 얽힌 일화입니다.
다음은 조용필 씨의 전 매니저인 최동규 씨가 인터뷰 했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4집 발매(1982년 5월) 이후 한창 바쁠 때 한 요양병원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그 병원장은 자신의 병원에 입원한 14세의 지체장애 여자 아이가 조용필 씨의 4집에 수록된 '비련'을 듣더니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답니다.
입원 8년 만에 기적 같은 감정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이어 병원 원장은 "이 아이의 보호자 측에서 '돈은 원하는 만큼 줄테니 조용필 씨가 직접 이 아이에게 비련을 불러줄 수 없냐? 아니면 잠깐 와서 얼굴이라도 보게 해줄 수 없냐?'고 부탁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최동규 씨는 "조용필 씨가 카바레에서 한 곡을 부르면 지금 돈으로 3000만~4000만원 정도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용필 씨에게 최동규 씨가 이 말을 전했더니 피우던 담배를 툭 끄더니 곧바로 "그 병원으로 출발을 하자"고 했다고 합니다.
최동규 씨는 그날 행사가 4곳이었는데 모두 취소하고 위약금 물어주고 시골 요양병원으로 단숨에 달려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병원 사람들과 환자의 가족이 놀란 것은 당연했지요.
조용필 씨는 병원에 들어서마자 사연 속의 아이를 찾았습니다.
소녀는 아무 표정도 없이 멍하니 있었는데 기적은 이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조용필 씨가 아이의 손을 잡고 '비련'을 부르자 잠시 전까지 그렇게 무표정이던 아이가 펑펑 운 것입니다.
아이의 부모와 주위 사람까지도 울음바다였습니다.
조용필 씨는 이 아이를 안아주고 사인이 담긴 CD를 주고서 차에 타려는데 아이 엄마가 "돈은 어디로 보내면 되냐?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조용필 씨는 "따님 눈물이 제 평생 벌었던 돈보다 더 비쌉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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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필의 4집 엘범. |
※ 아름다운 사연의 글이니 감동이 밀려옵니다. 가슴도 약간 시려지네요. 그가 가요계를 주름 잡던 땐 1회 공연에 요즘 돈으로 최소 3000만원을 받았다니 대단했네요. 가왕(歌王) 칭호를 그냥 받은 게 아닙니다.
참고로 발라드풍인 '비련'은 조용필 씨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때인 1982년 5월 17일 내놓은 4집 앨범(지구레코드)에 실려있습니다. '못찾겠다 꾀꼬리', '꽃바람' 등이 수록돼 있습니다.
비련의 가사를 다시 봅니다.
'기도하는 사랑의 손길로 떨리는 그대를 안고/ 포옹하는 가슴과 가슴이 전하는 사랑의 손길/ 돌고 도는 계절의 바람속에서/ 이별하는 시련의 돌을 던지네/ 아 눈물은 두 뺨에 흐르고/ 그대의 입술을 깨무네/ 용서하오 밀리는 파도를 물새에게/ 물어보리라 물어보리라/ 몰아치는 비바람을 철새에게 물어보리라'
조용필 씨가 인기 절정일 땐 '기도하는~'이라고 한 소절만 떼도 여성 팬들이 집단최면에 걸린 듯 비명을 질러댔지요. 장면들이 생생합니다. 이 노래의 첫가사는 '기도하는~ (꺄아아~)'이란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하네요.
세상이 각박하다지만 가슴 따뜻한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려줍니다. 분명한 건 돈보다 귀한 것이 우리 주위엔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훨씬 더한 행복감을 준다는 것을 잘 전해주는 글이었습니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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