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가마솥 폭염입니다. 말이 37도, 38도이지 세상의 생물들이 헉헉댑니다. 체감온도는 40도를 너끈하게 넘깁니다.
오늘은 '큰 더위' 절기라는 대서(大暑)입니다. 땡볕 더위가 시작되는 시기인데, 올해는 제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매미의 울음소리도 열기만큼이나 쩌렁쩌렁 높아가는 때입니다. 아주 우렁찹니다.
대서는 24절기 중 열두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입니다. 소서(小暑)와 입추(立秋) 사이에 자리하고. 양력으로는 7월 22~23일에 든다고 합니다. 또한 이 시기는 대개 중복(中伏) 때이며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가장 심합니다.
기온으로만 보면 대서보다 입추 때가 조금 높다고 합니다. 대서 때부터 본격적으로 더워져 실제 더위는 대서~입추 사이에 집중됩니다. 입추가 지나고 8월 중순 무렵부터 기온이 낮아진다고 하고요. 아무튼 대서 더위는 '염소뿔도 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대서 입기일(入氣日)로부터 입추까지 기간을 5일씩 끊어서 삼후(三候)로 하는데 고려사(高麗史)에는 초후에는 썩은 풀에서 반딧불이 나오고, 차후에는 흙에 습기가 많으며 무덥고, 말후에는 큰 비가 때때로 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름 간 살펴보는 것도 계절의 오고감의 재미가 될 수 있습니다.
대서인 이때는 삼복더위를 피해 술과 음식을 마련해 계곡이나 산정(山亭)을 찾아가 노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요즘 말하는 여름휴가, 바캉스입니다. 코로나 4차 유행 때문에 독자분들의 계획은 잘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이유 중의 하나가 작년에 못간 여름휴가를 즐기려고 먼저 검사를 하고 백신도 앞다퉈 맞는 분위기 때문이란 말도 있습니다. 방역 당국은 이런 말을 내놓고 하지 않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기도 하네요.
또한 때때로 이 무렵엔 장마전선이 늦게까지 한반도에 동서로 걸쳐 있으면 큰 비가 내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한반도에 장기간 걸쳐 있어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란 삼복 더위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말도 있네요. 무더위를 초중말 삼복으로 나누고, 소서와 대서로 구분한 것은 무더위에 대한 경각심을 주어 잘 대비하라는 뜻이 담겼답니다.
대서인 이 무렵 농촌에서는 논밭의 김매기, 논밭두렁의 잡초베기, 퇴비장만 같은 농작물 관리를 합니다.
뙤양볕 아래에서 논둑에 난 풀을 베어 본 사람만이 삼복 더위의 호된 맛을 압니다. 몇십분 일을 하다 보면 숨이 찰 정도이지요. 더위를 먹어 쓰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언론에 가끔씩 오르내리는 열탈진(일사병), 열사병 같은 온열질환이지요.
일사병은 체온이 37~40도에 이르고 극심한 피로감, 근육경련, 혼미상태, 탈수증상 등을 동반합니다. 열사병은 체온이 40도 이상 상승하면서 발작, 정신착란, 환각, 구토, 설사 증상을 동반하고 심할 경우 사망하기도 한답니다.
올해는 더더욱, 특별히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아니할 말로, 여름을 넘긴 가을 초입에 돌아가시는 연로한 어르신들이 종종 있습니다. 여름을 잘 못 넘겼기 때문입니다. 대서 무렵에 집안 어르신들을 각별히 모셔야 하는 이유이겠네요.
달리 과일은 이때가 가장 맛있지요. 시골스런 정취이지만 복숭아, 참외, 수박 등이 풍성해 돗자리 깐 원두막에서 깎아먹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요즘처럼 가물면 과일의 크기와 굵기가 작아지지만 맛이 나고,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당도가 조금 떨어집니다.
농사꾼들의 말을 빌리면 너무 더워도 벼의 소출이 적어진답니다. 웃자라 도열병 등에 걸릴 확률이 높아져서 그렇답니다. 물론 냉해나 비가 자주 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삼복(三伏)에 비가 오면 대추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말이 그러합니다. 더위도 적당한 게 좋다는 이치이겠습니다.
이 시기는 수확한 햇밀과 보리를 도정해 냉면과 보리밥으로 해서 먹습니다. 한여름 시원한 냉면과 강된장을 푼 꽁보리밥을 호박잎에 싸 먹으면 천하의 일미이지요.
날씨가 이렇게 대지를 달구는 걸 보니 올해 벼농사가 풍년이 들 모양입니다. 식당 1000원짜리 공기밥 박한 인심이 조금 풀리려나요?
지금, 내 고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기도 합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잠시 빌려왔습니다.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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