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용성 떨어져"···논란·갈등 시달린 방역패스, 4개월만에 중단

지난해?11월 도입 후 줄소송으로 누더기로 변해
'정점 후?조정' 방침 밝혔지만 '대선 의식'?조기중단 의심

강하늘기자 승인 2022.02.28 11:09 | 최종 수정 2022.02.28 11:15 의견 0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가 도입 4개월 만에 사실상 전면 중단된다.

전해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2차장(행정안전부 장관)은 28일 중대본 모두발언을 통해 "오미크론의 특성을 고려한 방역체계 개편과 연령별·지역별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해 내일부터 식당·카페 등 11종의 다중이용시설 전체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 방역패스는 델타 변이 유행 상황을 토대로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파력은 강하고 중증화율·치명률은 낮은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되면서 유행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구의 한 매장에서 60세 미만 방역패스 효력정지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이번 조치로 보건소가 방역패스 발급 업무 대신 고위험군 확진자 관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로서는 최근 전국 곳곳에서 방역패스를 둘러싼 소송이 제기되고 일부 방역패스의 효력을 중단하라는 판결도 나오면서 정책이 지역·연령에 따라 들쭉날쭉 뒤엉켜 혼란스럽게 됐었다.

서울, 경기, 대전, 인천, 충북 등 지역에서 청소년 대상 방역패스 효력정지 결정이 나왔다. 대구에서는 청소년뿐 아니라 60세 미만의 식당·카페 방역패스를 중단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정부는 지난 23일 기준으로 총 18건의 방역패스 관련 소송에 휘말린 상태다. 국가 소송이 8건, 지자체 소송이 10건 걸려 있다.

방역패스는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방역체계를 처음 개편한 지난해 11월 1일 처음 도입됐다. 당시 정부는 모든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 제한을 없애면서 유흥시설이나 노래연습장, 실내체육시설, 목욕장업 등 위험도가 높은 시설에 방역패스를 적용하기로 했다.

헬스장 등 실내체육시설 운영자들이 다른 업종과 차별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정부는 일상회복 추진으로 확진자가 급증하자 지난해 12월 6일부터 방역패스를 식당·카페를 비롯한 실내 다중이용시설 전반으로 확대, 방역패스 정책을 더 강화했다.

이때는 학원, 독서실·스터디카페도 방역패스 적용 대상에 포함되면서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이어 학교·학원을 통한 학령기 감염자들이 증가하자 정부는 12∼18세도 방역패스 적용받도록 하는 '청소년 방역패스' 도입을 추진했다.

정부는 당초 올해 2월 1일부터 청소년 방역패스를 적용하려고 했으나, 학부모 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자 3월 1일로 적용 시점을 연기했고 최근에는 4월 1일로 더 미뤘다.

백신 부작용을 여전히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돌파감염 사례가 증가하고, 오미크론이라는 새로운 변이 출현으로 백신의 감염 예방 효과도 감소하자 방역패스에 대한 불만은 더욱 커졌다.

영업 제한으로 피해를 보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한숨도 커졌다. 정부는 형평성 논란을 의식해 1월 10일부터는 백화점·대형마트에도 방역패스를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감염 위험이 적은 생활 필수 시설인 백화점·대형마트까지 방역패스를 도입한다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전국에서 제기된 방역패스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판결도 연달아 나오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학원, 독서실과 서울 백화점·대형마트 방역패스의 효력이 정지되고 청소년 방역패스에도 제동이 걸렸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18일부터 ▲독서실·스터디카페 ▲도서관 ▲박물관·미술관·과학관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규모점포 ▲학원 ▲영화관·공연장 등 위험도가 낮은 6종 시설의 방역패스를 해제하기로 하면서 한발 뒤로 물러났다.

지난 19일부터는 접촉자 추적 관리를 위한 QR코드나 안심콜 등 출입명부 운영이 잠정 중단됐다. 다만 다중이용시설에서는 방역패스 확인을 위해 기존처럼 QR코드를 계속 사용하도록 한다고 했다.

지난 25일에는 확진자 폭증에 따른 보건소 인력 과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달 1일부터 확진자의 동거인 관리를 전부 수동감시 체제로 전환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밀접 접촉자의 격리의무를 없앤 것으로, 이에 따라 방역패스 유지 필요성 또한 더욱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정부는 다음 달 1일부터 ▲유흥시설 ▲실내체육시설 ▲노래연습장 ▲목욕장 ▲경마·경륜·경정·카지노 ▲PC방 ▲식당·카페 ▲파티룸 ▲멀티방 ▲안마소·마사지업소 ▲(실내)스포츠 경기(관람)장 등 남은 11종 시설에 대한 방역패스를 전부 풀기로 결정했다.

QR코드 체크인. 연합뉴스

방역패스를 둘러싸고 그동안 계속된 논란, 또 방역조치가 잇따라 완화되면서 방역패스에 대한 실효성도 떨어졌다는 지적, 여기에 보건소 업무가 갈수록 과중해지는 문제 등을 두루 고려한 조치이지만 정부의 메시지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또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다른 방역조치들은 완화하면서도 방역패스에 대해서는 미접종자 보호 등을 이유로 계속 더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중대본은 거리두기와 방역패스의 경우 오미크론 유행 정점이 지난 뒤에 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방역패스 무용론은 한참 전부터 나왔다. 오미크론으로 감염 특성과 역학적 특성이 달라진 것을 고려했을 때 빨리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방역패스는 어느 정도 조절이 되는 유행일 때 의미가 있다. 현재 유행은 특정한 장소나 시간, 상황과 무관하게 확산하는 양상이어서 방역패스의 효용성이 많이 떨어졌다"며 결국 유행 양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해제하는 것"이라고 봤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현재 유행 상황에서 방역패스의 효과가 크지 않고 상황에 따라 방역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해제 시점이 조금은 빠르다"며 "이번 주와 다음 주는 유행 정점에 도달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다음 주 정도부터 전환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방역패스 해제 조치가 유행 확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엄 교수는 "최소한 전파 예방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실제로 이번 조치가 전파 확산에 얼마나 기여할지 측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노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요양병원·시설 등 고위험 시설에는 방역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도 같이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어떤 메시지를 내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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