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랫폼뉴스는 주말마다 '말 놀이' 코너를 마련합니다. 어려운 말이 아닌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와 문구 등을 재소환해 알뜰하게 알고자 하는 공간입니다. 어문학자같이 분석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짚어보자는 게 목적입니다.
절기상 가을이 온다는 입추(7일)가 지났지만 아직도 푹푹 찌고 후텁지근합니다. 그동안 열돔(열기가 지붕 안에 갇힌 것처럼 뜨거워지는 현상)의 영향이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더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자주 쓰지만 뜻과 느낌이 약간 다르거나, 잘못 쓰는 것도 있습니다.
더위란 단어를 살펴보려고 한 것은 '불볕더위'와 '찜통더위'의 차이를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찜통더위에 지쳐간다' 등으로 자주 쓰지만 둘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둘을 '햇볕'과 '습도(물기)'의 적고 많음의 차이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듯합니다.
불볕더위의 사전 표현은 '햇볕이 몹시 뜨겁게 내리쬘 때의 더위'입니다. 불볕은 '몹시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이고요. 따라서 불볕더위는 바깥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느끼는 더위로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겠네요. 햇볕이 쨍쨍 나면서 더울 때입니다. 습도는 낮습니다.
비슷한 표현으로 '불더위'(습도는 높지 않지만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불볕더위)와 '강더위'(비는 오지 않고 볕만 내리쬐는 메마른 더위)가 있습니다. 강더위는 가뭄더위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강'은 한자어 강(强)이 아닌 '마른' '물기가 없다'는 뜻의 접두어입니다. 강추위(눈도 안 오는 몹시 매운 추위), 강된장(되직하게 끓인 된장)에서의 '강'도 마찬가지이고요.
다음으로 찜통더위를 보시죠. '뜨거운 김을 쐬는 것 같이 무척 무더운 여름철 기운'이란 뜻이네요. 습하게 무더운 날씨를 표현할 때 쓴답니다. 찜통 단어를 찾아보면 '뜨거운 김으로 음식을 찌는 조리 기구'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물기를 머금어 불볕더위보다 더 괴롭습니다. 요즘은 오픈사전 개념으로 '몹시 강한 더위'를 표현할 때 두루 쓰입니다.
찜통더위와 궤를 같이하는 가마솥더위도 있습니다. '가마솥을 달굴 때 아주 뜨거운 기운처럼 몹시 더운 날씨'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가마솥은 한번 달궈지면 대단하지요. 찜통더위보다 강한 더위입니다. 가마솥더위란 용어는 조항범 충북대 국어국문과 교수가 1977년 8월 3일자 신문 기사에서 처음 언급했다고 하네요.
불볕더위와 찜통더위(가마솥더위 포함)를 대별하면 습함의 유무가 포인트가 될 수 있겠네요.
바깥에서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쬘 때 느끼는 폭염은 불볕더위로, 장마철 방에서 에어컨 등을 켜지 않았을 때 느끼는 습한 더위는 찜통더위로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겠습니다. 당연히 찜통더위에는 습도가 포함되는 거고요.
대체로 우리나라는 한여름 장마 전에는 마른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장마 후엔 습기를 머금은 찜통더위가 괴롭힌다고 보면 맞을 듯합니다. 제대로의 더위는 장마철 더위란 말이 있습니다.
불볕더위와 찜통더위의 차이는 이 정도로 해두고 더위와 관련한 다른 단어들을 함께 찾아보시지요.
기본적인 어휘인 '더위'부터 알아야봐야 하겠네요. 더위란 여름철의 더운 기운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무더위'란 단어도 있습니다. 우리가 개념을 정확히 모르고 쓰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무더위의 뜻은 '무척 심한 더위'입니다. 어원을 보면 '물과 더위'가 만나 무더위가 됐습니다. 온도와 습도가 모두 높아 끈적끈적해 불쾌감을 줍니다. 찜통더위와 연결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않으세요?
무더위란 단어는 더운 날씨라고 막 쓰는 게 아니고 습한 더위일 때만 써야 합니다. 따라서 고온다습한 날씨에는 '무더위'나 '찜통더위'로 표현해야 적절하고요.
예를 들면 '장마가 끝나자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다' '무더위에는 제습기를 틀어도 도움이 된다'와 같은 문구가 제대로 맞는 것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찜통더위가 무더위보단 조금 셉니다.
더위의 표현은 '시기'에 따라서도 달리합니다. 첫더위(그해 여름 처음으로 맞는 더위), 일더위(일찍 찾아오는 더위), 늦더위(여름이 다 가도 이어지는 더위) 등이 있습니다. 끝더위는 없네요. 또 한더위·된더위(여름 한창 심한 더위), 삼복더위(초복·중복·말복무렵 더위)도 있고요. 아다시피 삼복더위는 복달더위, 복더위라고도 합니다. 밤낮을 구별한 밤더위와 낮더위도 있네요.
더위는 열사병, 일사병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통틀어 온열환자이라고 하는데 열이 몹시 오르는 병입니다.
일사병은 '더위를 먹은 병'이지요. 한여름 뙤약볕에 오래 서 있거나 일을 할 경우 몸이 열을 내보내지 못해 발생합니다. 땀이 많이 나고 어지러움과 두통이 생기며 구토 등의 증상도 함께 나타나고요. 서늘한 곳에서 수분을 보충하며 충분히 쉬면 금세 회복된다고 하네요.
열사병은 일사병과 달리 조금 더 심한 증상이 옵니다. 땀은 나지 않고 대신 열이 40도 이상으로 오르고 의식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열사병은 장기 손상으로 이어져 사망할 수도 있어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더위란 단어에서도 보듯 한글은 어휘가 다양해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배우기기 쉽지 않다는 것이 이 때문이지요. 그런데 국립국어원은 한자어인 폭염(暴炎), 폭서(暴暑) 대신 불볕더위를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찜통더위도 이에 해당되나요? [플랫폼뉴스 강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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