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눈) 레터] 휴급소(休急所)와 해우소(解憂所) 이야기

정기홍 승인 2021.05.16 09:26 | 최종 수정 2021.12.19 01:20 의견 0

※ 플랫폼뉴스는 SNS(사회적관계망)에서 관심있게 회자되는 글을 실시간으로 전합니다. '고전적 언론 매체'에서는 시도하기를 머뭇하지만, 요즘은 신문 기사와 일반 글의 영역도 점점 허물어지는 경향입니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드린다는 면에서 접목한 작은 시도이며, 이 또한 정보로 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SNS를 좌판에서 한글 모드로 치면 '눈'입니다. 엄선해 싣겠습니다.

▶ 해우소 이야기

지금은 세속에서도 흔히 쓰는 해우소(解憂所)라는 말이 있다.

화장실을 나타내는 말인데, 경봉스님이 최초로 이 이름을 붙인 것이다.

스님은 6.25전쟁이 끝난 후 (경남 양산) 통도사 극락암의 화장실(그때는 변소라고 했다.) 이름을 새롭게 지었다.

소변을 보는 곳은 휴급소(休急所), 대변을 보는 곳은 해우소(解憂所)라고 했다.

극락선원을 찾은 수좌와 신도들이 이 표현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법문(法門·스승이 제자를 깨우치기 위해 설하는 말)을 통해 뜻을 설명했다.

“세상에서 가장 급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찾는 일이야. 그런데 중생들은 급한 일은 잊어버리고 바쁘지 않은 것은 바쁘다고 해. 휴급소(休急所)라고 이름한 것은 쓸데없이 바쁜 마음 쉬어가라는 뜻이야. 그리고 해우소(解憂所)라고 한 것은 쓸데없는 것이 뱃속에 있으면 답답하고 근심 걱정이 생기는데, 그것을 다 버리라는 거야. 휴급소에 가서 급한 마음 쉬어가고 해우소에서 걱정을 버리면 그것이 바로 도(道)를 닦는 거야.”

대형 가수 조용필의 4집 앨범 타이틀 곡은 ‘못찾겠다 꾀꼬리’이다.

이 노래는 1980년대 초반 대마초 사건으로 방황하던 조용필이 경봉스님을 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탄생했다.

경봉스님과 조용필의 대화는 이랬다.

"뭐하는 놈인고?"

"노래하는 가수입니다."

"그래 ! 그럼 노래 한번 해보거래이"

조용필의 구성진 노래 한가락이 암자에 울려 퍼졌다.

"고놈 참 노래 잘 한데이. 네안에 꾀꼬리가 들었구나. 네 안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의 참주인이 누구인지 아느냐?"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찾아보거라. 누가 노래하는지?" “그걸 찾아보거라.”

내 안에 노래하는 꾀꼬리를 찾으라는 말을 듣고 산길을 내려가는 길목에서 ‘못찾겠다 꾀꼬리’라는 노래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니.

못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경봉스님 법문중에서>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사바세상(인간세상)을 사는 것은 연극이나 마찬가지야.

기왕 연극을 하는 것이니 물질과 인간, 명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아니되니, 머리 쓰지 말고 한바탕 잘 놀다 가거라...

내 안의 참 나.바로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찾으시길 발원합니다. 못 찾겠다 꾀꼬리~.

※ 해우소는 사찰에 딸린 화장실로 근심을 푸는 곳, 즉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란 뜻입니다. 앞에서 언급됐듯이 통도사 극락암에서 오래도록 주석했던 선승 경봉스님(1892~1982)이 처음 이름을 붙였다고요. 여염집에서는 측간(厠間), 뒷간, 변소 등 다양하게 불렀습니다. 사찰에서는 해우소 말고도 동사(東司)라고도 하네요.

이 해우소에서는 인간의 대소변과 재와, 왕겨, 낙엽이 함께 섞여 곰삭고 나면 인간이 내뿜은 독한 냄새는 거의 사라지고, 양질의 퇴비로 재탄생해 다시 만물을 기르는 땅에 뿌려집니다. 인간과 자연이 큰 탈없이 공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배설물 처리시설인 셈입니다.

달리 내 몸속의 찌꺼기가 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날것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독특한 곳이기도 합니다. 볼일 보는 중에는 숨기고 싶은 나의 속것을 다 드러내는 듯한 부끄러운 느낌이 들게 하지요. 절간에 이런 공간을 차린 이유가 다 있는 듯합니다. 잠시나마 '너 자신을 알고 가라'는 깨달음의 공간이란 생각을 새겨봅니다.

옛날에는 사찰의 규모를 알려면 구시(가축의 먹이통인 구유 사투리, 밥솥 의미)와 부도밭(浮屠田·승려 사리나 유골 안치 묘탑), 해우소의 크기를 보았다고 합니다.

휴일 아침, 글을 옮기면서 또한번 배웠습니다. 소변이 대변보다 급하단 걸 알았고, 철학의 의미가 밴 불교 용어도 한번 두번 더 찾아봤습니다. 해우소한의원이란 특별한 상호도 있네요. 새삼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않은가'를 느끼는 비오는 아침나절이 됐습니다. 순천 선암사는 저도 두번을 찾아 해우소의 안쪽 사진 몇개를 찍었는데 찾기가 어려워 포기했습니다. 해우소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진들인데 찾으면 다시 올립니다.

윗글을 읽으신 분도 많겠지만 혹여 처음 접하는 분에게는, 장맛비 같은 빗줄기가 속된 진애(塵埃)를 씻어내듯 좋은 '씻김'이 됐으면 합니다.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 참고용

▶ 일반 화장실과 달리 사용에 주의할 점이 있네요.

첫째, 머리를 숙여 아래를 보지 말아야 한다.

둘째, 낙서하거나 침을 뱉지 말아야 하며, 힘 쓰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

셋째, 외우고자 하는 게송(偈頌·부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찬양하는 노래)이 있다면 외운다.

넷째, 용변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나온다.

다섯째, 손을 씻기 전에는 다른 물건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

▶ 가장 오래된 해우소

순천 선암사의 해우소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고 알려져 있다.

선암사가 창건될 때 지었다면 1500년 정도 된다는 주장도 있다. 9세기 도선국사가 선암사를 창건할 때의 뒷간을 말한다. 선암사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에 ‘1597년 선조 30년에 화재가 났는데 그때 뒷간이 남았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자리에, 지금의 형태가 아니기에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다만 현존으로 가장 오래됐고, 가장 크며, 해우소의 전통성을 잘 지켜온 전통적인 해우소다. 더운 여름에도 냄새가 잘 안 난다고 한다.

▶ 경봉(鏡峰)스님

일제강점기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원장, 통도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

▶ 부도(浮屠-浮圖)

한자로 해석하자니 얼른 이해가 안 옵니다.

부도의 사전적 뜻은 석가모니의 다른 이름 또는 부처 사리를 안치한 탑입니다. 요즘은 입적한 큰스님 사리 등을 모시는 곳이라니 어느 때부터인가 완화가 된 듯하네요. 부도를 승탑으로 써야 한다는 말도 있고요.

부(浮)자는 뜬다-덧없다는 뜻이고, 도(屠)자는 죽인단 뜻입니다. 도(圖)자는 그리다는 뜻이고요. 종합 해석을 하면 부도(浮屠)는 죽은 뒤 덧없이 떠 다는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까? 그럼 부도(浮圖)는 떠 다니는 그림으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그림이 아니라 돌입니다. 돌을 조각했으니 예쁜 그림으로 보는, 불교 특유의 선문답같은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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