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초복이다. 삼복(三伏)의 첫 복날이다.
삼복은 양력 7월 중순~8월 중순에 들어있는 잡절로 초복, 중복, 말복을 아우른다. 잡절이란 24절기가 아닌 잡다한 절기로, 속절(俗節)이란 뜻이다. 삼복은 음력의 개념이 아니라 24절기와 일진을 기준으로 정하기 때문에 소서(양력 7월 7일 무렵)에서 처서(양력 8월 23일 무렵) 사이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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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복날 아침 SNS에서의 삼계탕 마케팅 |
따라서 24절기처럼 내려오는 풍습이 많지 않다. 다만 무더위가 시작돼 음식관련 풍습이 많다. 요즘처럼 '먹방'(먹는 음식 방송)이 포화상태인 시대에 삼복은 음식마케팅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삼복은 한해 중 가장 더운 때다. 햇볕이 일년 중 가장 좋아 이 시기에는 농작물도, 농작물에 해가 되는 잡풀도 부쩍 빨리 자란다. 그만큼 논밭 김매기 등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이렇듯 삼복 때는 더위가 기승을 부려 활동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농삿일을 하기 위해선 몸을 보해줘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옛날엔 머슴밥처럼 많이 먹고, 잘 먹어야 했다. 요즘 말로 고칼로리 영양식을 섭취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더위부터 이겨내야 했다. 이것이 복날 풍습이 생긴 근거다.
■ 복날 보신탕
복날 음식의 기원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는 조선시대 순조 때의 홍석모(洪錫謨)가 쓴 세시풍속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에서 나오는데 삼복에 개장 먹는 풍속과 관련해 '사기에 진(秦)나라의 덕공(德公) 2년(기원전 676년)에 첫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성 안의 사대문에서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막았다. 개를 잡아 열독(熱毒)을 다스렸다. 개 잡는 일이 곧 복날의 옛 행사요, 지금 풍속에도 개장이 삼복의 가장 좋은 음식이 됐다'고 적고 있다.
복날 대표 음식은 요즘 많이 먹는 삼계탕과 한동안 애용했던 개고기(보신탕)가 있다. 반려견 시대인 요즘에는 개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개고기가 식재료로 취급된 것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문헌상으로 개장국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조선 중기다.
조선 후기에는 조리법을 적은 책들이 나왔다. 동국세시기에서는 '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끓인 것을 구장(狗醬)이라 한다. 개장국이 기력을 보충하기 좋아 음식으로 먹었고 삼복에 개장국을 먹는 것이 유행'이라고 적었다. 19세기 중반에는 저잣거리에 개장을 전문으로 파는 목로주점도 생겼다고 한다.
실제 농삿일을 해야 하는 조선의 평민들이 개고기를 자주 먹었고 어느 푸줏간에서나 개고기를 볼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개고기 음식 풍습은 프랑스인 가톨릭 선교사인 클로드 샤를 달레가 쓴 조선천주교회사(1874)에서도 언급되는데 '조선에서 개가 푸주의 고기로 쓰이며 가장 훌륭한 음식의 하나'라고 서술했다. 실제 천주교 쪽에서 개고기를 즐겨먹었다고 한다. 요즘 들어 프랑스인이 가장 많이 우리의 개고기 식문화를 미개하다며 비난하는 것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초복날에 개장국을 끓여 계곡이나 정자나무 아래서 먹었는데 이를 '복달임한다'고 한다. 개장국은 특히 복날에 먹어야 보신이 되고 질병도 쫓고 더위를 잊게 된다고 믿었다.
개장국은 보신탕을 지칭하지만 한쪽에선 통상적인 고깃국으로 풀이한다. 소고기를 넣어 끓이면 육개장이 되고, 닭고기를 넣으면 닭개장이 된다. 육개장의 경우 어원을 따지면 말이 안 되지만 이렇게 말한다.
보신탕은 사철탕, 영양탕, 보양탕, 구탕(狗湯)으로도 불린다. 시쳇말로 멍멍탕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구탕이 나오는데 구(狗)란 주로 식용견이나 부정적으로 쓰이는 단어이고, 견(犬)은 긍정적으로 사용된다. 다만 요즘 경찰을 '견찰'로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쓰임의 경우가 다르다.
사철탕, 영양탕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서울시가 개고기를 혐오하는 국제동물단체 등 해외 여론을 의식해 1983년 도로변과 도심에서의 보신탕 판매를 못하게 하자 단속을 피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이전인 1954년에도 정부에서 개장국을 비위생적이고 야만적인 음식이라고 해서 판매를 금지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때 요리의 재료를 숨기기 위해 보신탕이란 명칭이 생겨났고 왕왕탕, 구탕이란 이름으로도 판매됐다. 이후 60년대 무렵에는 다시 대중화 돼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91년 7월 동물학대를 금지하는 동물보호법이 시행되면서 개고깃집이 하나둘 사라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잔인한 방법이 아니면 개 도살이 가능해 보신탕을 불법으로 보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보신탕을 단고기국이라고 한다. 사망한 김정일이 단고기를 무척 좋아했다. 외국 손님에게 공식적으로 대접하고, 곳곳에 다양한 단고기 요리를 파는 식당이 많아 복날의 최고 음식으로 전해진다. 조선의 정조도 보신탕을 즐겨먹었다고 한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개고기가 (연해)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와 무릎을 온(溫)하게 하고, 양도(陽道)를 일으켜 기력을 증진시킨다'고 적고 있다. 개장국의 주재료로 황구(黃狗)가 으뜸으로 쓰였다.
전통적으로 먹던 복날 보양식은 주로 고기류로 원기(단백질)를 보충했다. 대부분 끓이는 음식으로 구성된 것도 특징이다. 이를 이열치열 음식으로 구색에 맞춰 말하지만, 음식이 귀했던 시절 구워먹는 것보다 탕으로 끓여먹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의 복날음식 풍속도로 자리했다는 풀이다. 요즘은 개장국과 함께 전골, 찜으로 먹는다.
왜 개고기였을까? 소는 농삿일에 필요했고 돼지는 잔칫날에나 잡는 귀한 가축이었다. 서민들이 고기로 영양 보충을 할 수 있는 만만한 것이 개나 닭이었다고 여겨진다. 개와 닭은 서민들이 기르던 가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이 포개지고 쌓여 보신탕과 삼계탕이 복날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했다.
■ 보신탕 자리 꿰찬 삼계탕
삼계탕은 어린 닭에 찹쌀과 인삼, 대추, 밤, 황기 등을 넣어 고와서 먹는다. 삼계란 이름처럼 인삼이 들어가지 않으면 삼계탕이 아니다. 보통 영계와 6년근 인삼을 넣어야 제맛이 나고 영양 보충이 된다.
삼계탕의 이전 이름인 닭백숙은 삼국시대 때부터 복날에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참 후인 일제강점기에 부잣집에서 인삼가루를 넣어 먹은 후 삼계탕이란 이름을 얻었다. 1950년대에는 계삼탕이란 이름을 단 음식점들이 생겨났고, 1960년대 냉장고가 나오면서 가루가 아니라도 보관이 가능한 인삼 뿌리를 이용했다고 한다.
최근엔 개가 최고의 반려동물로 인식되면서 개고기를 찾는 사람이 많이 줄면서 닭고기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른바 직장인들이 복날 점심 때면 인사치레하듯 찾아 먹는 영계탕이다.
요즘 음식점에서 먹는 삼계탕은 대체로 35일 기른 어린 닭과 3~4년근을 넣는다고 알려져 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1~2년근을 넣는 곳도 있다고 한다. 삼계탕 특유의 제맛이 날 리도, 보신이 될 리도 없다.
몸보신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이 바쁜 세상에 지금껏 풍습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남달리 고마운 일이다. 요즘 복날에는 삼계탕 말고도 찜닭, 불닭, 닭도리탕, 치킨으로도 두루 찾는다.
■ 보신탕-삼계탕만 보신 음식 아냐
지금은 잊혀져 있지만 육개장도 고급 보양음식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보신탕에 개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어 이름이 붙여졌다. 당시엔 삼계탕은 서민들이, 소고기가 들어간 육개장은 양반들이 주로 먹었다고 전해진다.
요즘은 흑염소탕이 보신탕의 자리를 대신해가는 분위기다. 개고기 음식점들이 비판 여론을 의식해 흑염소고기집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고기의 맛도 개고기와 비슷하게 연한데 값은 더 비싼 편이다. 흑염소탕도 들깨 양념과 들깻잎, 마늘 등이 아우러진 보신탕과 같이 특유의 맛을 낸다.
이 외에도 장어구이, 민어, 용봉탕, 전복죽 등이 있다. 모두가 만만찮은 보양식들이다.
복날에 팥죽을 먹기도 하는데 이는 팥의 붉은콩이 귀신을 물리친다는 뜻에서 더위를 귀신과 동일시해 이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고기를 먹기 힘들었던 옛날에는 증편, 주악, 백설기를 별식으로 해 먹기도 했다고 한다.
복날 팥죽은 고려 말의 일부 문집에서 '삼복 풍속에 개장 먹는 일이 없고 팥죽을 먹는다'고 적고 있어, 개고기보다 훨씬 앞서 복날 음식으로 애용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기를 먹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요즘 복날 음식은 음식점들의 마케팅장이 돼 종류가 다양하게 선보인다. 오래된 가게인 노포(老鋪) 보신탕집이 하나씩 사라지고 그 자리에 복날 푸전음식이 들어서고 있다. 미국에 이주한 한인들의 보신탕 전문식당에서는 개고기를 쓰지 않고 같은 개과와 개속에 속하는 코요테 고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요즘은 복날이라고 굳이 보양식을 찾지도 않는다. 평소에 단백질 등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있어 기력을 보충한답시고 뜨거운 음식을 땀 뻘뻘 흘리면서 먹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되려 냉면과 같은 시원한 음식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 복날의 야사
속담에 '복날 개 맞듯이'란 말이 있다. 과거 개를 도살할 때 두들겨 패서 잡는 잘못된 관행에 빗대어 그만큼 많이 두들겨 맞는다는 뜻으로 일컫는 말이다. 지금은 섬칫 미간이 좁아지는 광경이지만 오래 전에는 시골에서 그렇게 잡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왜 일까? 때린 만큼 육질이 쫀득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개가 스트레스와 자극을 받아 고기가 단단해지거나 질겨져서 그렇다고 한다. 다른 동물을 도축할 때도 비슷하다. 요즘은 도축 방법이 바뀌어 이런 경우는 없어졌다. 동물도 '웰 다이닝(well dying)'을 해야 고기맛이 좋다는 말이다.
재미삼아 하는 말도 있다. 복(伏·엎드릴 복)자를 보면 개 견(犬)자 옆에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이다. 사냥꾼이 사냥개를 데리고 엎드려 숨어서 사냥감을 노리는 뜻으로 풀이한다. 그 사냥감은 무엇일까? 복날의 고기로 여기던 개와 닭이 아닌 또다른 고깃감일까?
달리 복자를 '사람이 더위에 지쳐 엎드릴 정도로 더운 날', '사람(人)이 개(犬)를 잡아먹는 모양'이란 해석도 내놓고 있다.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김삿갓(김립)이 파자(破字) 놀이로 세상사를 풍자하고 조롱한 시구들이 생각나는 해석들이다.
옛날 못 먹던 시절, 더운 이날 만큼은 기력을 보충해 한여름 농삿일에 대비하자며 만든 것이 복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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