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눈) 레터] 노점상 엄마

정기홍 승인 2021.08.30 18:29 | 최종 수정 2021.11.28 19:24 의견 0

※ 플랫폼뉴스는 SNS(사회적관계망)에서 관심있게 회자되는 글을 실시간으로 전합니다. '레거시(legacy·유산)적인 기존 매체'에서는 시도하기를 머뭇하지만 요즘은 신문 기사와 일반 글의 영역도 점점 허물어지는 경향입니다. 이 또한 정보로 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SNS를 좌판에서 한글 모드로 치면 '눈'입니다. 엄선해 싣겠습니다.

<노점상 엄마>

▲ 글과 관련이 없는 본사의 DB 사진입니다. 서울 양천구 남부시장의 채소가게 모습.

20년이 넘도록 노점상을 하며 살아온 부모님의 삶을 되돌아보는 어느 분의 이야기입니다.

부모님은 연세에 비해 매우 건강하신데 다른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영육간(靈肉間)에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1. 1997년 말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직후인 1998년 5월부터 노점상을 시작하셨습니다.

- 1980년대 초반까지는 홀치기(1970년대 한국 농촌의 대표적 일자리이고 전량 일본에 수출) 대리점 및 철판 판매업으로, 1986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김밥 및 도시락 가게로 경제적인 안정과 여유를 이루셨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경기도 김포로 삶의 터전을 옮기셨고 이내 노점을 여의도 구 MBC와 삼부아파트 사잇길에서 하셨습니다.

2. 아버지는 1940~1970년대 중후반까지 대단한 명문(名門)이던 '강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셨고,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이 그러하셨듯이 매우 고생하셨지만 성공적인 사업을 통해 갑작스런 노점상은 생각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초졸(初卒·국민학교)이 전부인 어머니도 20대 중반부터 평생 장사를 하셨지만 노점상은 상상하지도 않았습니다.

- 아직도 보통 사람들의 시각엔 장려할만한 직업도 아닐뿐더러 어찌보면 이것저것 실패하고 막바지 생계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도 사실이기에 그렇습니다. 노점상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 정직하게 땀흘린 만큼 대가를 받는 귀한 직업입니다.

3. 어찌되었든 노점상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노점상이라도 몇가지 원칙을 갖고 하셨습니다.

- 채소를 재배할 때 농약은 절대 쓰지 않는다.

- 팔고 남은 채소는 말린 채소 또는 감자, 고구마, 무 등 저장용 농작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폐기한다.

- 고객 관리를 철저히 한다. 그래서 단골 손님이 엄청 많았습니다. 단골 손님 중에는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유명 연기자와 정치인의 배우자도 있었습니다.

- 매주 월, 수, 금요일에만 여의도에 간다.

- 영업 시간은 10:00~18:00까지 한다.

- 주변 마트 또는 채소 전문점의 가격과 비슷하게 한다. 아무리 노점이지만 신선도와 무공해라는 강점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4. 장사가 엄청 잘 되었습니다.

노점상이지만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지금은 팔순이 넘으셨지만 그래도 대단한 장사 수완이셨고 탁월하셨습니다.

5. 당연히 돈도 버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모님을 존경하는 것은 돈을 버셔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삶의 원칙 때문입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님을 생각할 때 눈물과 감사가 없는 분이 누가 있겠습니까만 저의 부모님도 예외는 아닙니다.

- 노점을 통해 일정 정도의 부를 축적하셨음에도 '검소'하셨습니다.

- 단순히 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주변 사람들과 그 과실을 나누는데 정성을 다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분들에게 쾌척도 많이, 그리고 꾸준히 하셨습니다.

- 한결같으셨습니다. 국회의원이 대단한 직업은 아닙니다. 저도 해보니까 지나고 나니 김종필(JP)의 회고(回顧)처럼 허업(虛業)과 같습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면 절대 안되고 섬김과 봉사의 직업이어야 합니다. 이럼에도 자식의 입장에선 아들이 국회의원이니까 솔직히 노점을 하지 않으시길 바랬습니다(이 부분에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 일부 의원님들. 정말 겸손과 정직하세요. 권력이란 게 눈뜨면 사라집니다.

- 그런데 부모님은 노점을 하셨습니다. 돈 때문이 아닙니다. 부모님은 삶을 그런 방식으로 누리신 것입니다. 자식이 국회의원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이러한 부모님의 선한 영향력 때문인지 아내도 주머니 사정에 관계없이 10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소액이지만 여기저기 후원하고 기부합니다)

6. 정말 행복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삶을 통한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건강하심에 또한 감사합니다. 부족하고 불민한 제가 정치 재개를 통해서 다시 국민들을 섬길 수 있다면 부모님처럼 한결같은 모습으로 겸손하게 임하겠습니다.

※ 끝까지 읽어보니 글쓴이가 국회의원을 하고 싶다며 쓴 글로 보입니다. 다만 몇가지 작은 상념을 포개서 글을 올린 것으로 보입니다. 글을 쓸 당시 나이가 좀 들었고, 부모님이 노점상을 하셨고, 돈을 버셨는데 원칙을 세우셨고, 남에게 나눔을 실천하셨고, 자신은 국회의원이었는데 다시 하고 싶다는….

이분은 이 글의 첫 머리에서 '노점상 어머니를 자랑하기 전에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아내 자랑을 했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뼈 중의 뼈이고 살 중의 살이라며 한없이 사랑한다고요. 요즘엔 안 맞지만 부창부수(夫唱婦隨)를 뛰어넘는 금슬 좋은 말입니다.

에고(ego·자존심)를 좀 지니신 분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마지막 다시 국회의원을 하고 싶다는 부문만 빠졌으면 좋았으려만…. 역시 정치 글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네요. 김이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노점상을 하면서도 절대 원칙을 지켰다는 대목은 꽤 와닿습니다. 옛날에 개성상인, 즉 거상들의 상도의는 대단했다지요. [플랫폼뉴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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