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오늘(23일)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입니다

정기홍기자 승인 2021.10.23 14:47 | 최종 수정 2021.11.16 12:33 의견 0

상강(霜降)은 24절기 가운데 18번째 절기입니다. 상강의 풀이대로 서리를 맞아 여름내 푸르던 산야의 잎사귀들이 시드는 때입니다.

상강 절기는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에 자리를 합니다. 태양의 황경이 210도에 이르는 때로, 양력 10월 23일과 24일에 맞춰집니다.

이 때는 하늘은 높고 푸르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지만 밤 기온이 뚝 떨어집니다. 밤새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기면서 서리가 되고, 기온이 더 내려가면 얼음이 업니다. 나다니던 벌레들은 상강을 지나 입동 전에 겨울잠을 자려고 땅속으로 기어들어간다고 합니다.


◆ 추수 마무리, 겨울 채비

농사력(農事曆)으로는 이 시기에 모든 추수가 마무리 돼 겨울맞이를 시작합니다.

조선 중기 학자인 권문해(權文海)의 '초간선생문집(草澗先生文集)'에는 상강과 관련한 기록을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바라보는 가운데 점점 산 모양이 파리해 보이고/ 구름 끝에 처음 놀란 기러기가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잎에 병이 들어 시드는데/ 울타리 아래에 이슬이 내려 찬 꽃부리가 빛나네// 도리어 근심이 되는 것은 노포(老圃)가 가을이 다 가면/ 때로 서풍을 향해 깨진 술잔을 씻는 것이라네(半夜嚴霜遍八紘/ 肅然天地一番淸// 望中漸覺山容瘦/ 雲外初驚雁陳橫// 殘柳溪邊凋病葉/ 露叢籬下燦寒英// 却愁老圃秋歸盡 時向西風洗破觥)'

중국에서는 상강부터 입동 사이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자연의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초후(初候)는 승냥이가 산짐승을 잡는 때, 중후(中候)는 초목이 누렇게 떨어지는 때이며, 말후(末候)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모두 땅속에 숨는 때라고 합니다.

19세기 중엽 김형수(金逈洙)가 쓴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도 중국과 비슷하게 한로와 상강에 해당하는 절기의 모습을 '초목은 잎이 지고 국화 향기 퍼지며 승냥이는 제사하고 동면할 벌레는 굽히니'라고 표현했습니다.

요즘은 보리를 많이 심지 않지만 이모작이 가능한 남부 지방에서는 벼를 수학한 뒤 보리 파종을 하는 때이고, 마늘도 심는 시기입니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지낸 분들은 쌀쌀해진 아침 나절에 부모님 성화에 억지로 벼 벤 논에 나가 보리 심는 일들이 떠오를 듯 싶네요. 무척 하기 싫던 일이었지만 멀리 가신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의 일입니다.

상강 관련 옛 기사

◆ 단풍 물들고 국화 향기 가득

또한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국화도 활짝 피는 계절, 나들이와 마실 가기에도 딱 좋은 시절입니다.

단풍의 계절이니 단풍에 관해 알아봅니다.

단풍은 가을에 나뭇잎 색이 울긋불긋 변한 잎입니다. 보통 밤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나뭇잎이 광합성 활동을 멈춰 엽록소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엽록소에 가려져 있던 보조색소인 안토시아닌이나 카로틴, 크산토필이 드러나 붉고 노란색으로 잎의 색깔이 변합니다. 이게 단풍입니다.

붉은색인 안토시아닌을 만들지 못하는 잎은 노란색과 등색의 카로틴과 크산토필 색소를 나타낸다고 하네요. 또 붉은색의 안토시아닌과 노란색의 카로틴이 혼합되면 주홍색이 되는데 우리가 그 화려함에 감탄하는 단풍색입니다.

조금 더 설명하면, 나무는 요즘처럼 기온이 내려가면 줄기와 잎이 만나는 부분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나무의 몸속 수분과 영양분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자정 작용입니다. 단단한 칸막이와 같은 이 세포층을 떨켜층이라고 합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수분을 줄이는 방편이지요. 따라서 뿌리에서 생산된 물이 잎으로 못 가고, 잎에서 만들어진 포도당도 뿌리로 못 갑니다. 특히 낮 기온이 5도 이하로, 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뿌리의 물 흡수는 완전히 멈춘다고 합니다.

단풍의 아름다움 차이는 밤과 낮의 기온 차이와 청명한 날씨가 좌우합니다. 기온차가 많이 나면 더 예쁩니다. 밤과 낮의 기온차가 큰 지방의 과일 맛이 더 좋다는 것과 연결시켜도 될 듯하네요.


지역의 차이가 있지만 10월 하순~11월 중순을 단풍의 시기이라고 합니다.

민간예보 서비스 기업인 케이워터는 얼마 전 올해 단풍은 예년보다 3~4일 늦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긴 가을 장마와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하면서 10월까지 이어진 늦더위 영향 때문입니다.

첫 단풍 날짜는 9월 28일 설악산을 시작으로 오대산 10월 1일, 치악산 10월 9일, 지리산 10월 12일, 월악산과 한라산은 10월 14일, 북한산 10월 17일, 계룡산과 팔공산은 10월 18일, 내장산과 무등산은 10월 21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심의 나무잎은 아직도 푸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풍의 절정 시기는 첫 단풍 이후 2주 정도 지나서라고 합니다.

지난 18년간(18년 조사) 단풍 절정 시기를 분석했더니 평년보다 5일 늦어졌다고 합니다. 지구 온난화가 주요 원인이랍니다.

2011∼2020년 9월, 10월의 평균기온이 1990년대(1991∼2000년)보다 0.5도 상승해 첫 단풍 시기가 대체로 늦어졌습니다. 이 조사에서는 오는 2099년까지 지구 온난화가 느리게 진행되면 단풍이 1주, 빠르게 진행되면 3주 늦어질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 상강 풍습들

상강 절기의 풍습은 다양하지 않지만 당연히 있습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가을 국화로 만든 국화주를 마시고 가을 나들이도 합니다.

음력 9월 9일인 중구절(重九節·중양절)에는 국화로 화전(花煎·꽃을 넣어 만든 부침개)을 만들고 계곡과 명승지를 찾아 단풍놀이를 하는 습속이 있었습니다.

이 날은 부녀자·소년·소녀·농부들이 각기 떼를 지어 하루를 즐겼다고 합니다. 문인들은 시를 짓고 풍월을 읊어 주흥을 내기도 했고요.

요즈음 학교나 단체에서 단풍소풍이나 나들이를 가는 것도 이런 오랜 전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겠네요.

조선 시대에는 상강 무렵에 국가 의례인 둑제(纛祭)를 행했습니다.

둑제란 고려·조선 시대에 전쟁 출정을 할 때 둑기를 세워두고 전쟁의 승리와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지냈던 제사이라네요. 유일하게 무관들이 주관하는 제사였습니다. 봄에는 경칩에, 가을엔 상강에 3일간 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둑(纛)은 고려와 조선시대 때 군대의 행렬 앞에 세우던 대장기입니다. 큰 삼지창에 검은 소의 꼬리털로 만든 치우(蚩尤)를 달았는데 이를 둑기라 부르며 신성시했답니다.

대사가 아닌 소사로 요즘으로 말하면 국군의 날과 같은 국가 의례였던 셈이지요. 다만 병조판서가 참석해 중사 정도로 올린 적이 많다고 합니다.

◆ 세시 속담

농가에서는 '상강 90일 두고 모 심어도 잡곡보다 낫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이모작을 해도 주곡인 쌀이 잡곡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즉 상강을 90일 앞둔 날은 7월 하순인데 모내기를하긴 매우 늦었지만 이모작 지역에서 상강 절기를 매우 중히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제주 속담에 '조 이삭은 상강 넘으면 더 안 여문다'(서리 내리기 전에 빨리 베라는 뜻), '상강이 지나면 바닷고기에 알이 박힌다'(맛이 없어진다)가 있습니다. 추워지니 월동 준비를 빨리하라는 의미입니다.

가을이 왔음을 뜻하는 일엽지추(一葉知秋)란 말이 있습니다. 나뭇잎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영긂을 안다는 뜻입니다. 더불어, 사람은 봄철엔 시인이 되고 가을에는 철학가가 된다고 했습니다. 가을 사색이 너무 깊어지면 우울증도 오니 적당함이 좋겠네요. 방을 박차고 나가면 지천에 울긋울긋한 단풍이 반기는, 즐기기에 좋은 절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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